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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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대통령 자리에 있다 떠나는 문재인 대통령의 마음은 어떨까? 주변에 대통령을 해본 이가 없다 보니 어떤 마음인지 알 도리는 없지만, 말 한마디로 나라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권력자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게 그리 좋을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국정 운영을 잘못해 욕을 많이 먹은데다, 대통령 시절 했던 일 때문에 퇴임 이후 조사받을 가능성도 있으니, 심란하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떠나는 대통령은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한다. 다 못한 일 중 할 수 있는 건 기간에라도 하는 게 첫 번째라면, 후임자가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두 번째다.

결론적으로 문 대통령은 이 두 가지를 할 마음이 없는 것 같다. 먼저 두 번째 항목부터 이야기하자. 윤석열 당선인은 자신의 공약으로 집무실 이전을 약속했다. 청와대라는 공간이 소통단절을 가져와 제왕적 대통령을 만든다는 게 그 이유였다. 문 대통령 역시 여기에 공감했고, 똑같은 공약을 내기도 했으니, 취임과 동시에 새 집무실에서 일하자는 윤 당선인의 목표는 쉽게 이루어질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청와대는 갑자기 안보상 이유로 집무실 이전에 동의하지 못한다고 하더니, 인수위가 이전 비용으로 요구한 500억원도 안 주고 있다. 혹자는 당선인더러 청와대에 먼저 들어갔다가 천천히 옮기라고 하지만, 일단 대통령 업무를 시작하면 산적한 업무 때문에 이사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지금 문통의 행동은 괜한 발목잡기로 보인다.

더 큰 문제는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것이다. 세월호 8주기였던 지난 4월 16일, 문대통령은 "세월호의 진실을 성역 없이 밝히는 일은 아이들을 온전히 떠나보내는 일이고, 나라의 안전을 확고히 다지는 일입니다"라는 글을 SNS에 올렸다. 그는 "아직도 이유를 밝혀내지 못한 일들이 남아 있다"며,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참으로 어이없는 글이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해주겠다며 대통령이 된 이가 진상을 못 밝힌 책임을 통감하기는커녕, 다른 이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고 있으니 말이다. 이게 욕먹을 일은 절대 하지 않으려는 문통 특유의 성향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더 고약하다.

사실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배의 복원성이 좋지 않았던데다, 배에 실린 화물이 제대로 고박이 안돼 급선회 때 배를 더 기울게 한 게 침몰 원인이었다. 김어준 같은 음모론자들은 박근혜 정권이 고의로 세월호를 침몰시켰다지만, 이로 인해 박 정권이 얻을 게 전혀 없다는 점에서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실제로 세월호를 인양한 뒤인 2018년, 네덜란드 마린 연구소에서 시행한 모의시험은 세월호가 외력으로 인해 침몰한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조사를 맡은 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에 음모론자들이 포진돼 있다는 게 문제였다. 진상이 규명되면 그간 했던 거짓선동이 탄로나는 것은 물론 자신들의 일자리마저 없어질까 두려워한 음모론자들은 마린 연구소의 결론을 부정했고, 진상조사가 더 필요하다고 우겼다. 그 결과 선조위가 해체되고 사참위가 만들어졌다. 실직 위기에 처했던 음모론자들은 사참위에 다시 둥지를 틀었다. 위원회의 임기가 끝날 때마다 그들은 어김없이 ‘새로운 증거가 나왔다’며 임기를 연장해 왔다.

2020년 12월 말에도 이런 식으로 1년 반의 말미를 더 얻었고, 올해 6월에도 비슷한 시도를 할 것으로 보이는데, 언제까지 그들의 말에 속아 국민분열과 세금낭비를 감수해야 할까? 그래서 문통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수 차례의 조사에서 나온 것처럼, 세월호는 배 자체의 문제로 침몰한 것일 뿐, 배후에 아무런 음모도 없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유족들과 일부 국민이 납득하지 못할 테지만, 그들을 설득할 책임은 세월호로 인해 정치적인 이득을 가장 많이 챙긴 문통에게 있다. 세월호 방명록에 쓴 ‘고맙다’는 말이 진심이었다면, 이 정도는 해결하고 가는 게 당연한 도리 아닌가? 김명준 앵커의 말을 빌려 끝을 맺는다. 이것조차 안 한다면, 사람입니까?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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