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번역 출간된 <프랑스와 중국의 위험한 관계>(France Chine, Les liasons dangereuses)는 중국의 세계패권 전략 ‘프랑스 판’이다. 국방·정치·경제·기술·사회 각 분야에 중국이 어떻게 침투해 국가주권을 잠식했는지, 그 실상을 ‘팩트’을 통해 고발하고 있다.

대표적 경제 잡지 ‘살랑쥬’(Challenges)’의 기자 앙투안 이장바르(Aantoine Izambard)가 수개월의 취재·조사 끝에 내놓은 책이다. 같은 유형의 다른 사례들을 참고하며 읽을 만하다. 이미 나온 <중국의 조용한 침공> <팬더의 발톱, 캐나다에 침투한 중국공산당> <중국은 괴물이다-중국공산당의 세계지배 전략> 은 각각 호주·캐나다·미국의 실제 상황들이다. 중국에겐 ‘돈·여자’가 동원되는 모든 공작조차 ‘애국’으로 정당화된다.

‘우리나라에선 별 일 없을 것’이란 기대는 매우 비현실적이다. 미·중 대결에서 호주나 유럽 이상의 지정학적 핵심 고리가 한반도, 특히 대한민국이다. 저자에 따르면 프랑스가 중국문제를 과소평가하고 있진 않다. 다만 "정치인들이 순진하게 구는 경향이 있다"는 게 문제다. "거대한 중국시장" "중국의 성장 가능성" "중국의 경제보복"을 말하며 ‘중국경계론’을 무력화시켜 온 오피니언 리더들이 많다. 우리나라에서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安美經中)을 외치던 사람들의 말·논리와 흡사하다.

프랑스의 여러 거물 정치인들이 중국공산당의 영향력과 공작에 무너졌다. 중국어로 공산당 일당독재를 찬양하는 책까지 출간한 장-피에르 라파랭 전 총리, ‘알리바바’ 마윈 회장의 열혈 팬을 자처하는 로랑 파비위스 전 총리, 홍콩에 살며 중국과 비밀스런 사업을 진행하는 도미니크 빌팽 전 총리 등, 현직 땐 드러내놓고 못하던 ‘중국 사랑’을 열심히 실천하는 친중파 정치인들이 프랑스에 넘친다. 이들에겐 10~20대 때 ‘68혁명’을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68’세대, 우리나라로 치면 ‘586’ 운동권 세대에 해당한다. 이들은 맑스 레닌뿐만 아니라 ‘마오쩌둥’ ‘호치민’ ‘체게바라’에 열광했고 문화혁명를 미화했다. 오늘날 ‘서유럽 몰락’이라 불리는 모든 경향들의 시발점, 기존의 전통·권위 일체를 거부·파괴하려는 ‘68 혁명’의 진원지가 프랑스였다. 1968년 3월 프랑스의 베트남전 참전을 항의하는 청년들 8명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파리 지사를 습격한게 도화선이다.

대학생의 전국적 과격 시위와 1000만 노동자 파업으로 확산, 미증유의 반(反)체제운동으로 번졌다. ‘포스트모던’ ‘해체주의’ 를 띤 문학·철학·예술이 유행하며, 종교개혁 이래 구축된 현대문명의 영혼·육체를 허무는 시도가 본격화된다. 반전·반핵을 내건 운동들, 미국의 히피, 서독의 좌파정당들, 일본의 전공투 세대 등도 그 흐름 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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