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가장 두려워 하는 '자스민 혁명'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 하는 '자스민 혁명'
  • 최영재 기자
  • 승인 2018.05.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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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번째>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전체주의 독재 국가 북한은 지금도 자국민을 굶기고 고문하고 학살하는 등 가장 잔혹한 인권탄압을 하고 있다. 그리고 핵무기를 완성하며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북한을 대한민국 문재인 정부가 거들고 있다는 점이다. 문 정부가 말하는 ‘한반도의 봄’은 북한 주민의 삶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봄’이다. 문 정부가 선전하는 ‘봄’은 김정은 정권에 면죄부를 주고 내부 주민을 더욱 혹독하게 탄압하게 만드는 영양제가 되고 있다.

북한의 인권탄압과 핵개발은 ‘일부 수술’ 이나 ‘개선’으로는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김정은 정권을 타도하고 교체해야 해결되는 문제다.

북한 정권을 교체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북한 내부에 자유세계의 정보를 유입하고 북한 주민들이 스스로 봉기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인은 수많은 세계사 중에서도 2010년 전후로 일어난 ‘아랍의 봄’을 정밀 연구해야 한다.

이런 취지에서 <The 자유일보>는 북한 주민들이 자유와 평등, 인간다운 삶을 되찾는 진정한 봄, 이른바 ‘진달래 혁명’을 위해 ‘아랍의 봄’의 도화선이 되었던 튀니지의 ‘자스민 혁명’을 상중하 3회로 나누어 연재한다. <편집자 주>

무하마드 아부지지(왼쪽)와 재스민 혁명의 도화선이 된 그의 분신 장면. 이 장면을 찍은 동영상은 SNS를 통해 순식간에 도시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모하메드 부아지지(왼쪽)와 자스민 혁명의 도화선이 된 그의 분신 장면. 이 장면을 찍은 동영상은 SNS를 통해 순식간에 도시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자스민혁명(Jasmine Revolution)은 2010년에서부터 2011년에 걸쳐 튀니지에서 일어난 튀니지 혁명(Tunisian Revolution)을 말한다. 튀니지의 나라꽃인 자스민에 빗대어 자스민혁명이라고도 부른다.

철권 통치 23년의 독재자인 엘 아비디네 벤 알리 튀니지 대통령을 파라오에 빗댄 재스민 혁명 풍자 만화.
철권 통치 23년의 독재자인 제인 엘 아비디네 벤 알리 튀니지 대통령을 파라오에 빗댄 자스민 혁명 풍자 만화.

혁명의 결과, 1987년부터 튀니지를 통치한 제인 엘 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 이 24년 만에 대통령직을 사퇴하고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다. 2010년 12월 18일부터 2011년 1월 14일까지 거의 한 달 동안에 걸친 시위, 파업, 폭동으로 219명이 사망하고 94명이 부상했다.

분신 직후 병원에 실려가기 전의 모하메드 아부지지.
분신 직후 병원에 실려가기 전의 모하메드 부아지지.

한 청년의 분신자살사건을 발단으로 한 반정부데모는 전국으로 확대되고 군부가 집권 대통령에 등을 돌리면서 이 혁명은 마무리되었다. 이 민주화운동은 튀니지에 머물지 않고 이집트 등 다른 아랍 국가들에도 번져 각국에서 장기독재정권에 대한국민의 불만과 결부되어 수많은 정변과 정치개혁을 일으켰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아랍의 봄(Arab Sppring)’으로 불렸다.

벤 알리 대통령은 분신한 아부지지가 입원한 병원을 찾아 위문 하는 등 수습에 나섰으나, 한 번 동요하기 시작한 민심은 거센 불길 처럼 번져 나갔다.
벤 알리 대통령(왼쪽 두번째)은 분신한 아부지지가 입원한 병원을 찾아 위문 하는 등 수습에 나섰으나, 한 번 동요하기 시작한 민심은 들불 처럼 번져 나갔다.
2010년~2011년 당시 튀니지의 상황
2010년 당시 튀니지의 상황

아랍지역에서 일제히 일어난 폭동에서는 정보공유를 위해 페이스북 등 인터넷 정보교환이 큰 힘을 발휘했다. 유튜브(Youtube)와 트위터(Twitter), 위키리크스(WikiLeaks) 같은 네트미디어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 구글과 페이스북 등 네트미디어가 미국정부 전략에 가담해 ‘아랍의 봄’을 뒤에서 지원하고 있었다는 의견도 있다.

참모총장 출신으로 결국 쿠데타로 정권을 뒤엎고 최고의 자리를 꿰찬 벤 알리 대통령.
참모총장 출신으로 결국 쿠데타로 정권을
뒤엎고 최고의 자리를 꿰찬 벤 알리 대통령.

자스민혁명이 일어난 튀니지는 2010년 경제성장률이 3.8%였다. 결코 경제상황이 나쁜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나 실업률은 14%였다. 젊은층으로 한정하면 30% 가까운 높은 수준이었다. 젊은 세대는 경제성장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데서 불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집권세력 일족이 이권을 독점하고 부정부패가 23년이나 되는 장기정권을 통하여 쌓여 있었다. 이런 배경이 폭동의 온상이 되었다.

◇노점상 모하메드 부아지지의 분신

혁명의 직접적이고도 결정적인 요인은 2010년 12월 17일, 중부 도시 시디 부지드에서 일어났다. 그 날 아침, 모하메드 부아지지(Mohamed Bouazizi, 26세)는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 그의 어머니와 여섯 식구들을 위해 고향에서 노점상을 하고 있었다. 이 날 과일과 채소를 팔던 모하메드 부아지지는 허가를 받지 않고 장사를 했다는 이유로 저울과 과일, 채소들을 지방 관리에게 압수당하게 되었다.

그는 압수당한 물건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러 갔지만, 거절당했다. 저울을 찾으려면 돈을 주어야했는데 그럴 돈도 없었다. 그는 이를 항의하려고 관청 청사 앞에 상품을 실은 카트와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분신자살을 시도했다. 화상이 심해 그는 2주 정도 만인 2011년 1월 4일, 26살의 나이로 병원에서 사망했다.

사건 직후 분신자살한 곳으로 달려간 종형제 알리 부아지지가 현장모습을 휴대전화로 촬영해 그 날 저녁 페이스북에 영상을 투고했다. <알자지라 방송>이 사건을 보도하자, 한 청년의 분신자살이 전국에 알려졌다. 전 국민이 분노하게 되었다.

이슬람교는 물론이고 아브라함 종교도 자살을 금하고 있고 화장의 관습도 없는데 ‘분신자살’이 준 충격은 실로 컸다. 또한 부아지지처럼 취직을 할 수 없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직장을 가질 권리, 발언의 자유, 대통령 주변의 부패척결 등을 요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中편으로 계속> 

sopulg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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