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연합
20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연합

국내 증시가 좀처럼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거래대금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올들어 지난 2월부터 20조원을 밑돌기 시작해 감소세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2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증시의 이번 달 일평균 거래대금은 17조6290억원으로 2020년 2월의 14조1770억원 이후 2년여 만에 최저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특히 지난해 1월의 42조1073억원과 비교하면 58.5%나 줄었다.

올들어 2988.77로 출발한 코스피지수는 최근 2700선 안팎에서 횡보하고 있다. 이는 외국인 투자자의 매도 러시와 관련이 깊다. 외국인 투자자는 지난 17일까지 석 달 보름 동안 11조6818억원을 순매도했다. 유가증권시장 9조2198억원, 코스닥시장 2조4620억원이다.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또한 달러 강세 기조로 환손실 발생이 커지면서 국내 증시뿐 아니라 아시아 신흥국에 대한 투자 매력이 떨어진 것도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20일 1236.1원에 거래를 마쳐 지난 2월 말의 1202.3원과 비교해 2.8% 상승했다.

외국인 투자자는 ‘셀 코리아’ 뿐 아니라 하락장에 베팅하는 공매도 거래도 늘리면서 국내 증시에 더욱 큰 부담을 주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1·4분기 코스피 시장의 공매도 거래대금 규모는 29조9549억원으로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17년 5월 이후 분기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올해 1·4분기 일평균 공매도 거래대금도 5077억원으로 역대 최다를 갈아치웠다. 지난해 일평균 거래대금 4280억원 대비 15% 늘어난 수치다. 외국인 투자자가 공매도 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0%에 달한다. 올해 상반기 내로 공매도 전면 재개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주가 하락 압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외국인 투자자의 이 같은 매도세를 받아낸 것은 ‘동학개미’로 불리는 개인투자자다. 지난 2020년부터 이달 들어 지난 19일까지 개인투자자들은 코스피·코스닥 시장에서 160조6169억원을 순매수했다.

이는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2020년 3월 19일 코스피 지수가 장중 1439.43까지 하락했던 것을 지난해 상반기 3000선까지 끌어올린 동력이 됐다. 특히 지난해 말 기준 개인투자자 수는 1374만명으로 2019년 말 614만명의 2배가 넘는 수준으로 불어났다. 최근 2년 새 760만명이 신규 유입된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개인투자자의 투자 열풍은 식어가고 있다. 국내 증시를 지탱하던 동학개미가 백기를 들고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국내 기업 가운데 소액주주가 가장 많은 상장사는 삼성전자다. 지난해 말 삼성전자의 소액주주는 506만6351명으로 3분기 말의 518만8804명보다 2.4% 줄었다. 삼성전자의 소액주주가 전 분기보다 줄어든 것은 2019년 4분기 이후 처음이다.

카카오의 감소 폭은 더욱 크다. 카카오의 지난해 말 소액주주는 191만8337명으로 3분기 말의 201만9216명보다 5% 감소했다. 카카오의 소액주주가 줄어든 것 역시 2019년 말 이후 2년 만에 처음이다. 이는 소액주주, 다시 말해 개인투자자들이 증시를 떠나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개인투자자 증시 이탈의 가장 큰 원인은 저조한 수익률이다. 실제 2020년부터 지난 19일까지 개인투자자가 순매수한 상위 10개 종목의 수익률 평균은 마이너스(-) 3.7%다. 10개 종목 중 5개 종목이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가장 많이 산 주식 중 절반이 눈물을 흘린 셈이다.

빚을 내서 주식을 사는 ‘빚투’ 규모 역시 줄었다. 지난해 9월 25조7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였던 신용거래 융자 잔고는 올들어 지난 2월 20조원대로 쪼그라들었다. 현재 증권사의 신용융자 금리 최고 수준은 연 9%대다. 올해 기준금리가 더 오르면 신용융자 금리는 연 10%를 넘어설 수 있다. 빚을 내 투자하려면 수익률이 10%는 넘어야 한다는 것인데, 개인투자자 입장에서는 상당한 부담이다.

하락장에서 빚투는 위험하다. 증시에 실망해 외면하게 만들 수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도 증시에서 큰 손실을 본 개인투자자들은 아예 시장을 떠났다. 증시의 약세가 지속될 경우 이 같은 상황이 재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