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운정의 길 따라...] 한국의 쥐라기 공원 경남 고성

층층단애 1억 년 전 공룡 집단서식 흔적
제천마을에서 상족암·실바위까지 6Km
티라노사우루스 등 4000여 개 발자국

국내 최초 고성공룡박물관엔 골격 진품
전망대 서면 한려수도와 아스라이 통영섬
기암절벽·해식동굴...테크따라 곳곳 발자국

장의사에서 내려다 본 풍경.

고성 상족암은 1억년 전의 신비를 느끼게 해준다. 나무 데크를 따라 산책하며 바위에 찍힌 공룡 발자국을 바라보다 보면 지구의 비밀을 엿보는 것 같아 가슴이 두근댄다. 상족암 가까운 학동마을은 옛 담장이 아름다운 전통 마을. 골목을 따라 거닐다 보면 봄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다.

1억년 전의 신비를 거닐다, 상족암

우리나라에도 공룡이 살았다. 그것도 아주 많이 살았다.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 상족암에 가면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바닷가에 자리한 층층단애 절벽과 바위마다 공룡들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다. 1억년 전 노닐었던 공룡들의 흔적들이다.

고성이 ‘공룡나라’가 된 건 1982년 1월. 겨울방학을 이용해 학생들과 남해안 일대 지질조사에 나섰던 경북대 양승영 교수는 해안에 찍힌 발자국을 발견한다. 주민들조차 그저 빗물에 파인 정도로 여기던 것들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곧 공룡의 집단 서식을 증명하는 발자국 화석으로 밝혀진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던 일이다. 현재 상족암 공룡 발자국 화석지는 덕명리 제전마을에서 촛대바위와 상족암을 거쳐 실바위까지 6km 해안가를 따라 4000여 개의 공룡 발자국들이 흩어져 있다. 고성 상족암은 미국 콜로라도, 아르헨티나 서부 해안과 함께 세계 3대 공룡 발자국 화석 산지로 알려져 있다.

상족암 여행의 시작점은 고성공룡박물관이다. 국내 최초로 건립된 공룡박물관으로 이구아노돈의 몸체를 형상화했다. 상족암으로 가기 전, 박물관을 구경하며 사전지식을 쌓는 것이 좋다.

박물관 야외에는 높이 24m의 공룡탑과 초식공룡을 공격하는 육식공룡의 무리 같은 조형물들이 만들어져 있다.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전시실 내부에는 공룡의 실제 골격과 고성에서 발견된 발자국 화석, 고대 생물들의 화석 등이 전시돼 있다. 공룡골격 진품 4점, 공룡전신골격 복제품 10점, 일반화석 55점 등 볼거리가 풍부하다. 초식공룡 클라멜리사우르스를 필두로 육식 공룡의 대표주자인 티라노사우루스, 코뿔소처럼 생긴 트리케라톱스 등의 모형도 살펴볼 수 있다.

박물관을 나오면 전망대다. 익룡을 형상화했다. 이곳에 서면 아름다운 한려수도의 해안풍경이 한눈에 담긴다. 상족암 앞바다 너머로 사량도와 욕지도가 눈앞에 아스라이 펼쳐지고, 가까이엔 주상절리로 생겨난 병풍바위가 그림같이 떠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 시야를 사로잡는다. 남해군과 통영의 섬들도 멀리 바라다보인다.

공룡 모형이 전시된 공룡박물관 내부.
공룡 발자국 화석.

전망대를 지나 바닷가로 내려서면 넓은 암반과 채석강을 능가하는 층층단애로 이뤄진 기암절벽이다. 마그마가 분출된 화성암으로 영화 쥐라기 공원?의 한 장면 속으로 들어온 것만 같다. 커다란 해식동굴도 나오는데 동굴은 어둡고 신비로운 분위기 때문인지 극락도 살인사건 같은 으스스한 영화의 촬영지로도 이용됐다. 이곳 암반 곳곳에는 공룡들이 발자국이 일정 간격으로 줄지어 찍혀 있다. 발자국 모양과 크기가 일정한 것으로 미루어 같은 종류의 공룡가족이 집단 서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굴을 나와 바다를 따라 계속 걷는다. 나무 데크가 설치돼 있어 걷기 편하다. 데크를 따라 걷다 보면 촛대바위. 여기서부터 제전마을 사이까지 공룡 발자국이 가장 선명하고 숫자도 많다. 특히 촛대바위 앞은 공룡들의 무도회장이나 다름없다. 육중한 몸으로 얼마나 신나게 뛰어놀았는지 흙이 굳어서 된 퇴적암은 온통 진흙탕처럼 울퉁불퉁(공란구조)하다. 삼지창 모양의 티라노사우루스 발자국부터 뭉툭한 새 발자국 모양의 이구아노돈 발자국, 둥근 모양의 거대한 브라키오사우루스의 발자국까지 무수히 찍혀 있다. 그러나 비교적 뚜렷한 발자국이 찍혀 있는 해안 쪽은 보호를 위해 탐방로를 만들어놓아 가까이 접근할 수 없다. 하지만 워낙 발자국이 많아 눈만 크게 뜨면 곳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정겨운 돌담길, 학동마을

상족암 가까이에는 옛 마을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하일면 학림리 일대의 학동마을이다. 마을은 330여년 전 전주 최씨의 입향조가 가솔들을 이끌고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학이 마을에 내려와 알을 품고 있는 꿈을 꾸고는 날이 밝아 그곳을 찾아가 보니, 산수가 수려하고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므로 명당이라 믿고 들어와 뿌리를 내렸다고 전한다. 현재 10여 개 성씨가 함께 어울려 살고 있다.

학동마을의 명물은 옛 담장이다. 2~5cm 두께의 납작돌과 황토를 겹겹이 쌓은 돌담은 총연장 2km를 훌쩍 넘길 정도로 구불구불 이어진다. 마을 곳곳에 남아있는 기와지붕 절묘하게 어우러지는가 하면, 마을 주변 대나무숲과 더불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유려하게 휘어진 황톳빛 돌담길을 걷노라면 마치 시간을 거슬러 고향을 찾아가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고성 상족암에는 나무 데크가 깔려 있어 산책하듯 탐방을 즐길 수 있다.

꼭 들러볼 곳은 참봉댁으로 불리는 최영덕 씨 고가다. 정면 7칸, 측면 4칸의 전통 목조 건물로 현 소유주인 최영덕 씨의 5대조인 최태순 선생이 고종 6년(1869년)에 지은 한옥이다. 안채, 곳간채, 대문간채, 사랑채 등 5채의 건물이 주변의 대숲과 어우러져 있다. 고택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어 숙박도 가능하다.

푸른 남해바다를 굽어보다, 거류산 장의사

고성에 갔다면 장의사라는 사찰에 들러보시길 권한다. 거류산 자락에 자리 잡은 장의사는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지만 원효대사가 632년 창건했으며 효봉스님이 중건했다니 의외로 내력이 만만찮은 절집이다.

장의사를 찾는 이유는 장의사보다는 장의사가 품고 있는 풍광 때문이다. 일주문 앞에서 내려다보는 당동만의 전망이 기가 막히게 좋다. 푸른 남해와 고성의 다랑논이 어울려 빚어내는 풍경은 한폭의 풍경화 그 자체다.

일주문에서 바라보는 풍광도 좋지만 발품을 조금만 더 팔면 좋은 풍경을 얻을 수 있다. 장의사에서 ‘엄홍길 기념관’ 방면으로 향하는 등산로를 따라 30분만 가면 너럭바위가 있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감탄 그 자체다. 잉크를 풀어놓은 듯한 푸른 바다와 양식장 부표 사이를 미끄러져 가는 고깃배들, 그리고 점점이 뜬 섬들이 어우러져 풍요롭고 평화로운 풍경을 그려낸다.

장의사 반대편 거류산 자락에 엄홍길전시관이 있다. 세계의 최고봉들을 두 발로 디디고 올라선 산악인 엄홍길의 일생과 1985년부터 16년 동안 히말라야 8천m 16좌를 완등하기까지의 과정을 체계적으로 전시한 공간이다. 실제 그가 사용했던 텐트, 카메라, 등산화, 무전기, 양말, 재킷, 아이젠과 헬멧, 배낭, 피켈, 랜턴, 안전벨트, 장갑 등을 보고 있자면 산을 오를 때의 거친 숨소리가 느껴지는 것 같다.

[여행정보]
남해고속도로 사천IC로 빠진다. 국도 3호선을 타고 삼천포항 방면으로 달리다가 남일로 77번 국도 2호 광장에서 좌회전한다. 하이면 정곡삼거리에서 우회전해 조금 가다 보면 고성공룡박물관이 나온다. 문수암보현식당(055-672-3475)의 사찰된장찌개, 이황가(055-673-1405)의 한우곰탕, 개미집(055-835-0775)의 해물탕과 가리비찜이 유명하다. 고성최필간고택(055-673-6904), 박진사고가(055-674-1222), 프린스호텔(055-673-7477)은 한국관광품질인증업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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