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광주
손광주

우크라이나 부차에서 발생한 대량학살(Genocide)이 세계에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제2차 대전이 끝나고 세계는 ‘1948년 체제’에서 새 출발했다. ‘대량학살 방지와 처벌에 관한 제노사이드 협약’은 1948년 UN이 채택한 인류 최초의 인권조약이다. 나치가 유대인을 상대로 한 대량학살이 그만큼 끔찍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유엔이 존재하는 첫 번째 이유도 ‘대량학살 방지’다. 2011년 미국이 카다피 정권을 선제 공습한 이론적 배경도 민간인 대량학살 방지를 위한 군사 개입(R2P)이었다.

나토 국가들은 4월 4일의 부차 학살을 ‘제노사이드’로 규정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스페인의 산체스 총리가 처음으로 ‘제노사이드’를 언급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전쟁 범죄’(war crime)라고 했다. 독일·프랑스 등은 러시아에 전면 금수조치조차 단행하지 못하고 우물거렸다. 바이든의 입에서 ‘제노사이드’란 단어가 나온 것은 8일이나 지난 4월 12일이다. 그는 "러시아의 행위가 집단학살의 국제기준을 충족하는지는 법조계가 결정할 사안"이라는 전제를 달고서, "내게는 확실히 그렇게(제노사이드로) 보인다"라고 했다. CNN은 바이든의 ‘제노사이드’ 발언을 "미 정부의 공식 입장을 앞서는 것"이라며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미국의 극적인 수사적(rhetorical) 고조"라고 평가했다. 바이든도, CNN도 엄청나게 혀가 꼬였다.

나토 국가들은 러시아에 대한 이해관계가 각각 다르다. 하지만 ‘제노사이드’로 규정하면서도 군사개입을 못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러시아의 핵무기 때문이다. 바이든이 ‘제노사이드’를 언급한 날, 푸틴은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정해진 임무가 완수될 때까지 특수작전(전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이날은 러시아의 기념일인 ‘우주 비행술의 날’, 푸틴의 기자회견장은 미사일이 쌓인 무기고였다. 이것이 지금 우크라이나와 나토가 맞닥뜨린 ‘핵 공포’의 현장이다. 지금 우크라이나 사태는 ‘인권’의 이름으로 집단학살 책임자(푸틴)를 처벌할 것인가, 아니면 ‘핵 공포’에 굴복할 것인가를 인류사회에 단독직입 묻고 있다.

기가 막힌 장면은 4월 12일 여의도 국회에서 있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화상연설 자리에 모인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달랑 50여명이었다. 기립박수도 없었다. 이 장면을 두고 러시아의 한 교수는 "한국에서는 러시아산 킹크랩 가격이 떨어지는 것에 관심이 더 많다"며 "맛있는 해산물이 우크라이나 전쟁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조롱했다. 일본은 총리·장관·국회의원 500명이 모여 젤렌스키 연설을 시청했다. 자리가 모자라 서서 들었다고 한다.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일어난 이 ‘기괴한 비현실적 장면’은 지금 대한민국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세계적 범위에서 ‘객관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현재 우리 국회는 국가이성적 각도에서 맑은 사고를 유지하는 각성된 상태라고 말하기 어렵다.

제2차 대전 후 세계는 자유주의냐, 공산주의냐로 갈라져 40여년간 체제 경쟁을 벌였다. 1991년 소련공산당이 해체되고 동유럽이 붕괴됐다. 냉전이 종식됐다. 하지만 자유주의의 세계화는 더 이상 진척되지 못했다. 미국과 나토가 중국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결정적 실책이었다. 이후 30여년 동안 중국의 중화주의 독재, 푸틴의 러시아민족주의 독재가 계속됐다. 그 결과 오늘날 세계는 간단히 압축하면, ‘자유냐, 독재냐’로 갈라졌다. 현재 지구촌 77억 인구 중 자유 문명세계는 유럽·북미·일본·한국·대만·호주·뉴질랜드 정도다. 중국·북한·러시아·동남아·중동·인도·아프리카·남미에는 독재가 압도적으로 많다. 인구도 50억이 넘는다. 양적(量的)관계에서 자유 진영이 훨씬 불리하다. 이것이 현실이다.

지금 김정은 정권은 ‘핵국이냐, 비핵국이냐’를 기준에 놓고 "남조선은 우리의 무력 상대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북한에서 수령(김정은)은 ‘사회역사발전의 유일한 동력’으로 규정돼 있다. 어떠한 결정도 ‘혼자서’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김정은은 2019년 4월 블라디보스톡에서 푸틴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푸틴을 30분간 기다리게 만든 유일한 사람이다. 북한 수령제의 민낯이 이렇다. 거칠게 말해 ‘맛이 간’ 정도가 푸틴보다 훨씬 더하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은 좌고우면이 필요없다. 북핵·북한인권의 ‘투 트랙’에 완전히 집중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안전하게 생존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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