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식
김정식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는 유명한 문구가 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 첫머리에 적혀 있는 것이다. 풀이하자면, 역사란 ‘나와 내가 아닌 것 간의 투쟁의 기록’이라는 뜻이다. 민간 차원의 기록인 야사(野史)와 구분되는, 정통적인 역사 체계에 의해 서술되어 정사(正史)로 받아들여지는 기록은 일반적으로 정치(政治)의 기록이다. 이 두 가지 전제를 통해, 정치 자체가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아와 비아는 시기나 상황에 따라 그 경계가 불분명하고 유동적이다.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오늘의 적이 내일의 친구가 될 수 있다.

정치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층의 대립이 양극화되어 있는 우리 현실에 비추어 보자. 아(我)를 곧 여당이 될 국민의힘으로 상정한다면, 비아(非我)는 더불어민주당·정의당 등의 정치인들보다는 흔히 ‘스윙 보터’(swing voter, 부동층)라 불리는, 시기에 따라 다른 정당에 투표하는 국민을 대상으로 보는 것이 현명한 계산일 것이다. 이들을 아(我)로 만드는 과정이 곧 정치적 승리이며 그 과정 자체가 투쟁이다. ‘확장’은 그 지향점 자체가 내부보다는 외부에 있음이 마땅하다.

그런데 0.73%p라는 근소한 차로 정권교체에 성공한 국민의힘이, ‘우리(아)’ 보다는 ‘상대(비아)’를 늘려가며 국민에게 외면받았던 과거의 행태를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지난 5년간 ‘국민 갈라치기’를 통해 ‘우리’의 경계만 공고히 하려다가 오히려 되치기를 당해 실각한 더불어민주당의 모습과 유사해 보이기까지 하다.

왜곡된 페미니즘 운동과의 대결로 ‘이대남’(20대 남성)의 강한 결집을 이루었다고 자평하는 당 대표, 그가 수치스러운 성 접대 의혹을 제대로 해명하지 않고 뭉개고 지나가는 모습은 어떠한 이유로든 지지자들의 실망을 자아냈다. 시험 결과에 따라 고득점자에게 가산점을 부여하는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평가(PPAT)’ 역시 당과 후보들이 대중을 향하기보다는 내적으로 고립되거나, 특정 경향성이 강요되는 방식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우려가 있었다. 선거 때마다 불거지는 공천 잡음 역시 마찬가지다. 이러한 모습들은 국민이 ‘30대 0선’ 당 대표에게 기대했던 바와는 다른 구태(舊態)이다. 이제 막 닻을 올리며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윤석열 정부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에, 빠르고 확실하게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국민의힘이 말 그대로 ‘국민을 지향하며 국민에게 힘이 되고, 국민의 마음을 담을 수 있는’ 큰 정당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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