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
조우석

다른 건 몰라도 권력은 부자지간에도 공유 못한다는 게 동서고금의 진리다. 김일성-김정일로 이어지는 북한의 권력 세습은 그런 통념을 깼던 썩 흔치 않은 사례인데, 지금도 미스터리다. 수많은 설이 있지만, 미국 저널리스트 마이클 브린의 통찰을 나는 신뢰한다.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세습왕조가 세워진 배후에는 아버지의 사랑과 지지를 받으려는 아들의 피나는 노력이 숨어있다."() 김정일의 적극적 역할이 중요했던 것인데, 북한이라는 반 문명 반 인류의 씨앗도 다름 아닌 그가 뿌렸다.

그가 후계자로 공식화된 것은 1980년 6차 당대회였는데, 이전과 이후는 엄청 판이하다. 평양은 유일체제로 빠르게 얼어붙었고, 10여 년 뒤 300만 명 굶어죽는 이를 만들어낸 비극도 그 배경이다. 그럼에도 김정일은 당중앙으로 호칭되며 아버지와 권력 분점을 실험했고, 그 과정에서 개혁개방이란 스며들 여지조차 없었다. 중국에서 개혁파 덩샤오핑의 등장, 통일 이후 베트남의 도이모이(개혁)정책 같은 건 꿈도 못 꿨다. 늙은 아버지는 마냥 흐뭇했고, 무소불위의 권력자로 등장한 아들이 믿음직해서 헬렐레했다.

그 고비에서 ‘신정(神政)국가’ 북한 체제를 완성한 것도 김정일이다. 초기 기독교에 비유컨대 그는 신앙체계를 만들었던 사도 바울에 해당한다. 그 결과 김일성은 살아생전에 살아있는 신의 반열에 올라섰다. 역설은, 이후 그가 빠른 속도로 망가졌다는 점이다. <나는 자유주의자이다>를 썼던 김덕홍의 표현대로 김일성은 "날마다 자화자찬하며 제 기분에 들떠 사는 어리석은 상왕(上王)"으로 추락했다. 공산주의 역사에서 제일 풀기 어려웠던 후계문제를 해결했다며 동네방네에 바보처럼 설레발을 쳤다.

"세상에 조직비서 동지(김정일) 같은 충신은 없습니다. 나를 받들어 모셔온 것처럼 그를 모시고 대를 이어 충성해야 합니다." 교활한 김정일은 상왕 아버지를 속여먹기 위해 모든 걸 자기가 먼저 보고 판단하는 시스템을 구축했고, 그게 지금의 북한이다. 그런 북한이 끝내 망가진 것도 결국 김정일 탓인데 그 점에서 김일성보다 더 문제적 인간이 김정일이다. 역설이지만 1980년대를 기점으로 남과 북의 힘이 완전 역전이 된 것도 그런 배경인데, 그런 김정일에게 우리가 고맙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저주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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