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욱
김승욱

인플레이션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미국의 3월 물가상승률은 8.5%로 집계되어 매월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유럽 국가도 7.5%였다. 터키는 61%가 넘었다. 우리는 세계 유일의 전세 제도로 주거비용이 물가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물가상승률이 저평가되어 있음에도, 지난 3월 물가상승률은 4.1%로 최고였다. 에너지의 92.8%, 곡물의 75%를 해외에 의존하는 우리에게 원자재 가격상승은 치명적이다. 철근콘크리트업체의 가격인상 요구로 호남과 제주지역에만 200여 현장에서 공사가 중단되었다.

여기에 경기침체까지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전 세계에 덮친다고 IMF는 우려하며,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1월에 비해 0.8% 포인트 낮춘 3.6%로 전망했다. 한국의 전망치도 0.5% 낮추어서 2.5%로 예측했다.

스태그플레이션의 원인으로 미·중 갈등으로 인한 공급망 재편, 코로나19로 인한 공급 위축과 통화팽창, 우크라이나전쟁 장기화로 인한 에너지 및 농산물 가격 급등을 꼽는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단기적인 원인이다. 더 중요한 장기적인 요인도 있다.

1930년 대공황 이후 디플레이션 극복이 과제였다. 케인즈의 유효수요이론을 적용해 각국은 수요확장 정책을 통해 불황을 극복했다. 그러나 과도한 통화팽창으로 인플레이션을 경험했고, 한국도 이 시기에 20%를 넘는 인플레이션을 경험했다. 일부 중남미 국가들은 초인플레이션도 경험했다. 여기에다 1970년대에 있었던 두 차례에 걸친 석유파동(oil shock)으로 전 세계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그런데 1990년 이후 2020년까지 30년 동안 세계 물가는 안정적이었다. 오히려 일본처럼 장기 저성장 구조불황에 빠지는 제페니피케이션(Japanification)을 우려할 정도였다. 어떻게 30년간 세계는 물가안정에 성공했을까? 영국 런던정경대학의 굿하트 교수와 모건스탠리의 프라단은 <인구 대역전>에서 인구 대국 중국과 옛공산권이 세계 무역체제에 편입되면서 세계 노동 공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 덕분에 인건비가 하락해 물가를 떨어뜨렸고, 금리도 낮아졌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중국 인구가 지난해를 정점으로 60년 만에 감소해 임금이 오르고 있다. 고령화로 이미 인구가 감소하던 선진지역에서는 고령자 간병 비용이 크게 증가해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고 있다. 미국 노동자들이 중국산 제품에 일자리를 잃고 반발해 미·중 갈등이 발생했고, 이는 인건비 상승으로 이어졌다. 이것이 디플레이션 시대에서 인플레이션 시대로 전환하게 만든 가장 큰 요인이다.

여기에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 단기적인 충격이 더해지면서 세계는 경기침체까지 겹쳐 스태그플레이션의 위기 앞에 서 있다. 단기적 충격이 사라져 경기침체가 해소되어도 인플레이션은 지속될 것이다.

원화는 아직 세계에서 안정적인 통화로 인정받지 못하므로 자본 이탈의 가능성이 높고, 그 결과 원화가치는 더 떨어질 것이다. 원화가치 하락은 수입물가를 올리게 되므로 원가상승 압력이 심해진다. 과거 노동집약적인 제품을 수출하던 시대와 달리, 원화가치 하락은 무역수지에 긍정적으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한국은 인플레이션 시대를 맞아 비상한 각오로 대책을 세워야 한다. 1980년대 초에 있었던 철저한 구조조정과 생산성 향상을 통한 비용인상 요인 제거 외에는 해결책이 없다. 이는 인기가 없는 정책이다. 소상공인 손실보상을 위한 2차 추경예산을 제출하겠다는 윤석열 정부가 이러한 인기 없는 정책을 채택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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