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근
이춘근

윤석열 당선인이 아직 취임하기도 전이지만, 문재인 정부가 망쳐놓은 국가 안보 관련 제반 사안들이 급속히 정상화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북한을 다시 주적(主敵)으로 상정하겠다는 발상이다. 역대 한국 정부는 1980년대말 국방백서를 간행하기 시작한 이래 늘 북한을 주적으로 간주해왔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는 주적이라는 개념을 국방백서에서 완전히 삭제하였다. 그들의 논리는 북한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굴종적인 것으로, 전략적으로도 터무니없는 비상식적인 발상이었다.

저들은 주적 개념을 명기한 나라들이 없다는 핑계로 주적 폐기를 정당화시켰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은 세상에서 우리처럼 고약한 적국을 가진 나라가 없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북한은 노골적으로 한국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으며, 무력으로 적화통일을 이룩하겠다는 야욕을 숨긴 적이 없다. 게다가 우리는 힘이 막강한 위협적인 강대국들을 이웃에 두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정교한 안보 전략이 필요하며 주적 개념도 필요한 것이다.

미국의 전략이론가 필립 보빗은 저서 <전쟁과 평화 및 역사의 궤적>에서 주적이 명확하게 상정되지 않은 국방전략이 얼마나 허무하고 황당한 것인지를 명쾌하게 밝히고 있다. 그는 전쟁은 반드시 두 나라가 벌이는 일이기 때문에, 그 중 한 상대방(A)이 다른 상대방(B)을 명확하게 주적이라고 지정하지 않는다면 그 상대방(B)을 억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보빗 교수는 주적을 설정하지 않은 국방전략은 전략적으로 넌센스(Nonsense)라고 주장했다. 주적이 상정되어야만 정확한 국방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주적이 상정된 이후라야 어떻게 병사들을 훈련시킬지 그리고 또 어떤 무기를 장비해야 할지를 결정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북한을 주적 개념에서 제외시켰던 시절, 우리가 성능 좋은 군함을 도입하니까 중국이 자신들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주적으로 명기되었던 시절에도 사드 배치를 두고 시비를 걸었던 나라가 중국이다. 아마 일본도 경계 태세를 취하려 했을 것이다.

주적을 삭제했던 노무현, 문재인 정부는 누구와 싸우겠다고 무기를 구입했었나? 누구와 싸우라고 병사들을 훈련시켰었나? 주변국 모두를 상대할 생각이었나? 혹은 아무와도 싸우지 않겠다는 것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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