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로 도망간 독재자 벤 알리에게 '종신형' 선고
사우디로 도망간 독재자 벤 알리에게 '종신형' 선고
  • 최영재 기자
  • 승인 2018.05.2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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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전체주의 독재 국가 북한은 지금도 자국민을 굶기고 고문하고 학살하는 등 가장 잔혹한 인권탄압을 하고 있다. 그리고 핵무기를 완성하며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북한을 대한민국 문재인 정부가 거들고 있다는 점이다. 문 정부가 말하는 ‘한반도의 봄’은 북한 주민의 삶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봄’이다. 문 정부가 선전하는 ‘봄’은 김정은 정권에 면죄부를 주고 내부 주민을 더욱 혹독하게 탄압하게 만드는 영양제가 되고 있다. 북한의 인권탄압과 핵개발은 ‘일부 수술’ 이나 ‘개선’으로는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김정은 정권을 타도하고 교체해야 해결되는 문제다.

북한 정권을 교체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북한 내부에 자유세계의 정보를 유입하고 북한 주민들이 스스로 봉기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인은 수많은 세계사 중에서도 2010년 전후로 일어난 ‘아랍의 봄’을 정밀 연구해야 한다. 이런 취지에서 <The 자유일보>는 북한 주민들이 자유와 평등, 인간다운 삶을 되찾는 진정한 봄, 이른바 ‘진달래 혁명’을 위해 ‘아랍의 봄’의 도화선이 되었던 튀니지의 ‘자스민 혁명’을 상중하 3회로 나누어 연재한다. 이번이 세 번째다. <편집자 주>

자스민 시위대가 벤 알리 대통령의 사진을 불태우고 있다.
자스민 시위대가 벤 알리 대통령의 사진을 불태우고 있다.

◇2011년 1월 14일 정권붕괴 조짐

2011년 1월 14일, 시위대는 지금까지 접근하지 않았던 내무성 앞까지 이르렀다. 이날 정치범이 석방되어 데모대와 지지자들이 함께 기쁨을 나누었다. 벤 알리 대통령은 비상사태를 선언 하고 야간외출금지령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또 간누시 내각의 총사퇴와 2014년 실시예정이었던 총선거를 대폭 앞당겨, 2011년 상반기 이내에 실시하겠다고 표명했다.

간누시 총리
간누시 총리

그러나 여기까지 오게 되자 정부는 안에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메주리 하다드 유네스코 대사가 치안부대가 시위대에 발포한 데 항의하면서 대통령에게 사표를 제출했다. 벤 알리 대통령은 데모대에 실탄을 사용하라고 라시드 안말 육군참모총장에게 종용했다. 하지만 라시드 총장은 역으로 “당신은 끝났다.”면서 불신임을 선언했다. 벤 알리 대통령은 정권유지수단을 모두 잃게 되었다.

벤 알리 대통령을 풍자한 카툰. 머리 띠에 'SINCE 1987'이라고 씌여 있다.
벤 알리 대통령을 욕심 많은 두꺼비로 풍자한 카툰.
머리 띠에 'SINCE 1987'이라고 씌여 있다.

1월 14일 오후 5시 49분, 간누시 총리가 TV방송으로 “벤 알리 대통령은 이 나라를 떠났다”는 성명을 읽어 나갔다.

◇벤 알리 대통령, 프랑스 거절로 사우디 망명

벤 알리 대통령은 옛 종주국인 프랑스로 망명을 희망하며 파리로 향했다. 그러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벤알리 대통령의 입국을 거부했다. 벤 알리는 거기서 사우디아라비아로 가서 망명했다. 탈출할 때 벤 알리 대통령의 처가 중앙은행으로부터 1.5톤의 금괴를 가지고 나갔다고 보도되었다.

일부 친족들은 올라 탄 비행기 기장이 이륙을 거부하여 구속되었다. 잠정정권은 신속한 단계에서 벤 알리 전 정권 관계자의 신병구속에 나서 1월 16일경에는 이미 카심 전 내무장관 등 정권간부 다수를 구속했다는 정보도 흘러나왔다.

중앙은행의 금괴 1.5톤을 훔쳐 달아 난 벤 알리 대통령의 처.
중앙은행의 금괴 1.5톤을 훔쳐 달아 난 알리 대통령의 처.

벤 알리 전 대통령이 나간 뒤 친족들의 호화저택에서는 폭도들의 약탈이 시작되었다. 1월 16일에는 대통령궁에서 총격전도 발생했다. 1월 26일에는 잠정정권이 벤 알리 전 대통령 등 일족의 체포영장을 청구하고 국제형사경찰기구를 통해서 국제지명수배를 했다.

벤 알리 전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한 후 전 정권시대의 공금횡령, 토지부정취득, 폭력선동, 마약밀매 혐의, 반정부운동 진압을 군에 명령하여 참가자 다수를 사망케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되어 본인이 없는 상태로 군사법정이 열렸다.

금괴를 가지고 떠나는 벤 알리 풍자 그림.

재판 결과 폭력선동에는 징역 20년, 공금횡령에는 징역 35년이 언도되는 등, 합계 65년의 징역형이 내려졌다. 또 살해혐의에 관해서는 사형이 구형되어 2012년 6월 13일에 종신형 판결이 언도됐다. 카심 내무부장관에게도 징역 15년의 형이 내려지고 주요 각료 다수는 공소기각 되었다.

◇인구 20%가 사용한 '페이스북 혁명'

한편 튀니지 벤 알리 정권의 붕괴는 식량가격 급등과 높은 실업률이 아니라, 위키리크스(Wikileaks)와 페이스북(Facebook) 등 각종 소셜 미디어와 리얼타임웹(Real Time Web)의 영향이 컸다는 점에서 ‘페이스북 혁명’, 또는 ‘SNS(Social Network Service) 혁명’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2011년 타임지 표지 '올해의 인물' 주인공엔 중동의 봄을 이끈 시위대가 올랐다.
2011년 타임지 표지 '올해의 인물' 주인공엔
중동의 봄을 이끈 시위대가 올랐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전체 인구 1040만 명인 튀니지의 인구 구성은 매우 독특하다. 이슬람의 다산주의 전통에 따른 젊은 인구 증가로 인구의 60%가 25세 이하의 젊은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인터넷 접속률은 34%로서 350만 명 이상이 인터넷 사용자이며, 페이스북 사용자는 전체인구의 20%로 약 200만 명이었다.

자스민 혁명은 튀니지에서 멈추지 않았다. 혁명이 성공하자 반정부 시위 물결은 2011년 한 해를 강타했다. 이른바 ‘아랍의 봄’이다. 아랍의 봄 물결은 이집트 독재자인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을 하야시켰고, 42년간 리비아를 철권통치한 카다피 역시 자신의 고향 하수구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아야 했다. <튀니지 '자스민 혁명' 끝> 

sopulg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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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국 2018-09-01 16:19:53
우리나라도 곧 이런 사태가 오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