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계대출 증가세가 둔화한 가운데 은행들이 주택대출을 중심으로 잇따라 금리 인하에 나서고 있다. 우리은행은 14일부터 신규 코픽스(COFIX) 6개월 변동 기준으로 비대면 전세자금대출 상품(우리WON전세대출, i-touch전세론, 우리스마트전세론)과 우리전세론의 금리를 0.20%포인트(p) 내리기로 했다. 우리은행은 "전세 실수요자들의 주거 부담을 완화하고 적정 수준의 가계부채를 관리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 우리은행 지점 모습. /연합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가 둔화한 가운데 은행들이 주택대출을 중심으로 잇따라 금리 인하에 나서고 있다. 우리은행은 14일부터 신규 코픽스(COFIX) 6개월 변동 기준으로 비대면 전세자금대출 상품(우리WON전세대출, i-touch전세론, 우리스마트전세론)과 우리전세론의 금리를 0.20%포인트(p) 내리기로 했다. 우리은행은 "전세 실수요자들의 주거 부담을 완화하고 적정 수준의 가계부채를 관리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 우리은행 지점 모습. /연합

지난 2008년 도입된 전세자금대출은 금융기관이 직접 대출해 주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공적보증서를 발급하면 금융기관에서 이를 담보로 저리의 대출을 해주는 것이다.

전세대출은 서민의 주거안정을 위한 제도다. 하지만 부작용도 적지 않다. 전세값은 물론 ‘갭투자’에 활용되면서 집값 상승도 부추기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지난해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전세대출 규제를 시사한 바 있다. 전세대출을 받아 악용하는 사례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대출받기가 어려워질 것을 우려한 차주들이 보유한 여유자금은 그대로 놔둔 채 전세대출을 받거나 주식 등 다른 자산에 투자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집값 상승, 가계부채 증가, 자산거품의 배경에 모두 전세대출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따라 전세대출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전세대출의 경우 소득·보증금 규모에 무관하게 80∼100%의 보증을 받을 수 있다. 보증은 공공기관인 한국주택금융공사와 주택도시보증공사, 민간회사인 SGI서울보증 세 곳에서 한다. 민간회사를 제외한 정부의 공적보증 규모는 2014년 27조1857억원에서 2020년 111조4278억원으로 4배 이상 커졌다.

정부 교체기인 2017년 5월을 기준으로 보면 박근혜 정부 때인 2014~2017년 3년 간 증가율은 75%였다. 하지만 2017년부터 2020년까지 3년 간 증가율은 135%였다. 문재인 정부가 전세대출 보증을 적극 활용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7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DSR 규제를 단계적으로 시행하고 있지만 유독 전세대출은 실수요라는 이유로 제외한 상태다.

가계부채를 엄격히 관리해온 문재인 정부가 이처럼 전세대출에는 사실상 손을 놓으면서 전세대출 증가율은 여전히 20~30%대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올들어서도 4개월 연속 줄어들기 시작한 주택담보대출과 달리 전세대출은 매월 1조~2조원씩 증가하고 있다. 전세대출은 은행 입장에서도 ‘땅 짚고 헤엄치기’ 장사가 된다. 정부가 보증해주는 만큼 떼일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의 보증 덕에 전세대출 금리는 주택담보대출이나 신용대출보다 싸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월세보다 낮은 이자 비용만 내고 2억~3억원을 쉽게 조달할 수 있어 전세대출을 안 받으면 손해라는 말까지 나온다. 최근 전세값이 오르는 것은 수요보다 공급이 적은 탓도 있지만 손쉬운 전세대출 역시 전세값 인상을 유발하는 요인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전세대출은 집을 사려는 사람의 자금줄 역할도 한다.

정부의 대출 규제 강화로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은 집값의 40%까지 낮아졌다. 집을 살 때 집값의 40%만 주택담보대출로 구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3월 기준 전국 아파트 전세가율은 66.2%에 달하기 때문에 전세를 끼고 사면 집값의 절반 이상을 남의 돈인 전세금으로 조달할 수 있다. 집값 대비 전세금의 비율을 의미하는 전세가율이 LTV를 웃돌다보니 정부의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무력화되는 셈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는 최근 발표한 ‘전세자금대출 증가에 따른 시장 변화 점검’ 보고서에서 이 같은 문제를 본격 제기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가계의 전세대출 잔액 규모는 2012년 23조원에서 지난해 184조원으로 8배 증가했다. 전국의 아파트 전세 중위가격은 2013년 1억6000만원에서 지난해 말 3억1000만원으로 94% 상승했다. 전세자금 마련을 위해 대출받은 가구 비중 역시 지난해 12.2%로 2013년의 5.6% 대비 2배 이상 늘었다.

보고서는 "전세대출로 임차인의 대출 부담이 완화돼 전셋값 상승 요인이 됐다"며 "가계 경제 여건 대비 과수요를 유발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전세대출은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에 활용돼 집값 상승도 유발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소득기준 대출 규제인 DSR에도 전세대출을 포함해 대출 규모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실수요자 대출 확대, 가계부채 건전성 관리, 집값 안정이라는 트릴레마에 맞닥뜨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DSR에 전세대출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두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DSR은 유지한 채 LTV만 늘리면 실수요자 대출 증가 효과가 없다는 지적에 따라 DSR 규제를 완화하되 가계부채 건전성의 뇌관으로 지목되고 있는 전세대출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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