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사의 이단아들] 로마에서 새로운 로마를 재건하다
[예술사의 이단아들] 로마에서 새로운 로마를 재건하다
  • 박석근 문화 에디터
  • 승인 2018.05.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력형 화가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 1483~1520)
라파엘로 산치오 자화상
라파엘로 산치오 자화상

피렌체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가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을 때 라파엘로는 그들의 영향을 받으며 자기 나름의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하고 있었다. 그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같은 만능 천재도 아니고, 미켈란젤로와 같은 힘 있는 천재도 아니었다. 라파엘로는 여러 천재들의 장점을 흡수하여 종합하여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한 노력 형 화가였다.

라파엘로는 우르비노 공작의 궁정화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라파엘로는 당시 천재들과 달리 순탄한 길을 걸었다. 젊은 라파엘로는 페루자에 있는 한 공방에서 도제 수업을 받으며 실력을 연마했다.

그는 고향 우르비노의 선배였던 건축가 브라만테의 소개로 처음으로 로마 교황청에 부름을 받았다. 그때 교황은 성 베드로 대성당을 짓는 일을 브라만테에게 맡겼고,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성당 천장화를 제작하기 위해 교황청에 머물고 있었다.

라파엘로의 성공은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인정을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교황은 자신의 집무실을 장식할 벽면을 장식할 프레스코 벽화를 라파엘로에게 맡겼다. 프레스코 벽화란 석회를 바른 벽면에 아직 수분이 있을 동안 밑그림을 그리고 거기에 채색을 더하여 그림을 완성한다.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라파엘로에게 당시 유행하던 신플라톤주의 철학을 담아내라고 주문했다.

라파엘로. 아테네학당. 프레스코 벽화. 바티칸 미술관. 1509∼1510년 제작.
라파엘로. 아테네학당. 프레스코 벽화. 바티칸 미술관. 1509∼1510년 제작.

이 벽화는 역사 속 인물을 묘사한 상상화로 각 인물들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시각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대작의 완성을 위해 라파엘로는 수많은 그렸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을 배경으로 중앙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다른 철학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원근법을 사용하여 등장인물이 많지만 산만하지 않다. 르네상스 정신인 균형과 질서, 부분과 전체의 조화된 걸작이다.

벽화의 인물들 중 가운데 플라톤은 이데아에 대해 설명하듯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상을 가리키며 그들의 철학세계를 대변한다. 그런데 옆구리에 책을 끼고 있는 플라톤은 사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습이다. 라파엘로는 플라톤의 모델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로 선택했다. 그만큼 다 빈치를 존경했으며, 다 빈치 또한 자신의 얼굴이 모델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이렇듯 화가들은 종종 자신의 초상을 서명 대신 그려 넣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에는 작가의 서명이란 것이 없어 의뢰자에게 납품하면 이후부터는 누구의 작품인지 알 수 없었다. 이것은 참으로 억울한 일이었다. 그래서 화가들은 종종 이런 수법을 썼고, 작가의 서명은 르네상스시대가 한참 지난 계몽시대에 와서야 일반화 되었다. 재미난 사실은 라파엘 자신의 초상도 이 대작에 그려 넣었는데, 화면 왼쪽 베레모를 쓴 채 관객을 응시하는 듯한 시선의 잘생긴 젊은이가 바로 그다.

웅장한 교황청 건축은 1513년 율리우스 2세가 죽고 후계자 레오 10세가 즉위한 1517년까지 계속되었다. 내부 벽화작업을 성공적으로 마친 라파엘로는 일약 로마 최고의 화가로 부상했다.

인문주의자 첼리오 칼카니니는 라파엘로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렸다.

― 고대 로마를 건설하는 데 수많은 영웅들과 세월이 필요했고, 로마를 파괴하는 데는 수많은 적과 수백 년의 세월이 있었다. 라파엘로는 오늘날 로마에서 새로운 로마를 재건했다.

라파엘로는 오랫동안 로마에 머물며 인기와 명성을 얻었다. 마침내 라파엘로는 미켈란젤로의 막강한 경쟁자로 부상했다. 나이가 한참 많은 미켈란젤로는, 라파엘로는 나에게 미술을 배운 사람 중 하나일 뿐이다, 라고 폄하했다. 그러나 라파엘로가 교황청 관리로 승급했을 때 미켈란젤로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로마를 떠나 있었다.

라파엘로. 그리스도의 변모. 1518~1520. 로마 바티칸미술관.
라파엘로. 그리스도의 변모. 1518~1520. 로마 바티칸미술관.

1517년 로마관청의 유물을 관리하는 책임자로 임명된 라파엘로는 업무에 열중하면서 불후의 대작 <그리스도의 승천>에 몰두했다. 이 작품은 성서에 묘사된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을 소재로 삼은 그림이다. 그림은 각기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윗부분에는 그리스도와 모세 그리고 엘리야, 가운데는 그리스도와 그 제자들이 경탄하는 모습, 그 아랫부분에는 땅 위의 세상 사람들이 겪는 갈등과 혼란을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그가 37세라는 이른 나이에 열병으로 죽기 직전까지 그린 작품이다. 비록 완성을 보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해 아래 부분은 제자가 마무리 하긴 했으나, 라파엘로의 최후의 걸작으로 꼽힌다.

라파엘로는 이 그림에서 평화로운 천상의 신비스러움과 지상의 어지러움을 대비시켰다. 훗날 이 작품은 르네상스의 고전양식이 저물고 바로크 미술의 탄생을 알리는 서막과 같은 작품이라 평가되었다.

동시대의 미술가들의 삶을 기록한 전기 작가 조르지오 바자리(Giorgio Vasari, 1511~1574)는 라파엘로의 때 이른 죽음이 화가의 지나친 애정행각에서 비롯되었다고 기록하였다. 그것은 비록 라파엘로의 사인(死因)은 열병이지만, 만약 여자를 가려 사귀었더라면 그런 몹쓸 병을 얻지 않았을 거라는 아쉬움의 표현이었다. 바자리는 라파엘로의 여인으로 바자리는 마르게리타 라는 여인을 지목했다.

라파엘로. 라 포르나리나 혹은 젊은 여인의 초상화. 목판에 유채(1518~ 1519. 로마 국립고대미술관)
라파엘로. 라 포르나리나 혹은 젊은 여인의 초상화. 목판에 유채(1518~ 1519. 로마 국립고대미술관)

‘라 포르나리나’의 뜻은 제빵사의 딸이다. 이 초상화에 현재의 제목으로 붙여진 것은 18세기 중반 이후부터인데, 사실 라파엘로가 이 그림을 그린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모델 왼팔의 밴드에 ‘우르비노의 라파엘로(RAPHAEL URBINAS)’라는 글귀와 왼손 약지의 반지, 그림의 배경이 된 비너스를 상징하는 나무 등을 통해 이 여인이 라파엘로의 연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라 포르나리나’는 정숙한 여인의 자세를 취하고 능숙한 관능미를 뽐내고 있다. 여인은 오른손으로 왼쪽 가슴을 가린 자세를 취했는데, 그로 인해 오히려 봉긋한 양쪽 가슴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가슴 아래를 덮고 있는 얇은 천은 배꼽을 은밀하게 드러낸다. 천의 질감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해 여인의 육감적 모습은 더욱 강조된다.

흔히 라파엘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 3대 천재로 불린다. 라파엘로는 인간의 지각 세계 저편에 존재하는 플라톤의 이데아의 세계를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신 속에 있는 이념을 믿었다. 이는 라파엘로가 1515년 카스틸리오네 백작에게 보낸 편지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 저는 어떤 아름다운 사물을 그리기 위해서 그 아름다운 것들을 잘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판단력이 언제나 부족하기 때문에 사물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이념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라파엘로는 플라톤의 예술론인 ‘모방론’의 한계를 극복하고 마음에 그려진 미의 세계를 화폭에 담았다.

르네상스 천재들은 장인의 지위에 있던 예술가의 신분을 한 단계 격상시켰다. 이제 예술가는 모방하는 자가 아니라 마음의 이념으로 새로운 자연을 창조하는 존재였다.

플라톤에 의하면 인간은 그 한계성으로 인해 자연과 사물의 참된 본질을 결코 지각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르네상스 예술가들은 신플라톤주의를 무기로 자연의 참된 본질은 예술가에 의해 인식될 수 있으며 형상화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마침내 철학자들에 의해서만 파악되거나 생각될 수 있는 이념(Idee)은 이제 더 이상 철학자들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라파엘로. 초원의 마돈나. 1505년경. 목판에 유화. 비엔나 예술사 박물관.
라파엘로. 초원의 마돈나. 1505년경. 목판에 유화. 비엔나 예술사 박물관.
sgp@jayoo.co.kr

더 자유일보 일시 후원

“이 기사가 마음에 들면 후원해주세요”

  • ※ 자유결제는 최대 49만원까지 가능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