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명씩 8줄 대형으로 추는 '8일무'는 천자만이 즐길 수 있어
조선은 '6일무' 이하만 가능, 종묘제례 각종 의식 때 행해져

성균관에서의 ‘팔일무’ 광경.
성균관에서의 ‘팔일무’ 광경.
일무(佾舞)는 줄지어 추는 군무로 제례 의식에 쓰인다. 문무(文舞) 무무(武舞) 두 종류로 나뉘며, 지위에 따라 8·6·4·2 일무가 있다.

서울시립무용단이 다음 달 19일부터 2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佾舞(일무)’을 공연한다. ‘일무’란 ‘줄 지어(佾) 추는 춤(舞)’를 말한다. 국가(왕실)의 제례나 각종 의식에 쓰였다.

기존 안무와 대형을 유지한 채 새로움을 더한 ‘일무’(1막)에 이어, 춘앵전과 궁중무용 가인전목단(佳人剪牧丹)을 강렬한 음악과 빠른 춤사위로 재해석하고(2막), 현대무용가 김성훈과 김재덕, 정혜진 서울시무용단장이 함께 한 ‘신(新)일무’도 선보인다(3막). "이번 무대를 통해 우리 전통의 정신을 확인하며 모든 세대가 공감하게 되길 염원한다." 정혜진 단장의 말이다.

오늘날 ‘佾舞’는 국가무형문화재이자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종묘제례악’에 바탕을 둔다. 연주(악기·가창)와 佾舞가 ‘종묘제례악’을 구성한다. ‘일무’는 문·무(文舞·武舞)로 나뉜다. 지위에 따라 규모를 달리 한, 팔일무(천자)·육일무(왕)·사일무(대부)·이일무(선비) 네 종류가 있다.

즉 8명씩 8열(64명)로 서서 추는 ‘팔일무’는 천자(황제)만이 동원할 수 있는 춤이었다. 조선에선 6명씩 6열 ‘육일무’및 그 이하만 가능했다. 그게 중세 동북아의 국제질서였다. 중국과의 종번(宗蕃)관계를 청산한 대한제국이 황제를 칭하고 독자 연호를 사용(稱帝建元)하며 ‘팔일무’를 썼으나(1897년), 일제시대 때 ‘육일무’로 격하된다.

‘기독교가 그 발상지(이스라엘)나 교황청 소재지(이탈리아) 것이 아니듯, 유교도 특정 국가에 속하지 않는다. 고급 종교 내지 문화는 보편성을 띠기 마련이다. 2500년전 제자백가의 경세치국 논리 가운데 인기 없는 한 부류였던 공자였으나, 사후 수백년 후 최초의 통일왕조 한나라 들어서자 국정이념으로 채택된다. 공자의 사상은 ‘충·효’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으로 개념화되며 권력 및 제도의 유지에 유효하게 활용됐다. 다시 1000년 후, 남송에 이르러 공자의 사상은 성리학性理學이라는 고도의 관념철학으로 발전한다. 주희(朱熹 1130~1200)가 완성시켰다 해서 ‘주자학’이라고도 부른다.

유교의 제례 문물이 전통문화를 ‘악’으로 간주한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는 가운데, 기적처럼 대한민국에서 명맥을 유지한다. ‘인류문화유산’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비록 근대화(자본주의+국민국가)에 낙오돼 몰락한 조선이지만, 중세국가로선 흥미로운 요소들이 많다.

종묘제례악 ‘일무’.
종묘제례악 ‘일무’.

공자가 꿈꾸던 이상향에 가깝다. 그는 인류의 삶을 ‘예禮’ ‘악樂’으로 파악했다. 적절한 규범과 그것을 일깨우는 각종 의식(禮), 거기 쓰이는 음악(+무용)으로 삶이 온전해질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것의 완성된 규범화 제도화가 조선 ‘종묘 제례+악’이다. 토지·곡식의 신을 위한 제사는 농경국가의 수장(王)에게 가장 중요한 행사일 수밖에 없었다. 그 때 쓰이던 제례 무용 ‘일무’는 우리의 전통문화이자 인류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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