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관계자들이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 문화의마당에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CPTPP) 가입 저지 전국농어민 집회에서 깃발 입장과 함께 상복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관계자들이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 문화의마당에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CPTPP) 가입 저지 전국농어민 집회에서 깃발 입장과 함께 상복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

농어민들이 정부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신청을 놓고 극한 반발을 하고 있다. 지난 5년 간 관료농정·적폐농정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농어민의 신뢰를 잃은 문재인 정부가 통상 영토 확장을 위한 CPTTP 가입을 놓고도 어려움을 겪는 형국이다.

14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15일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고 CPTPP 가입 신청 안건을 의결할 예정이다. 이날 안건이 통과되면 국회 비준을 위해 내주 중 국회에 세부 추진 계획 보고가 이뤄질 전망이다.

CPTPP는 일본·호주·뉴질랜드·캐나다 등 11개국이 2018년 12월 결성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이다. 2019년 기준으로 이들 회원국의 무역 규모는 글로벌 무역액의 15.2%(5조7000억달러),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GDP의 12.8%(11조2000억달러)를 차지한다. 인구수로도 세계 인구의 6.6%인 5억여명에 해당하는 거대 시장이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에서 11개국의 비중은 무려 23.2%에 이른다. 특히 한국의 제1 교역국인 중국을 비롯해 영국·대만 등이 추가로 가입을 신청하면서 CPTPP가 갖는 경제·전략적 가치는 더욱 커졌다.

이에 정부와 재계는 CPTPP 가입이 올 2월 발효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버금가는 통상 영토 확장 효과를 가져와 경제 체질을 업그레이드시킬 모멘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CPTPP 가입 시 교역 확대와 생산·투자·고용 증가로 실질 GDP가 0.33∼0.35% 상승하고, 30억달러(3조6700억원) 규모의 소비자 후생이 증가할 것으로 분석했다. 또 산업연구원은 제조업에서만 15년 간 최대 135억달러(약 16조5300억원)의 수출 증가와 연평균 최대 1조8200억원의 생산 증가를 예상했다.

물론 모든 FTA가 그렇듯 CPTPP 역시 내수 중심의 산업에는 피해가 불가피하다. 그중에서도 농수축산업의 악영향이 크다. CPTPP의 평균 관세 철폐율이 기존 FTA 평균(73.1%)을 크게 웃도는 96.3%에 달하는 데다 호주·칠레·페루 등 회원국 다수가 농수축산 강국인 탓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관계자는 "농림축산업과 수산업의 생산 감소 피해가 각각 연평균 최대 4400억원, 724억원으로 분석됐다"며 "앞으로 15년 간 누적 피해액은 6조6000억원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이는 중국의 영향을 배재한 것으로 향후 중국의 가입이 확정되면 피해액은 연간 조단위로 치솟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전국농민회총연맹, 한국수산산업총연합회 등 농수축산업 단체는 CPTPP 가입을 한국 농수축산업 말살 정책으로 규정하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3일 정부의 CPTPP 가입 공론화 직후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전국 각지에서 반대 시위를 이어가는 중이다. 이달에만 서울 여의도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정부서울청사, 농협중앙회에서 집회를 갖는 등 서울 전역에 확성기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농축산연합회 관계자는 "정부는 영향평가 결과에 따른 대책 수립이나 피해 업계의 의견수렴 없이 공론화 4개월 만에 가입을 밀어붙이고 있다"며 "무조건 CPTPP에 가입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농수축산업의 일방적 희생만 강요하는 무대책 행태에 분노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또 "피해보전직불제도, 폐업지원제도 등 지금껏 내놓은 정부의 대책은 과거 FTA 체결 때마다 나왔던 것의 재탕, 삼탕에 불과하다"며 "면밀한 검토를 거쳐 현실적 대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CPTPP 가입 결정의 공을 차기정부로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반발에도 정부는 가입 의지를 명확히 하고 있다. 지난 8일에도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에서 "CPTPP는 이번 정부 내 가입 신청, 다음 정부에서 가입 협상한다는 큰 틀에서 액션플랜 등을 최종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양측의 대립각에 대해 정부가 농어민의 믿음을 잃은 결과로 보는 시각도 나온다. 최근 양팟값 폭락 대응이나 우유의 원유 가격 결정체계 개편 과정에서 불거진 불협화음에서 나타나듯 농수축산업계가 불통으로 일관해온 정부를 더는 믿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CPTPP는 경제적 위상 제고와 아·태지역 리더십 강화를 위해 가입이 바람직한 방향"이라며 "새 정부는 세부 협상 과정에서 현 정부와 달리 실익 극대화와 함께 사회적 갈등을 봉합할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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