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원
김세원

열흘 전 코리안드림 역사재단 주최 경주 역사문화답사를 다녀왔다. 수학여행의 추억이 서린 불국사와 석굴암을 비롯해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탄생지 나정과 왕비 알영이 계룡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알영정, 천마총과 황남대총을 둘러보았다.

부리부리한 눈매, 광대뼈에 매부리코, 곱슬거리는 수염... 서기 798년 사망한 38대 원성왕릉 입구에 세워진 이국풍의 무인석상은 신라와 서역간의 교류가 활발했음을 보여준다. 무인석상의 얼굴에 무성한 눈썹과 우뚝 솟은 코, 검붉은 피부색의 처용탈이 오버랩된다. 삼국유사에는 49대 헌강왕 때 개운포(지금의 울산)에 나타난 동해용왕의 일곱 아들 중 처용을 서라벌로 데려와 미모의 아내와 관직을 주어 정사를 돕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2009년 영국 국립도서관에서 필사본이 발견된 이란의 대서사시 ‘쿠쉬나메’에 등장하는 아비틴 왕자와 처용이 겹쳐진다. 7세기 중엽, 서남아시아를 지배하던 사산조 페르시아는 마호메트가 건설한 이슬람제국에 정복당한다. 페르시아의 마지막 왕자 아비틴은 군대를 이끌고 중국을 거쳐 ’황금의 나라‘로 알려진 신라로 망명한다. 신라 왕 타이후르는 아비틴 일행을 환대한다. 중국의 황제는 신라를 침공했다가 아비틴 왕자가 이끄는 신라와 페르시아 연합군에 패퇴한다. 경주로 개선한 아비틴은 신라 왕 타이후르의 딸 프라랑 공주와 혼인한다.

국립경주박물관에는 서기 503년 22대 지증왕 때 신라의 국호가 확정됐는데 ‘덕업일신 망라사방’(德業日新 網羅四方)이란 구절에서 두 글자를 딴 것으로, 신라가 국가이념으로 덕에 의한 통치와 개혁, 세계화를 지향했음을 알 수 있다는 설명이 나온다.

달빛은 안압지 연못에 넘쳐흐르고 바람이 불 때마다 벚꽃잎이 눈송이처럼 휘날린다. 천이백년 전, 서역에서 온 유리잔에 술을 따라 주고받으며 봄밤의 정취를 즐기던 신라 귀족과 페르시아 외교사절들의 모습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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