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운정의 길 따라...] 봄이 오는 시내

물위를 걷는 듯한 스카이워크에서 김유정문학촌까지
연인과 함께 '숲속의 작은 유럽' 제이드가든 데이트
인어공주·라이온 킹 반기는 애니메이션 박물관 여행
카누 타고 물살 가르며 의암호 풍경 즐기는 '물레길'

소양간 스카이워크. 
소양간 스카이워크. 

춘천에 들어서자마자 공지천으로 간다. 1980년대 연인들이 데이트를 하기 위해 춘천으로 달려가던 시절, 그들은 ‘경춘가도’라는 예쁜 이름이 붙은 도로를 따라 차를 달려 공지천으로 갔다. 공지천에서 오리배를 탔고 ‘원두커피’를 마셨다. 지금도 그 시절 오리배는 여전히 남아 봄바람에 한가롭게 흔들리고 있고, 커피를 마시던 그 카페도 여전히 문을 열고 커피를 팔고 있다. 카페는 우리나라 최초의 원두커피 전문점이기도 하다. 요즘은 찾는 이가 별로 없어 카페는 한산하다. 요즘 청춘들은 구봉산전망대 카페거리로 간다고 한다.

◇ 봄빛에 반짝이는 의암호

카페에서 커피를 사 들고 공지천을 따라 걷는다. 의암호는 봄빛에 반짝이고 버드나무는 연초록으로 물들었다. 그러고 보니 춘천의 이름은 봄내다. 봄 춘(春), 내 천(川). ‘봄이 오는 시내’란 예쁜 이름이다.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라는 시를 쓴 유안진 시인은 춘천이라는 도시를 이렇게 읊었다. "사랑해 마지않을 꿈속의 여인이 살고 있을 것만 같은 바로 그곳." 시인의 말대로 춘천에서는 그럴 것 같다. 춘천에서는 몇 시절 내내 그리웠던 누군가를 어느 골목 모퉁이에서 문득 만나게 될 것만 같고, 안개 가득한 호숫가 찻집에서 그 사람과 말없이 차 한잔 나누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편에 켜켜이 쌓인 상처가 말끔히 치유될 것만 같다.

춘천은 연인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즐거운 곳이다. 막국수와 닭갈비를 맛있게 먹고 옛 간이역과 분위기 좋은 카페를 구경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춘천은 막국수의 고장이다. 여행객이 춘천의 별미로 꼽는 막국수는 오래전부터 주민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었다. 메밀을 많이 재배한 강원도에서 메밀 요리가 발달했는데, 막국수는 만들기 쉽고 먹거리가 많지 않던 시절에 별미이자 겨울을 나는 음식이었다.
 

막국수 만들기 체험.
막국수 만들기 체험.

◇막국수로 맛있는 여행

춘천에서 태어난 김유정의 소설에도 막국수를 만들어 먹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단편소설 〈산골 나그네〉에는 "금시로 날을 받아서 대례를 치렀다. 한편에서는 국수를 누른다. 잔치 보러 온 아낙네들은 국수 그릇을 얼른 받아서 후룩후룩 들이마시며 색시 잘났다고 추었다"는 구절이 있다. 〈솟〉에도 "저 건너 산 밑 국숫집에는 아직도 마당의 불이 환하다. 아마 노름꾼들이 모여들어 국수를 눌러 먹고 있는 모양이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 등장하는 ‘눌러 먹는 국수’가 막국수다. 밀가루로 만든 국수는 반죽을 치대 점성을 높인 면을 뽑지만, 글루텐 성분이 거의 없는 메밀은 뜨거운 물을 넣어 치댄 반죽을 국수틀에 넣고 눌러서 면을 뺀다. 이 면에 시원한 동치미 국물을 부어 먹는 것이 막국수다. 막국수의 ‘막’은 ‘지금, 바로, 마구’라는 뜻이다.

막국수를 테마로 한 춘천막국수체험박물관은 막국수를 뽑는 국수틀과 가마솥을 본떠 지었다. 박물관 1층은 전시관으로 꾸몄는데, 춘천 막국수의 유래와 메밀 재배법, 막국수 조리 과정 등을 보여준다. 선조들이 국수를 만들 때 쓰던 디딜방아와 맷돌 등 각종 도구도 전시한다.

문화해설사가 들려주는 막국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우리가 그동안 잘못 안 사실을 깨닫는다. "사람들은 막국수를 여름 음식으로 생각하지만, 원래 겨울 음식입니다. 메밀은 가을에 수확하는 데다 반죽을 직접 눌러서 만들다 보니, 농한기에 만들어 먹었죠." 음식 칼럼니스트 박찬일 셰프도 《노포의 장사법》에서 막국수가 겨울 음식이라고 말한다. "메밀은 대개 여름에 씨를 뿌려 늦가을에 거둔다. 그래서 자연스레 겨울이 제철이 된다. 대부분의 곡물이 그렇지만 메밀은 열에 아주 약하다. 겨울에 보관된 상태여야 제대로 맛을 낸다. 냉장고가 보급되면서 늦가을에 수확한 메밀을 1년 내내 좋은 상태로 유지할 수 있지만, 과거에는 언감생심이었다."

춘천의 별미 막국수.
춘천의 별미 막국수.

그렇다면 춘천 막국수는 언제부터 유래했을까. 해설사는 여러 가지 배경이 있다고 설명한다. "춘천은 조선 시대부터 양구, 화천, 인제 등지에서 재배한 메밀을 한양으로 보내기 전에 모으는 곳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제분소가 많았는데, 제분소 주변에서 메밀가루를 반죽해 눌러 먹던 것이 춘천 막국수가 됐다고 합니다. 물론 이것 역시 한 가지 설일 뿐입니다." 1960년대 화전 정리법이 시행되면서 화전민이 동네로 내려와 먹고살기 위해 국숫집을 열었고, 1970년대 후반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마이카족’과 춘천을 찾는 관광객이 늘면서 막국수가 춘천을 대표하는 향토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는 설도 있다.

박물관 2층은 체험장이다. 관람객이 직접 메밀가루를 반죽하고, 국수틀을 이용해 전통 방식으로 면을 뽑는다. 이 면으로 즉석에서 막국수를 만들어 먹는데, 그 맛이 웬만한 식당 못지않다.

◇볼 것 많고 즐길 거리 많은 춘천

자, 이제 박물관에서 나와 춘천 여행을 해보자. 김유정은 춘천을 대표하는 작가다. 짧은 생애를 살다 갔지만, 한국문학사에 깊고 진한 발자국을 남겼다. 그의 고향이자 다수 작품의 배경이 된 신동면 증리(실레마을)에 김유정문학촌이 조성되었다. 생가와 전시관·연못·동상 등이 있는데 천천히 걸으며 돌아보기 좋다.

문학촌에서 5분 정도 걸어가면 김유정역이 나온다. 원래 이름은 신남역인데, 김유정문학촌이 만들어지면서 김유정역으로 바꿨다. 김유정역 바로 옆에는 옛 기차역이 있다. 옛날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역이라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으니 꼭 들러보시길.

저녁 무렵엔 소양강 스카이워크로 발길을 돌려보자. 스카이워크는 높은 곳이나 물 위에 투명한 바닥 구조물을 설치해 하늘을 걷는 듯한 느낌을 주는 시설이다. 특히 저물 무렵, 노을 지는 풍광이 좋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애니매이션박물관.
아이들이 좋아하는 애니매이션박물관.

애니메이션박물관은 아이들이 한 번 들어가면 나오려고 하지 않는 곳. 1992년 세계 극장가를 휩쓸었던 디즈니의 ‘인어공주’ 포스터를 비롯해 ‘라이온 킹’ ‘마리 이야기’ ‘모노노케 히메’ 등 다양한 포스트와 다양한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의 캐릭터 모형도 만날 수 있다. 한국관·북한관·일본관·유럽관·미국관 등 각 나라별 전시관을 마련해 대표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대표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연인들이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내는 곳은 제이드 가든이다. ‘숲속에서 만나는 작은 유럽’을 콘셉트로 꾸민 유럽풍 정원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토스카나 양식으로 지은 방문객센터가 반긴다. 다양한 식물을 자유롭게 심어놓은 영국식 보더정원, 아름다운 분수외 식물의 정형미가 잘 어우러진 이탈리안 가든, 수생식물원 등 주제별로 다양한 수목원이 꾸며져 있다. 드라마 ‘너는 펫’ ‘사랑비’ 등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의암호 일대를 카누로 여행하는 ‘물길’인 ‘물레길’도 추천한다. 30분이면 누구나 물살을 가르며 호반을 미끄러지듯 멋지게 달릴 수 있다. 카누의 묘미는 느리고 여유롭다는 것. 패들링(노젓기)을 하면 배는 고요히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간다. 의암호의 풍경을 느긋하게 즐기며 노를 저어보자.

빵을 좋아하는 여행객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 춘천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대원당으로, 1968년에 문을 열었다. 옛날에 먹던 맛이니 엄마 아빠에겐 추억의 맛이고, 아이에겐 다소 낯선 맛일 수도 있다. 달콤한 잼을 바른 맘모스빵과 부드러운 크림이 듬뿍 든 버터크림빵이 가장 인기다.

옛 정취를 고수란히 간직한 김유정역.
옛 정취를 고수란히 간직한 김유정역.

[여행정보]

소양호 가는 길에 자리 잡은 샘밭막국수(033-242-1712)는 춘천막국수의 진리로 불리는 곳이다. 닭갈비는 온의일점오닭갈비(033-253-8635)와 우성닭갈비(033-254-0053) 추천. 사농동에 자리한 평양냉면(033-254-3778)은 냉면 마니아라면 지나치지 말아야 할 냉면집. 춘천 시티투어 버스도 이용해 보자. 춘천역에서 출발해 소양댐·청평사·김유정문학촌 등 춘천의 대표적인 여행코스를 지난다. 맞춤형과 순환형 두 가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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