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과 死


살았대나 죽었대나 같은 말을 가지고
사람은 살아서 늙어서야 죽나니,
그러하면 그 역시 그럴듯도 한 일을,
하필코 내 몸이라 그 무엇이 어째서
오늘도 산(山)마루에 올라서서 우느냐.

김소월(1902~1934)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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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월의 본명은 김정식으로 소월은 그의 아호다. 소월 시의 특징은 전통적 시조가락을 바탕으로 민족의 한(恨)을 여성적 가락에 실어 노래한다. 민요 시인으로 출발했지만 ‘진달래꽃’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등의 작품에서 보듯 단순한 민요의 차원을 넘어선다. 소월의 작품은 대부분 노래로 만들어져 오늘날까지 널리 불린다.

‘생과 사’는 소월의 작품 가운데 비교적 덜 알려진 작품이다. 남다를 것 하나 없는 보통 이야기지만 읽을수록 삶의 본질적 의문을 느끼게 만든다. 그렇듯 우리는 어디서 왔는지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 죽은 사람은 어디로 갔다는 말을 남기지도, 남길 수도 없다. 시인은 ‘생과 사’에 관한 관념적인 생각을 멀리하고 단순하게 접근한다. 이른바 단순함의 미학이다. 특별히 꾸미지 않아도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 말은 쉽지만 그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피카소는 생전에 이런 말을 했다. "거장들처럼 나는 얼마든지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다. 내 생애에 가장 어려웠던 것은 어린아이처럼 생각하고 그리는 것이었다."

사고의 단순함은 미니멀리즘과 통한다. 미니멀리즘은 기본적으로 기교를 멀리하고 사물의 근본 즉 본질만을 표현한다. 그러면 현실과 작품과의 괴리가 최소화되고 진정한 리얼리티가 달성된다. 대상의 본질만 남기고 불필요한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것에 근거해 미술에서는 최소한의 색상만 사용하고, 언어에서는 기본적인 단어와 어휘로 생각을 표현한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 동시는 지금도 유효하고 잘 팔린다.

그렇다, 소월의 언어는 감성에 기초한 사고의 단순함이다. 우리는 이 단순함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 ‘생과 사’라는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철학적 주제마저도 이토록 단순하게 바꾸어 버린다. 살았대나 죽었대나 같은 말을 가지고 / 사람은 살아서 늙어서야 죽나니, / 그러하면 그 역시 그럴듯도 한 일을, / 하필코 내 몸이라 그 무엇이 어째서 / 오늘도 산(山)마루에 올라서서 우느냐. 그렇다, 사람은 단순한 것에 감동한다. 왜냐하면 그게 진실에 가깝기 때문이다. 한 걸음 나아가면 진리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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