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이 18일 사퇴했다. 마땅한 일이다. 조직이 큰 말썽을 일으켰으니 수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그의 사표로 끝날 일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위원장이 아니라 위원회이기 때문. 선관위는 무책임하고 무능하다. 부끄러움을 모른다. 조직 전체가 완전히 탈바꿈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공정선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유권자들의 불신을 씻을 수 없다.

노 위원장은 "대선 때 코로나 확진자 사전투표 관리 책임을 통감한다"며 그만두었다. 선관위의 엉터리 관리는 그것뿐 아니었다. 서울의 투표장에선 유권자가 자신의 투표용지 봉투에서 여당 후보에 기표된 용지를 발견했다. 투표를 마친 투표함을 규정과 달리 감시카메라가 가려진 선관위 사무국장 사무실에 보관한 경우도 있었다.

선거 때마다 선관위는 도마에 올랐다. 선관위는 헌법상 권한을 근거로 지방·경찰공무원과 병원직원 등에게 선거사무를 넘긴다. 선관위 직원들은 그들을 함부로 부리거나 무시해 말썽을 빚어왔다. 일은 제대로 못하면서 군림하는 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노 위원장은 20년 11월 취임해 1년 반도 지나지 않았다. 현직 대법관이라 비상근. 그동안 회의 참석을 빼고 며칠이나 근무했을까? 법조인이라 행정경험이 있을 리 없다. 더욱이 실질 업무·권한은 상임위원과 사무총장에게 있다. 그가 무슨 관리·감독을 했겠는가?

그러나 총리급 위원장이라면 그에 걸맞는 마무리를 해야 했다. 여론에 떠밀려 그만두기에 앞서 할 일은 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위원회에 관심이 있었다면 문제투성이 조직인지 알았을 것이다. 내부 개혁 없이 국민신뢰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현재 상임위원·사무총장 모두 비어있으니 사무차장 등 실무자들을 조사해 책임을 물어야 했다. 그리고 조직을 재정비 했어야 했다. 그냥 그만둔 것은 선관위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선관위원장은 현직 대법관 겸직이 관례다. 바꾸어야 한다. 위원들의 호선에서 방대 조직을 관리·감독할 책임 있고 역량 있는 사람으로 뽑아야 한다. 그것이 선관위가 거듭나는 출발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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