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워싱턴 포스트 1905. 1. 17 기사

자유일보 특종 원사료 발굴...제목 ‘일본은 러시아 만큼 나빠’
"미국이 대한의 독립 도와야 한다"..이승만 인터뷰 기사 실어
미국의 젊은 이승만 연구자...David Fields 도움으로 확보

류석춘
류석춘

지난번 이야기는 박사학위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이승만이 YMCA 일을 하다 일제가 만든 ‘105인 사건때문에 19123월 다시 미국으로 도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오늘 이야기는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 이승만이 미국 워싱턴에 민영환의 밀서를 가지고 비밀외교 및 유학을 위해 도착한 직후의 시점으로 되돌아 간다.

19041231일 저녁 워싱턴에 도착한 이승만은 바로 당일부터 시작해 190584일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을 면담할 때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1905117일 보도된 워싱턴 포스트 인터뷰 기사다. 그러나 이 사료의 실물과 구체적 내용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었다.

이 사료의 존재를 최초로 그리고 유일하게 언급한 이승만 연구자는 이주영 건국대 명예교수다. 인터넷 신문에 이주영 교수가 연재한 이승만 시대” 8번째 글 루즈벨트 만나고...민영환 자결에 사흘 울다에는 다음과 같은 언급이 등장한다. “[헤이 국무장관과의] 면담 날짜를 기다리면서 이승만은 1905115워싱턴 포스트지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일본이 조선 왕국을 침략하고 있음을 폭로했다.” (뉴데일리, 2012516).

대충은 맞지만 정확한 정보가 아니다. 우선, 워싱턴 포스트 지에 인터뷰 기사가 실린 정확한 날짜는 1905117일이다. 다음, 기사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기사 실물이나 보다 구체적인 기사 내용이 제시되지 않아 궁금증을 더할 뿐인 정보다.

1905년 1월 17일 워싱턴 포스트 (Washington Post) 12면 기사. ‘일본은 러시아만큼 나빠’ 라는 제목을 단 이 기사는 이승만을 인터뷰해서 쓴 기사로, 일본의 대한 침략을 고발하고 미국이 대한의 독립을 도와야 한다는 이승만의 주장을 전하고 있다.
1905년 1월 17일 워싱턴 포스트 (Washington Post) 12면 기사. ‘일본은 러시아만큼 나빠’ 라는 제목을 단 이 기사는 이승만을 인터뷰해서 쓴 기사로, 일본의 대한 침략을 고발하고 미국이 대한의 독립을 도와야 한다는 이승만의 주장을 전하고 있다.

필자는 이주영 교수의 글을 읽으며 기사의 실물과 내용을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판단했다. 워싱턴 포스트지 홈페이지에 들어가 과거 기사를 검색했으나, 아직 전자문서로 전환되지 않은 기간의 기사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과거 신문을 보관하는 미국 도서관을 직접 방문하는 방법밖에 없는가 하는 생각 끝에, 미국에 있는 젊은 동료 학자가 생각났다.

데이빗 필즈 (David Fields) 는 필자가 연세대에서 이승만연구원장으로 재직할 때 연구원을 직접 방문해 이승만에 관한 원사료 열람을 허락해 달라 요청한 미국 위스콘신 대학 (University of Wisconsin, Madison) 역사학과 박사과정 학생이었다. 이를 계기로 데이빗은 필자가 중심이 되어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연세대이승만연구원이 공동으로 2015년 출판한 이승만일기(국역, 영문, 영인본) 의 공편자 역할도 했다.

자료조사를 마친 데이빗은 미국으로 돌아가 이승만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을 마치고, 그 내용을 다듬어 전문적인 연구서적 Foreign Friends: Syngman Rhee, American Exceptionalism, and the Division of Korea (University Press of Kentucky, 2019) 을 출판했다. 지금 그는 위스콘신 대학 부설 동아시아연구소 (Center for East Asian Studies) 부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두세 차례 이메일을 주고받은 끝에 데이빗은 기사의 실물 이미지를 필자에게 보냈다. ‘한미동맹으로 못할 일이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 쾌거다. 덕분에 자유일보 독자들도 최초 공개되는 1905117일 워싱턴 포스트 이승만 인터뷰 기사 실물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됐다. 데이빗에 감사한다.

David Fields 박사의 책 Foreign Frends: Syngman Rhee, American Exceptionalism and the Division of Korea 표지 (University Press of Kentucky, 2019).
David Fields 박사의 책 Foreign Frends: Syngman Rhee, American Exceptionalism and the Division of Korea 표지 (University Press of Kentucky, 2019).

기사의 내용을 살펴보자. 사진이 보여주고 있듯이 분량이 짧지 않은 기사다. 사진에서는 지면 활용의 편의성 때문에 편집을 통해 3단 기사처럼 보이게 했지만, 실제로는 신문 한 면 세로 방향 전체에 걸쳐 길게 쓴 1단 기사다.

기사는 큰 제목을 일본은 러시아만큼 나빠” (Japs Bad As Russians) 라고 달고 있다. 그 아래 붙은 작은 제목은 현지 신문 편집자 (이승만) 는 그들이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려 한다고 언급” (Native Editor Says They Mean to Dominate Korea) 이다. 다시 그 아래에는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보장할 의도 없음” (Never Grant Independence) 이란 소제목을 또 달고 있다.

이승만의 영어 철자를 ‘Seung Mahn Yee’ 라 쓰며 시작하는 기사의 리드는 다음과 같다. “진보적 가르침 때문에 고통받고 현재는 워싱턴에 공부하러 온 이승만은 조국의 미래를 우울하게 그리며 미국이 한국의 자유를 지키는 일을 도와야 한다고 말해” (Seung Mahn Yee, Now in Washington to Study, Draws Gloomy Picture of His Country’s Future Thinks America Should Help Save Its Liberty Suffered for Progressive Teachings).

기사의 본문은 일본은 러시아가 한국의 독립을 뺏으려 했던 방법 그대로 반복하고 있으며, 현재 한국과 조약을 맺은 국가의 수도에서 한국 공사관들을 모두 철수시키고 있다. 왜소한 일본인들은 세계를 상대로 은둔의 왕국을 마치 보호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황제를 움직여 백성들을 이간질하거나 혹은 거꾸로 백성들을 움직여 왕을 이간질하고 있다는 폭로로 시작한다.

이후 기사는 이승만이 한국에서 신문의 편집장을 했으며 감옥에서 6년 동안 고통받은 사실과 독립협회 활동 등으로 그러한 고초를 겪게 되었음을 설명한다. 이어서 알렌 미국 공사의 도움으로 감옥을 나오게 되었으며, 감옥에서 비밀리에 쓴 국가 개혁에 관한 원고가 익명으로 신문에 실리면서 러시아의 침략을 방어하는데 자신이 기여했음도 설명했다.

또한, 기사는 러일전쟁 이후 지금은 일본이 러시아와 같은 모습을 보여 문제라고 설명한다. 현재는 정부 내에 개혁적 목소리를 내는 인물들이 모두 감옥에 갔고, 일본은 러시아보다 더 교묘하게 한국을 지배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고 고발했다. 기사의 끝자락에서 이승만은 미국이 한국의 개혁세력을 도와서 한국의 독립을 지켜주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미국 위스콘신 대학 (University of Wisconsin, Madison) 동아시아연구소 (Center for East Asian Studies) 부소장 (Associate Director) David Fields 박사.
미국 위스콘신 대학 (University of Wisconsin, Madison) 동아시아연구소 (Center for East Asian Studies) 부소장 (Associate Director) David Fields 박사.

이 연재물 19번째 즉 바로 지난 주 글에서 필자는 서울 YMCA 일자리를 맡는 과정에서 이승만이 가장 신경 쓴 문제는 일본 식민지 권력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고 설명했다. 워싱턴 포스트 이승만 인터뷰 기사는 필자의 설명이 틀리지 않았음을 뒷받침한다. 이승만이 이 기사를 통해 일본의 만행을 세계에 고발했기 때문이다.

일본 식민지 권력은 당연히 이런 인터뷰를 해서 일본을 비난하는 기사를 만든 이승만을 요()주의 인물에 올렸을 터이고, 그러한 우려는 결국 ‘105인 사건으로 현실에서 확인이 되었다. 이승만은 ‘105인 사건의 실체를 고발하는 책을 하와이에서 한국교회핍박이란 제목을 붙여 1913년 출판했다. 이 책에 관한 설명은 나중에 다시 한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