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위한 서시(序詩)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의 어둠에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金)이 될 것이다.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여.


김춘수(1922~2004)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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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 시인은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시를 주로 써 ‘철학의 시인’ ‘인식의 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시인의 시편들은 철학적이고 사색적이다. ‘꽃을 위한 서시(序詩)’는 그러한 시편들의 마중물 같은 작품이다. 그러니까 ‘꽃’과 ‘너’는 사물에 내재해 있는 본질이고 ‘나’는 그것을 파악하려는 화자(話者)이다.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라는 표현은 사물의 본질을 모르는 한 짐승 같은 미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물의 본질을 알려 하면 할수록 본질은 멀리 벗어나 어둠 속으로 숨어 버린다. 시인의 표현에 의하면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까마득한 미지의 어둠은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몽매한 상태를 가리킨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는 것은 사물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는 한 삶은 불안정할 수밖에 없으며, 그 상태에서 사물은 생멸(生滅)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추억의 한 접시 불’이란 화자가 여태껏 쌓아온 삶의 지혜와 경험, 지각 따위를 총동원하여 밝힌 이성의 불빛이다. 즉 이성의 불빛으로 사물의 본질을 가리고 있는 어둠을 떨쳐내겠다는 의지다. 운다는 것은 사물의 본질을 밝혀내는 데 그만큼 실존적 고뇌가 뒤따른다는 은유적 표현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金)이 될 것이다.’ 탑의 본질은 돌이다. 화자의 고뇌가 탑의 본질인 돌에 이르고, 돌에 박힌 금이 될 수도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금’이 상징하는 의미는 모호하지만 사물의 본질을 천착하는 행위가 무가치한 게 아니라 금처럼 귀한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여.’ 그러나 결국 면사포로 얼굴을 가린 신부가 면사포를 벗지 않듯 사물의 본질은 드러나지 않는다. 사물의 본질은 인간의 인식 저편에 있다. 철학용어로 불가지론(不可知論)이란 용어가 있다. 사물의 본질이나 참모습은 사람의 경험과 이성으로는 결코 알 수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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