⑩ 국가정보기관 어디로 가야하나

원훈석에 20년 복역 신영복 글자체...국가정보기관 우롱한 처사
고위직 특정지역이 장악...국정원 출신 수장되는 시대 열었으면

1998년 5월 당시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 전신)를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오른쪽)과 이종찬 당시 안기부장. 돌에 새겨진 '정보는 국력이다'는 김 대통령이 직접 쓴 것이다. /연합
1998년 5월 당시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 전신)를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오른쪽)과 이종찬 당시 안기부장. 돌에 새겨진 '정보는 국력이다'는 김 대통령이 직접 쓴 것이다. /연합

차기정부의 역사적 책무는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변화 속에 안보를 굳건히 하면서 대한민국 구석구석에 퍼져있는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것이다. ‘정체성이 바로 선 반듯한 대한민국, 안보 걱정이 없는 대한민국, 다 함께 잘 사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국가 전체를 정상화하는 대장정을 윤석열 정부는 시작해야 한다.

여기에 국가정보기관도 예외일 수 없다. 힘들고 험난한 길이지만 급변하는 정보 및 안보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조직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털어내는 위대한 리셋을 할 때 국민의 신뢰와 사랑받는 지속가능한 조직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국민들에게 안보 걱정 없는 삶을 주는 믿음직한 국가정보기관을 건설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한테 주어진 엄중한 역사적 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현실진단과 그에 기초한 세부 추진전략을 마련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럼 국가정보기관의 현 상황과 안고 있는 문제점이 무엇인지 큰 틀에서 진단해 보자.

첫째, 국가정보기관이 정체성이 훼손되고 방향성을 잃었으며, 놀고 먹는 조직이 되어 있다고 한다. 일례로 신영복 글씨다. 신영복은 자유대한민국 체제를 전복하기 위한 지하당을 구축하려다가 적발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무기징역을 언도받고 20년간 복역한 간첩이다. 이 사람을 대통령이 존경한다고 하니, 친북성향의 원장이 임명권자한테 아부하기 위해 국정원 광장에 있는 원훈석 글씨를 신영복 글자체로 바꿔 세웠다. 간첩 잡는 국가정보기관을 우롱한 처사이며, 조직과 조직원에 대한 모독이다. 국가정보기관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 문 정부는 국정원 서버를 열어 과거 정보활동에 대해 수장과 간부들을 단죄하고, 내부고발자 관련 조항을 국가정보원법에 규정해 버렸다. 이로 인해 원장 이하 간부들은 책임이 무서워 업무지시도 하지 않고 직원들도 복지부동이다. 정보기관의 생명은 활동을 통해 고급첩보를 수집하는 것인데 직원들이 사무실에만 앉아있다고 한다. 또한 대공수사를 2024년 경찰로 이관하도록 법을 개정함에 따라, 대공수사 조직도 열중쉬어하고 있다. 원장은 흑역사 청산이라는 미명 하에 좌파 시민단체의 정보공개 요청에 부응해 과거 정보활동 내용을 비밀해제해 외부로 내보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북한이 원하는 국가정보기관 무력화 내지 폐기와 닮아가고 있어, 무슨 다른 저의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둘째, 현재 원장에서부터 기조실장에 이르기까지 특정지역 인사들이 지휘부를 장악하면서 인사의 공정과 정의가 땅에 떨어져 있다. 어떤 원장은 객관적인 기준도 없이 자신과의 근무연이나 아는 사람 위주로 승진 인사를 했다. 능력이 아니라 출신 지역이나 인간관계가 우선되다 보니, 업무에는 열성이 떨어지고 줄대기에 바쁘다. 인사가 공정하게 이루지지 않아 직원들 사기가 저하되고 조직에 대한 충성심과 주인의식을 상실하게 되었다. 인사는 제로섬으로 ‘왜 나는 승진이 안되고 상대는 승진했는지’에 대한 물음에 답할 수 있어야 하는데, 원칙과 기준이 없는 인사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설명이 안되면서 인사에 대한 불만이 비등하고 있다..

셋째, 국가정보기관은 정치인, 정보문외한 등 부적격자들이 줄곧 수장을 맡으면서 주인 없는 조직이 되었다. 35명의 원장 중 31명이 외부 출신으로 원장 리스크를 초래했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원 출신으로 정치권으로 갔다가 정보수장으로 돌아온 이종찬 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나그네가 주인 행세하고 주인이 종이 되는 이 참담한 현실을 언제 끊으려고 하느냐"며 국정원 출신이 수장이 되는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일갈했다. 1987 민주화 이후 정부에서도 정보수장은 말할 것도 없고 조직의 살림살이를 하는 기조실장까지 대통령 측근인사가 짝을 이뤄 임명되었다.

김영삼 정부에서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김덕-김기섭(김영삼 정부), 이종찬-이강래(김대중 정부), 고영구-서동만(노무현 정부), 김성호-김주성(이명박 정부), 남재준-이헌수(박근혜 정부), 서훈-신현수(문재인 정부) 등이다. 그 과정에서 3명의 내부 출신 정보수장이 탄생했으나, 조직 발전보다 임명권자의 취향에 맞춰 남북교류와 협력 뒤치다꺼리 하는데 조직의 역량을 다 소진하고 말았다. 조직의 백년대계는 뒷전이었다.

넷째, 국가정보기관이 만들어진 지 60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기는커녕 경원시 되고 있다. 생래적으로 군사정권의 정치정보 지원 요구에 부응할 수밖에 없어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가 어려웠다. 지금도 정치인이 수장이 되면서 스스로 정치의 한 중심에 서는 우를 범하고 있어 정치적 중립이 흔들리고 있다. 댓글 사건도 특정 정치인을 당선시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정보기관 수장이 자신을 임명해준 대통령에 충성하기 위해 비판 세력의 공격을 막다가 일어난 사고다. 북한과 정부 비판 시민단체들이 대통령의 치적이나 인신을 악의적으로 비판하는 것에 대응해 댓글을 달다가 선을 넘어 국내정치에 개입한 꼴이 된 것이다.

다섯째, 2013년을 기점으로 탈냉전에서 신냉전으로 국제질서가 변해 수명을 다한 대북포용정책을 국가정보기관이 주도하게 됐다. 그러면서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굴종적 대북정책을 추진해 조직 본연의 대북정보 활동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 북한과 비밀접촉선을 담당하면서 성장한 인사나 햇볕정책의 전도사가 원장이 되면서 남북교류와 협력에 올인하게 됨에 따라, 북한 비핵화와 개혁·개방 그리고 북한인권 개선 등의 업무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북한과 정략적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김정은이 원하는 대북제재 해제나 종전선언에 조직의 전역량을 동원하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북한은 남북정상회담 같은 이벤트에 참여하면서 항상 대가를 요구해 왔다. 문정부가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하면서 비선라인을 통해 은밀한 내부거래는 없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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