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25일은 '법의 날'

1964년 5월1일로 정했으나...2003년 4월25일로 바꿔
이해충돌·갈등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어야 '법치국가'

4월 25일, 오늘은 제 59회 ‘법의 날’이다. 1958년 제정된 미국의 ‘Law Day(법의 날) 5월 1일’에서 유래한다. 미·소 냉전이 격화되던 시절, 사회주의권의 ‘노동절(May Day) 5월 1일’에 대항하는 의미를 가진다.

1963년 7월 ‘법을 통한 세계평화대회(World Peace Through Law Conference)’에서 각국 ‘법의 날’ 제정이 권고되자, 1964년 대한민국 역시 5월 1일로 정했다. "권력의 횡포·폭력의 지배를 배제하고 기본인권을 옹호하며 공공복지를 증진시키는, 이른바 ‘법의 지배’가 확립된 사회의 건설을 위해 일반 국민에게 법의 존엄성을 계몽"하는 게 제정의 취지였다.

인권 및 국민의 기본권이 보호받고, 이해 충돌과 갈등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법 체계의 효과적 작동이 가능할수록 ‘법치국가’다. 여기서의 법은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가 아닌 ‘법의 지배(rule of law)’다. ‘법에 의한 지배’는 ‘다수의 횡포’(떼의 논리)일 수 있다. ‘자연법’에 의거한 게 ‘법의 지배’다.

인권을 낳은 ‘자연법’은 기독교 사상에서 왔으며, 프로테스탄티즘 즉 신교도들이 목숨바쳐 ‘신앙의 자유’를 지켜내는 과정에서 성립한 게 ‘근대법’이다. 인류 최초의 근대적 자유민주공화국 미국이 그렇게 태어났고, 대한민국은 그 영향 하에 탄생·유지됐다. 한미동맹이 군사동맹이기 이전에 ‘가치동맹’인 이유다.

대한민국에선 1987년 이래 절차적 민주주의가 자리잡으며 노동계의 성대한 노동절 행사에 가려 ‘법의 날’이 존재감을 잃자, 2003년부터 4월 25일로 바꾼다. 우리 역사상 근대적 사법체계의 출발로 치는 19세기 말 ‘재판소 구성법 시행일’을 되살린 것이다. 이 법에 따라, 수사·기소·심문·판결 일체를 ‘지방관’(속칭 사또)이 일임하던 기존 시스템 대신, 처음으로 전문적 법제관료에 의한 기소·판결의 분리가 이뤄진다. 일본에서 근대적 사법제도를 배우고 돌아온 지식인들이 1894년 갑오개혁에 등용되며 ‘신식 재판’제도가 한반도에서 시행된 것이다.

전통적 법전(조선시대 ‘경국대전’, 명나라 ‘대명률’)에 기초한 기존 제도와 달리, 신식 재판은 일본을 통해 수입한 대륙법체계 특히 독일식 재판제도를 차용했다. 사또가 죄인을 꿇어앉혀놓고 "네 죄를 네가 알렸다" 호령하며 취조하거나 고문을 명하는 식의 장면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검사에 의한 기소, 증거에 입각한 판사의 판결 등 서구 계몽주의에 기반한 형사 사법체계가 도입된 것이다.

물론 민사소송에선 여전히 수백년 이래 농경문화 중심의 강한 관습법적 체계 하에 있었다. 중앙 정부가 임명한 전문적 법제 관료에 의한 사법행정은 수도(한성)에 국한된 게 현실이었다. 근대적 사법체계의 전국적 시행은 한일합병 이후다.

‘법 위의 법’이 헌법이다. 7월 17일 제헌절(헌법 제정일)은 1948년 대한민국의 헌법 제정·공포를 기념하는, 5대 국경일 중 하나다. 조선왕조 건국일(1392년 음력 7월 17일)에 맞췄다고 한다. 대한민국을 조선 내지 대한제국의 후신으로 본다는 뜻이라면, 과연 온당한 판단인지 공론에 부쳐볼 만하다. 1948년 7월 17일 제헌절을 ‘법의 날’로 보다 중요하게 기념하는 게 대한민국 정체성의 천명에 유의미하다고 본다.

1897년 10월 12일 대한제국 수립 후 고종은 1899년 8월 17일 자로 ‘대한국 국제(國制)’를 제정·반포했다. 황제의 명으로 제정됐기에, 한반도 최초의 근대적 헌법이었지만 민주헌법은 아니었다. 3.1운동을 계기로 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 중국 상하이에서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첫 헌법인 ‘대한민국 임시헌장’이 공포된다.

10개조의 ‘대한민국 임시헌장’은 국호를 ‘대한민국’이라 정하고,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고 규정했다. 제헌헌법 이래 9차례 개정되면서 현재까지 변하지 않은 헌법 제1조 ‘국가의 정체성’이다. ‘법의 날’은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지,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사는지 돌아보고 가치를 되새기는 날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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