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승희) 박정희, 동반성장의 경제학(20)
(좌승희) 박정희, 동반성장의 경제학(20)
  • 더 자유일보
  • 승인 2018.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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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일보는 좌승희 박사의 ⟪박정희, 동반성장의 경제학(2018년 2월 기파랑 출판)⟫을 연재합니다. 자유일보 애독자들에게 대한민국 경제의 본질적 고질적 병폐인 저성장과 양극화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20>반 박정희, 평등주의 경제정책 주요 사례

제1장 저성장과 양극화의 원인; 자본주의가 문제인가

제2장 경제발전의 일반이론: 자본주의 경제발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

제3장 정치경제체제 유형과 경제발전의 역사적 경험

제4장 세계 경제문제의 원인과 동반성장 친화적 정치경제체제의 모색

제5장 박정희 동반성장의 산업혁명: 성과와 경험

제6장 한국경제 실패의 역사: 박정희 청산과 저성장, 양극화

1.경제의 정치화와 평등주의 정책 기조 고착

2.경제 역동성 하락과 저성장 추세의 고착

3.동반성장의 선순환 구조 실종과 각종 양극화의 심화

한편 1990년대 이후에는 수출 지원은 어느 정도 지속되었지만 균형발전과 경제민주화라는 이념 하에 대기업 규제가 강화되고 수도권 규제가 도입되고 전투적 노조활동이 일상화되면서 국내투자 환경이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수출 제조 대기업들이 국내투자를 기피하게 되고 수출 수익이 과도하게 해외투자로 유출되면서 수출 지원으로 희생된 내수는 회복의 기회를 잃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일자리 창출이 잘 안 되어 중산층이 감소하고, 중소기업과 내수, 서비스업 등의 수요가 정체되면서, 내·외수, 대·중소기업, 제조업·서비스업 간의 양극화라는 악순환 구조가 고착되게 된다. 이제 수출은 늘어도 내수 투자가 늘 수 없으니 양극화는 불가피해진 것이다. 박정희 시대의 수출 주도 동반성장의 선순환 구조가 실종되게 된 것이다. 지난 30년 가까운 기간 동안은 수출을 지원해서 외국의 일자리만 늘려 온 셈이니 수출 지원정책의 명분마저 의심스럽게 되었다. 결국 이는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여 기업 생태계를 균형발전시킨다’는 평등민주주의의 대기업 규제 정책 패러다임이 빚은 결과이다.

개발연대 이후 30년 동안 수월성 역차별 인센티브 구조 속에서 성장의 유인을 잃은 한국경제는 이제 원치도 목적하지도 않았던 반(反) 동반성장의 장기 성장 정체와 양극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현재의 반 차별화 인센티브 구조를 그냥 유지한다면 조만간 제로 성장은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한국은 이미 거의 30년 전부터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궤적을 따라가기 시작한 셈이다. 오늘날의 잠재성장률이 과거 1950년대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한국경제 저성장 구조의 새로운 이해

‘일반이론’은 자본주의 경제는 ‘기업경제’라 하는 것이 마땅하다 했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경제를 읽는다면 지난 30년 동안 잠재성장률이 지속적으로 추락해 온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자본 축적이나 인적 자본 확충이나 기술혁신이 과거 개발연대보다 못해서 그렇다고 할 수 있을까? 자본 조달의 용이성이 크게 신장 되고 교육 투자의 증가로 교육 수준이 획기적으로 증가되는 등 그 동안 물적, 인적 자본의 확충이라는 생산요소 측면의 성장은 괄목 할 만하지 않았던가.

그럼 총요소생산성(TFP)의 증가가 미흡해서인가? 국내 여러 연구에 의하면 1990년대 이후 총요소생산성의 증가가 하락하는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이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TFP의 추정이야말로 총생산 중에서 생산요소로 설명하지 못하는 나머지 오차 모두를 총요소생산성 증가의 결과라고 보는 견강부회식 논리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이유로든 자본과 노동에 의한 설명력이 떨어져, 모형추정의 오차가 커질수록 총 요소생산성 효과는 커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것이 총요소생산성 추정치를 크게 신뢰하기가 어려운 이유이다. 더구나 그동안 과학기술과 연구개발(R&D) 투자가 GDP 대비 거의 세계 제일의 수준이라 하는데 오히려 총요소생산성은 낮아졌다고 하니, 정말 어디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전통적인 생산함수 모형은 자본, 노동, 기술이 주어지면 시장이 생산한다는 세계관을 반영한다. 그래서 이 모형은 ‘시장생산함수’라 부르는 것이 합당하다. 그러나 이는 전형적인 환원주의적 사고로 생산 주체인 기업을 각 요소로 분해하여 그 시너지 창출 기능을 제거 한 모형이다. 생산의 주체인 기업은 없고 요소만 있으니 기업이라는 사회적 기술의 창발 기능을 찾을 길이 없게 된다.

그러나 기업경제 관점은 전일적인 복잡계 관점으로, 기업은 모든 생산요소들을 조합하여 그 선형적 합보다 질적으로 더 큰 질서를 창출하는 장치이며, 거의 같은 요소들을 가지고도 전혀 다른 질서를 만들어 내는 기업들이 존재할 수 있는 창발의 주체로 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생산함수는 개별 요소가 아니라 기업이 보유하는 생산 적 자원의 총합의 함수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모형은 시장생산함수에 대비하여 ‘기업생산함수’라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GDP는 기업이 보유하는 총 생산적 자원의 함수라고 할 수 있다. 이 접근의 또 다른 이점은 시장생산함수의 경우 부딪치는, 케임 브리지 자본논쟁이 시사하는 바와 같은 자본이라는 생산요소의 측정 문제를 회피할 수 있다. 시장생산함수가 부딪치는 자본의 측정은 물론 노동이나 인적 자원, 기술혁신 수준의 측정과 같은 난제를 다 회피할 수 있다. 기업이 보유하는 이들 자원의 총체적 합이 바로 대차대조표 상의 총자산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이 총자산을 설명변수로 할 경우 ‘기업생산성’을 즉각 추정할 수 있다.

졸저(Jwa 2016; 좌승희·이태규 2016)의 세계 기업생산함수의 추정 결과에 의하면, 10퍼센트의 1인당 기업자산 증가는 추정방법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4~6퍼센트의 일인당 GDP 증가를 가져옴과 동시에 0.15의 소득 GINI의 감소를 가져오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한국에 대한 시계열 분석 결과(좌승희·이병욱 2016)에 의하면 한국은 기업생산성이 세계 평균보다 높아 GDP의 기업자산에 대한 탄력성은 거의 1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된다. 1퍼센트의 1인당 기업자산 증가가 1퍼센트의 1인당 GDP 증가를 가져온다는 의미이다. 그림 9에 의하면 한국은 지난 30년간 기업자산 증가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최근 2~3퍼센트대로 추락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는데, 바로 이것이 그동안 한국경제의 장기 성장잠재력 하락을 조장한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왜 그럼 기업자산 증가율이 그렇게 장기 정체를 보여 왔는가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평등주의 기업정책 패러다임’이 그 원인임을 언급했기 때문에 더 이상 장황한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다만, 지난 30년의 균형발전과 경제민주화 정책 패러다임이 박정희 산업혁명기와는 정반대로 기업 성장의 유인을 차단하여 앉은뱅이 기업 생태계를 조장하는, ‘성장보다는 현실 안주가 더 유리한’ 인센티브 구조를 고착화시켰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한국 기업 생태계의 경제제도, 즉 경기규칙은 어떤 창의적인 기업가가 도전해도 난공불락인 성장의 벽이다.

 

5. 사농공상의 반反 실사구시 이념의 재림

오늘날 한국 사회는 국회의원 같은 정치인이나 관료라는 권력자가 되어 그동안 소위 ‘을’로서 맺힌 한과 설움을 풀고 모든 사람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이들에 줄을 서서 더 큰 기득권층을 구성하는 거대한 지식인 사회까지 모두 비생산적 지대추구에 몰두하는 사회가 되었다. 박정희 산업혁명기를 거치면서 그동안 잠깐 가라앉았던 사농공상의 계급 이념이 급속도로 재생되고 있는 것이다. 어디를 가도 정치인이 갑이요, 관료나 전직 관료가 갑인 사회가 되었다. 그래서 너도나도 이 대열에 끼고자 줄을 서고 있다. 이 사회에서 자조(自助)하여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세금을 납부하는 사람은 점차 2등, 3등 국민이 되어 가고 있다.

개발연대 이후 한국은 ‘박정희 시대 청산’이라는 이름 하에 대기업들을 단지 크다는 이유만으로 특별규제하고 중소기업들은 작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획일적으로 지원하여, 오히려 성장하는 기업과 기업인들을 역차별함으로써 앉은뱅이 기업 생태계를 만들어 내었다. 과학기술교육과 실업교육을 경시하여 이제 대학의 문과가 절반 이상의 정원을 점하여 과잉공급 문제에 봉착하고, 실업교육은 거의 몰락하였다. 자칭 지식인이라는 정치인들과 관료 사회는 법과 정책으로 기업(가)과 과학·기술자들 위에 군림하고 있으며, 사회는 과학기술인과 기업가들보다도 정치인, 관료와 훈고학자  (訓詁學者) 등, 창조와는 거리가 멀고 부의 창출이 아니라 소비에 몰두하는 비생산적 계급을 더 우대하는 사회로 바뀌었다. 젊은이들이 공무원시험에 줄을 설 수밖에 없고 너도나도 정치권과 관(官)에 줄을 서는 이 시대가 조선조의 몰락을 가져온 사농공상의 계급사회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주장에 누가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까.

기업을 일으키고 대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국가 번영에 기여 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가문의 영광이 되는 실사구시적 국부 창출의 사회이념이 확고해지도록 국가가 제도적, 정책적 뒷받침을 해야 젊은이들의 창업, 중소기업의 성장, 대기업의 세계적 기업으로의 도약과 일자리 창출을 통해 동반성장을 재현해 낼 수 있다. 성공하는 기업과 기업인을 폄하하는데 혈안이면서 성장 의욕에 충만한 기업가와 기업이 활개 치는 선진 한국경제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에 불과하다.

 

jayooilb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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