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개벽' 5·16 신화, 박정희 무덤에 누가 침을 뱉는가
'천지개벽' 5·16 신화, 박정희 무덤에 누가 침을 뱉는가
  • 최성재
  • 승인 2018.05.1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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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5·16혁명 50주년을 맞아 민중극단이 공연한 '한강의 기적' 연극 포스터 일부.
2011년 5월 5·16혁명 50주년을 맞아 민중극단이 공연한 '한강의 기적' 연극 포스터 일부.
칼럼= 5·16의 세계사적 의의(上)/ 최성재 교육 문화 평론가

[5·16이 쿠데타를 넘어 혁명이 될 줄은, 혁명을 넘어 천지개벽의 첫걸음이 될 줄은, 고작 18년 만에 천지개벽을 가져올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자유민주의 명분과, 일자리 1천만 개 창출이라는 경제개발의 실질을 동시에 가져올 줄은, 5백년 명분 문화에 찌든 위선과 독선의 나라를 명실상부(名實相符)하게 탈바꿈시킬 줄은 한국의 지식인만이 아니라 지구촌의 그 어떤 현인(賢人)도 예상하지 못했다.]

It(Christminster=Oxford) is an ignorant place, except as to the townspeople, artisans, drunkards, paupers. They see life as it is, of course; but few of the people in the colleges do. (≪Jude the Obscure≫ Part Third: At Melchester, Thomas Hardy 1912)

(그곳은 무지몽매한 지역, 서민들[흙수저], 기능인[공돌이], 술주정뱅이, 가난뱅이를 제외하고는 무지몽매한 인간들이 사는 지역이야. 이들[무지렁이]은 물론 인생을 있는 그대로 보지만, 대학에 몸담고 있는 인간들 중에는 인생을 그렇게 보는 이가 거의 없지. ≪이름 없는 주드≫ 토머스 하디, 번역: 최성재)

경부고속도로 개통식에서 도로 위에 샴펜을 뿌리는 박정희 대통령. 그는 이 자리에서 "가장 적은 돈으로 가장 빨리 완성시킨 고속도로다"라며 기뻐했다.
경부고속도로 개통식에서 도로 위에 샴펜을 뿌리는 박정희 대통령. 그는 이 자리에서 "가장 적은 돈으로 가장 빨리 완성시킨 고속도로다"라며 기뻐했다.

[1961년의 한국과 2018년의 한국]

1961년 한국은 국가 예산의 52%를 미국의 원조에 의존하고 있었다(박정희의 ≪국가와 혁명과 나≫). 35년에 걸친 식민지배의 여파로 한국은 근대화를 담당할 지식인이 태부족(1945년 당시 전문대 이상 대학생 7819명≪해방전후사의 재인식≫)한데다, 엽전의식(조선인은 안 돼!)이 만연하여 정신적 공황상태에 있었다. 대한민국호에 승선한 사람들은 선장도 항해사도 기관사도 없는 것 같은 정신적 공황상태를 겪고 있었던 것이다.

설상가상 3년간의 동족상잔으로 그전에 이미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던 ‘섬나라’ 자유대한은 그나마 비바람을 가려 주던 초가삼간마저 반파(半破)되어, 거지와 깡패와 도둑이 선량한 시민과 거의 구별되지 않는 나라로, 절대빈곤과 무질서가 정상인 나라로 전락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나라에서 고무신 한 켤레, 막걸리 한 사발이면, 누가 대통령이 되건, 누가 국회의원이 되건, 그들이 미국의 원조를 어떻게 갈라먹든, 어떻게 나눠주든, 멀쩡한 선남선녀가 신성한 주권을 얼씨구나 내팽개친다고 해서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었을까. 의기양양 자랑해야지!

(소련과 동구권의 몰락 이후 자유민주 국가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지만, 10억 절대빈곤국들을 대상으로 현장에서 심층 연구한 바에 따르면, 선거 민주주의는 15년이 넘도록 빈곤과 무질서를 도리어 심화시켰을 뿐이다. ≪전쟁, 총, 투표≫ 2009)

2018년의 한국은 북한에 비하면, 1961년의 ‘남조선’보다 못한 2018년의 북한에 비하면, 지상낙원을 넘어 지상천국이다.

2017년 ≪The Economist≫의 민주화 지수(Democracy Index)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세계 20위로서 일본 23위보다 앞선다. 아시아에서 당당 1위다. 대만 33위, 인도 42위, 싱가포르 69위, 홍콩 71위에 월등히 앞선다.

심지어 미국(21위), 이태리(21위), 프랑스(29위)보다 앞선다. 개혁개방으로 승승장구하는 중국 139위, 베트남 140위와는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다.

북한은? 167개국 중 167위!

그 맨 꼭대기에 김정은이 있는데, 문재인 정부는 정적에게는 그렇게 가혹하게 대하면서,

자유민주의 한 지붕 아래 건넌방 정적의 티끌은 대들보로 침소봉대하면서, 지구촌의 챔피언 3대 세습 독재자에겐 정권 공조를 민족

공조로 회칠하면서,

서로 부둥켜안고 파안대소하면서,

평화의 이름으로,

3백만을 굶겨 죽이고 때려죽이고 쏴 죽이는 것도 평화의 이름으로,

2300만 노예를 뼛속까지 착취하는 것도 평화의 이름으로, 민노총 산하 일색의 방송을 총동원하여 나팔 불고 꽹과리 울리고 상모를 돌리며, 곧 폐기될 듯한 헌법을 쓰레기통에 집어던지고 황제 겸 교황 대통령으로서 면죄부를 안겨 주고 있다.

UN의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는 1인당 실질구매력(PPP)만이 아니라, 기대수명, 유아사망률, 교육, 양성평등, 10대 소녀 임신율, 세금, 부채 등을 종합해서 수치화한 것인데, 한마디로 말해서 객관적 행복지수인데, 2016년(박근혜 정부 시절)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18위이다.

산업 근대화의 상징인 구로공단 기공식.
산업 근대화의 상징인 구로공단 기공식.

프랑스 21위, 이태리 26위, 스페인 27위보다 높다! 인구 3천만 이상의 국가로 치면, 독일 4위, 미국 10위, 캐나다 10위, 영국 16위, 일본 17위에 이어, 당당 세계 6위다. 뭐, 이런 나라를 헬 조선이라고? 그건 의당히 북한에 대고 할 소리다. 한국은 두말하면 역적에 매국노, 파라다이스 코리아! 감사할 줄 모르는 한국의 위선적 학계와 사악한 언론이여! 386운동권 원님의 나팔수들이여!

개혁개방으로 한창 들떠 있는 중국 90위, 베트남 115위, 인도 131위가 현재 한국 수준이 되려면, 100년은 더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그나마도 과연 가능이나 할까.

한국은 1976년에 국산 승용차 '포니'를 생산한다. 도로 위의 갓을 쓴 노인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한국은 1976년에 국산 승용차 '포니'를 생산한다. 도로 위의 갓을 쓴 노인과 70년대 중반까지 운행되던 코로나 자동차가 묘한 대조를 이룬다.

[남북의 차이는 박정희와 김일성의 차이]

해방 당시에는 한국보다 북한이 월등히 나았다. 소련군이 일제로부터 빼앗아 준 공장과 발전소, 거기에 지하자원까지 북한은 한국보다 10배 많았는데, 인구는 한국의 절반밖에 안 되었다. 아무 것도 않고 그것만 뜯어 먹어도 10년은 한국에 비해 호의호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외환보유고든 자유든 평등이든 한국이 북한보다 천 배, 만 배 많거나 낫다.

이 차이를 만든 사람이 김일성과 박정희다. 북한은 아직까지 김일성 체제 그대로이고, 한국은 지금도 박정희 체제가 근간을 이루기 때문이다.

[쿠데타냐, 혁명이냐]

한국에서는 반세기가 넘었지만, 아직도 5·16을 쿠데타로 보느냐, 혁명으로 보느냐, 이 잣대로 선악의 기준을 삼는 자들이 수두룩하다. 특히 지식인일수록 그러하다. 명색이 우파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다. 죽어

도 공부를 안 하니까, 자신이 무슨 소리를 나불대는지도 모르니까!

CSP(Center for Systemic Peace)에 따르면, 1946년에서 2010년까지 전 세계에서 쿠데타는 750회 발생했다. 한국은 1961년 5월 16일과, 1979년 12월 12일이 포함된다. 한 명도 죽은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도 군대의 힘으로 헌정을 중단시키고 2년간 계엄 통치했으니까, 5·16은 쿠데타가 맞다. 그러나 그 후에 일어난 것을 보면, 혁명도 능가하는 가히 천지개벽이다.

쿠데타는 나쁘고 혁명은 좋다, 라는 단순무식한 공식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두 가지 예로 반증하겠다.

프랑스 혁명은 길게 보면 위대했지만, 그것은 곧바로 불안과 공포의 검은 장막에 휩싸였다. 나폴레옹이 쿠데타로 정치적 안정과 효율적 정부와 민법 정착과 국민교육 보급과 과학기술 진작과 산업혁명을 가져옴으로써 비로소 프랑스만이 아니라 유럽 전체에 자유와 평등과 박애를 시대의 도도한 흐름으로 바꿔놓았다. 그것은 대량살상의 처절한 전쟁 와중에도 바뀌지 않았다. 자유는 피를 먹고 자란다!

러시아 혁명은 어떤가. 노동자와 농민이 주인이 된다는 만민평등의 공산혁명은 한 줌의 공산당이 새로운 지주와 자본가와 폭군으로 군림하며 절대다수를 그저 시키는 대로 행복해요, 라고 외치는 노예로, 인간 로봇으로, 인간 앵무새로 전락시켰다. 사육시켰다. 착취했다.

유물론은 자본가와 지주만이 아니라 체제에 반대하는 노동자와 농민을 나폴레옹 전쟁과 세계 1차, 2차 대전에서 사망한 사람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을 말 그대로 때려 죽였다. 인간보다 물질이 더 중요했으니까! 후에 중공은 그보다 더했다. 공산권에서 생목숨을 잃은 사람은 1억 명을 웃돈다. 결국 3차세계대전보다 못한 혁명이 러시아의 공산혁명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영구 혁명의 실상이었다. 영구 평화의 실상이었다. 그것은 길게는 70년, 짧게는 45년, 인류의 절반을 철의 장막에 가두고 그들에게 지옥의 쓴맛을 제대로 보여 주었다.

[5.16은 산업혁명과 민주혁명을 동시에 달성한 세계유일의 군사 쿠데타]

해방 당시 문맹률이 78%이고 농민이 70%인 나라에서 자유선거를 실시한 나라가 한국이다. 과연 그대로 두었으면, 장면의 민주당이 자유민주와 경제개발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었을까. 인도가 있지 않느냐고? 좋은 지적이다.

미안하지만, 인도는 실패했다. 네루는 명분이야 찬란했지만 민주도 뿌리 내리지 못했고 경제개발은 더더구나 못했다.

민주는 첫째가 평등인데, 신분타파인데, 네루는 카스트 제도를 전혀 없애지 못했다. 선거권만 준다고 해서 카스트는 없어지지 않는다. 대대적으로 중산층이 형성되어야 하고, 교육이 보급되어야 하고, 상공업이 발달해야 하고, 무엇보다 농지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승만은 소작농을 0%로 만들었지만, 네루와 네루의 딸은 고작 농지의 3%만 경작자에게 분배했다.

여전히 농민의 절대다수를 소작농으로 내버려두었다. 네루는 선거 민주주의로 제 가문의 영광만 1947년에서 1989년까지 합법적으로, 예쁜 말로 유혹하여, 누리게 했을 뿐이다.

자유민주가 정착된 서구도 산업혁명으로 중산층이 두터워지고 이어 제1차세계대전으로 여성노동이 절실해진 이후에야 비로소 남녀가 공히 1인 1표를 행사했다.

산업혁명의 첫걸음을 떼자마자, 1963년 박정희는 바로 후진국에서는 일찍이 전례가 없는 공정한 선거로, 그래서 그야말로 아슬아슬하게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1963년 이후 박정희 체제는 유신체제를 포함하더라도 이미 산업혁명을 완성한 1914년 서구 어떤 나라보다 앞선 자유민주를 실천했던 것이다.

남녀 공히 1인 1표인 자유민주를 실천했던 것이다. 민주도 상대적인 것이다. 그는 경제개발만 잘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단순하게 1963, 1972년의 대한민국을 200년 300년에 걸쳐 서서히 발전시킨 서구의 자

새마을 운동 현장을 시찰하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
새마을 운동 현장을 시찰하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

유민주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미친민주주의(Democrazy)적 발상이다.

독립한 지 200년이 되지만, 아직 중남미 각국은 군사 쿠데타가 평균 100번은 일어났지만, 한국의 근처에도 따라오는 나라가 없다. 그들 나라에서 보듯이 만약 박정희가 단지 권력만 탐하고 저들끼리만 잘 ‘처먹고’ 잘 살았다면, 그 후에 군사 쿠데타가 최소한 10번은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고도 나라는 그 모양 그 꼴일 가능성이 다분하다. 지금도 미국의 원조로 간신히 버티고 있을지 모른다. 언제 공산화되었을지 모른다. 진작 평화적으로 적화 통일되었을지 모른다.

한국과 가장 여건이 비슷했던 대만은 1949년부터 1987년까지 대를 이어 38년간 계엄 통치했지만, 박정희는 딱 2년만 계엄 통치했다. 유신시대에도 총선은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어서 여야의 의석이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 반면에 대만과 싱가포르는 야당의 의석이 텅텅 비어 있었다. 한두 석, 많아야 20석!

남한과 북한, 일본이 동시에 찍힌 인공위성 사진. 북한 지역은 전력난을 반영하듯 아예 캄캄한 '어둠의 땅'이다.
남한과 북한, 일본이 동시에 찍힌 인공위성 사진. 북한 지역은 전력난을 반영하듯 아예 캄캄한 '어둠의 땅'이다.

박정희는 또한 정적을 단 한 명도 죽이지 않았다. 히틀러보다 잔인한 김일성의 무수한 도발에도 불구하고, 박정희는 자유민주의 근간인 법치(法治)를 뿌리내렸고 김일성 만세를 부르짖는 자 외에는 일반 국민의 사생활에 일체 손대지 않았다.

국민은 누구나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간직하고 있었다. 칸트가 말한 행복의 3요소, 사랑과 일과 희망 중에 최소한 희망은 국민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나라를 만들었던 것이다.

5.16혁명(쿠데타라고 하든지)은 기타 749개의 군사쿠데타와 시작부터 달랐다. 5.16의 주역들은 애국심으로 완전 무장되어 있었다. 박정희는 청렴하고 엄한 가부장이었지, 계몽 대통령이었지, 폭군이나 독재자가 아니었다. 정치는 결과다. 도덕과 종교는 동기지만, 정치와 경제는 결과다. 정치와 경제를 도덕과 종교로 재단하면, 마녀사냥이 난무하고 인민재판이 기승을 부린다. 피의 복수가 끊이지 않는다.

자신의 욕심을 투영한 독심술(투사적 동일시)로 박정희의 권력욕을 꿰뚫어 보았다고 희희낙락 잘난 척할 일이 아니다. 그건 조선 500년 위선적 명분 문화가 아직도 한국 지식인의 무의식을 점령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입은 민주주의, 뇌는 봉건주의! <下편에 계속> 2018.05.16

csj@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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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루 2018-05-24 22:48:18
박정희에 대해 이렇게 적나라하고 정확한 평가는 일찍이 본 적이 없습니다. 박정희의 개발독재는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이 땅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필수 관문이었던 겁니다. 입만 열었다 하면, 글만 썼다 하면 박정희 흠집내기에 앞장서는 이 땅의 다수 지식인들 머릿속에는 대체 무엇이 들어있는 걸까요? 굶어 죽어도 좋으니 민주주의가 최우선이라고 떠들어대는 저 철없는 좌파지식인들과 정치인들, 그리고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저 망각의 청개구리같은 국민들에게 침을 뱉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