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를 중심으로 정부의 탄소중립 로드맵이 기업 현실을 도외시해 실현 불가능하다는 견해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6일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무역의날 기념식에서 탄소중립 목표 강행 의지를 재차 피력했다. /연합
산업계를 중심으로 정부의 탄소중립 로드맵이 기업 현실을 도외시해 실현 불가능하다는 견해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6일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무역의날 기념식에서 탄소중립 목표 강행 의지를 재차 피력했다. /연합

국내 산업계가 탄소중립과 관련한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불통 행보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기업 현실을 도외시한 급진적 목표 설정 탓에 감당키 어려운 비용부담이 발생하면서 경영 압박이 가중되는 이른바 ‘탄소중립 리스크’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일 재계에서는 오는 203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는 정부의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가 쏟아졌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중소기업 352곳 대상의 실태조사를 통해 응답 기업의 88.4%가 자금·인력·시간의 부족으로 2030 NDC 달성을 불가능하게 보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경제학회는 국내 경제학자들이 2050년 탄소중립 목표의 비현실성과 비경제성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는 설문결과를 내놓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원활한 탄소중립 이행 관련 규제 혁파를 정부에 건의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세계는 탄소중립으로 가고 있다"며 탄소중립 목표 강행 의지를 재차 피력했다. 정부와 산업계가 한날 정반대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양측의 대립은 지난 8월부터 본격화 됐다. 국회가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 제정을 통해 2030 NDC 하한선을 기존 26.3%에서 35%로 상향했고,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위원회가 이를 40%로 재상향해 지난 10월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지난 11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2030 NDC를 2018년 대비 40% 이상 감축하겠다고 국제사회에 공언했다. 4개월 새 탄소 감축 목표가 3차례나 높아진 셈이다. 이로써 다수 중소기업이 포진한 산업 부문의 감축 목표도 기존 6.4%에서 14.5%로 2배 이상 뛰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기업의 의견이 묵살됐다는 사실이다. 당시 경총,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모든 재계 단체들은 글로벌 경영환경의 불확실성 가중에도 막대한 비용부담을 추가로 떠안아야 할 기업과의 충분한 합의 없는 일방적 통보에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실제 기업들의 부담은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산업연구원의 ‘탄소중립 감축수단별 비용 추정’ 자료에 따르면 6개 핵심산업에서만 2050 탄소중립을 위해 199조원의 비용 부담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석유화학 91조7530억원, 철강 71조770억원, 반도체 17조9000억원, 디스플레이 10조4400억원, 시멘트 5조8500억원, 정유 1조9800억원 등이다.

이조차 국책연구기관이 보수적 시각에서 분석한 수치라는 지적이 있다. 시멘트 업계는 이미 연간 1000억원 이상의 탄소중립 비용이 발생해 경영이 악화되고 있다.

정유업계는 더욱 심각하다. 조준상 대한석유협회 산업전략실장은 "탄소중립에 의한 국내 정유산업 피해액이 전환·매몰비용과 매출 손실을 포함해 800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산업연구원은 탄소중립 과속 정책으로 시멘트·석유화학·철강 등 고탄소 산업군의 일자리가 20% 감축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86만명에 달하는 근로자들이 허울 좋은 그린뉴딜 정책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탄소중립 로드맵의 비현실성은 정부의 역량에서도 드러난다. 대한상의에 의하면 한국의 탄소중립 기술은 유럽연합(EU)과 미국의 80% 수준으로 3년 정도의 기술격차가 있다. 그럼에도 탄소중립 투자액은 초라한 수준이다. 오는 2030년까지 미국과 EU는 탄소중립에 각각 1870조원, 1320조원을 투자할 계획인 반면 한국이 내년 예산에 반영한 금액은 약 12조원에 불과하다. 능력은 없는데 이상만 높아 정책 자체의 불확실성이 크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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