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 보수주의 싱크탱크를 꿈꾸다, 김은구 트루스포럼 대표 인터뷰

“모든사람 인생에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 있다고 믿어...트루스포럼·대한민국도 그럴 것”
모태신앙이었지만 대학에서 혼란 경험...‘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알고 해방 돼
“2015년 동성애 총학생회장 보며 여러 생각...대한민국 부정하는 운동권 선배들 봐왔죠”
‘세이노(Say No)’로 처음 시작...‘탄핵반대 서울대인 연대’에서 지금의 ‘트루스포럼’으로 
“‘기독교 보수주의’란 하나님의 말씀·인간에게 부여한 천부인권을 지켜내려는 ‘몸부림’”
“대한민국의 출발도 결국 하나님 말씀 붙잡고 몸부림 친 사람들을 통해 시작된 ‘은혜’”
“좌익사상은 자유주의 신학과 한 뿌리...청년세대의 싸움은 건강한 신앙이 기반이 돼야”
“트루스포럼을 ‘대학 기반의 행동하는 싱크탱크’로 성장시키고 싶어...거대한 영적전쟁”
“부족한 사람들 사랑하면서 선한 열매 만들어 나가는 것이 결국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지난 22일 자유일보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중인 김은구 트루스포럼 대표. /곽성규 기자
지난 22일 자유일보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중인 김은구 트루스포럼 대표. /곽성규 기자

“하나님은 저의 ‘전부’ 이십니다. 사업을 하던 시절 고생하며 자살하신 분들이 이해가 되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러면서 정말로 ‘하나님이 왜 나를 만드셨을까’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그런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트루스포럼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이 있다고 저는 믿어요. 트루스포럼과 대한민국에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랑과 열정이 반드시 열매 맺게 될 날이 올 것이라 믿습니다.”

지난 22일 광화문 자유일보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한 김은구 트루스포럼 대표는 하나님을 ‘자신의 전부’라고 표현했다.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4대째인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은혜 은(恩)자에 구할 구(求)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평생 살라고 지어줬다는 ‘은구’라는 이름을 가진 그의 신앙에 걸맞는 대답이기도 했지만, 사실 그가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자신의 부르심에 대해 깨닫게 된 것은 20대 후반 쯤이었다.

지난 2017년 2월, 서울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었던 김 대표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대자보를 게시하며 지금의 ‘트루스포럼’이 시작됐다. 이후 유명 인사들의 강연과 참여로 이어지며 고려대·연세대·부산대·이화여대·한동대·총신대 등 여러 대학에 지부가 생기면서 현재까지 전국적인 단체로 성장해 왔다. 

위키백과에 트루스포럼은 ‘기독교적 가치관을 중시하며,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자유 시장체제 지지운동을 하는 보수단체’로 소개돼 있다. 김 대표의 진짜 신앙과 함께 진짜 트루스포럼이 어떤 단체인지 자유일보가 이날 직접 물었다.

◇모태신앙이었지만 대학와 혼란 경험...‘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알면서 해방 돼

-언제 하나님을 처음 만나셨나요.

“모태신앙이라 어렸을 때부터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도 계속 다니고 봉사도 많이 했었지만, 20대 후반에 하나님을 새로운 각도에서 만나게 됐습니다. 서울대 들어와서 신앙의 도전을 많이 받았어요. 크리스천이지만 술 마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고, 이슬람과 기독교의 하나님을 같은 하나님이라고 말씀하는 분들, 자유주의 신학 영향을 받으신 분들, 사변적인 신앙에 빠져 계분 분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저한테 개인적으로 주셨던 말씀이 ‘하나님은 영이시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 4:24)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나올자가 없느니라(요 14:6)’ 였어요. 그 말씀들이 정말 위로가 됐습니다. 당시 제 삶도 건조했었는데, ‘예수님께서 진짜 생명이시구나’라는 걸 알게 됐죠.”

김 대표는 "대학시절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나올자가 없느니라(요 14:6)’"란 성경 말씀이 정말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곽성규 기자
김 대표는 "대학시절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나올자가 없느니라(요 14:6)’"란 성경 말씀이 정말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곽성규 기자

-대학 졸업 후 원래는 소프트웨어 회사를 다니셨다고요.

“넥슨(Nexson)에서 일 했었어요. 병역특례로 거기에서 근무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게임IT 업계에서 일을 하게 됐습니다. 법대를 가긴 했는데 원래 자연과학이나 공학을 하고 싶었어요. 게임 기획과 사업쪽 일들을 주로 진행했습니다. 나름대로 게임이 가진 커다란 영향력을 교육용 게임 개발 등으로 선용해보려 했는데, 비즈니스로 풀어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계속 하나님이 저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과 계획이 뭘까 고민하다가 신학을 해야 하나 생각하기도 했었어요. 금식도 많이 했습니다. 졸업을 하고서도 서울대학교회를 계속 섬기면서 외국인 유학생들을 전도하고 섬기고 했었습니다.” 

◇“2015년 동성애자 총학생회장 보며 여러 생각...대한민국 부정하는 운동권 선배들 봐왔죠”

-동성애 관련 이슈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게 된 건 언제부터인가요.

“대학에 돌아와서 2015년도에 동성애자 여학생이 총학생회장이 되는 걸 보면서 상당히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당시 제 석사과정 전공이 국제법이다보니 동성애 이슈가 한국에 도입이 되고 성적지향이 차별금지 사유로 들어오고, 수업시간에 동성애를 당연히 인권으로 전제하는걸 보면서 마음속에 갈등이 너무 컸습니다. 

그런데 학내에서는 이런 분위기에 아무런 반대 목소리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성경말씀은 동성애가 죄악이란 게 명확했어요. 심리적인 갈등이 상당히 커서 다시 대학원을 떠났다가, 결국 다른 목소리를 내야되겠다고 생각해 2016년 2학기에 대학원으로 돌아오게 됐어요.” 

-서울대에서 이전에 다른 이슈들에 대해서도 문제인식이 있었습니까.

“저는 서울대에 입학한 후 운동권 선배들을 보면서, ‘대한민국에는 거짓말을 해서라도 국가를 전복하려는 세력이 있구나’하는 걸 확신했습니다. 1학년 때 한국사 수업에서 교수님이 6.25가 남침이라고 하니까 한 선배가 ‘남한의 북침’이라고 수업시간에 일어나서 소리를 치는거에요. 그런데 교수님이 대응을 잘 못하시더라구요. 

또 서울대 법대 광장에서 우연히 어떤 선배들이 이야기하는 걸 들었는데, 빨치산 선배를 만난 이야기를 하면서 ‘힘내라 혁명이 어려워 보이는데 결정적 순간이 오면 완수될 것이다’이런 말을 하면서 격려를 하는거에요. 공개적인 장소에서요. 또 입학식도 하기 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하면서 의식화 교육을 했어요. 한국사회가 얼마나 썩었는지 토론하게 했어요.

서울대학교 정문. /연합
서울대학교 정문. /연합

나중에 러시아와 한국이 수교를 하면서 6.25관련 소련의 극비문서를 한국에 넘겨주면서 명명백백하게 6.25가 남침이라는 게 드러났어요. 당시 저도 뭐가 진실인지 몰라서 헤맸는데, 진실이 드러나 자유를 경험했습니다. 제 순진한 생각으로 당시 반대로 주장했던 사람들이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알았는데 그런게 전혀 없었습니다.

6.25 북침 주장이 국군장병 선배들이나 참전용사들을 다 바보로 만드는 주장이었는데 사과하는 사람도 없고 정말 이상했어요. 광우병 사태 때도 그랬어요. 그때 확신을 했습니다. ‘이들은 뭐가 진실이고 거짓인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구나’라는 걸요.”

◇‘세이노(Say No)’로 처음 시작...‘탄핵반대 서울대인 연대’가 지금의 ‘트루스포럼’으로

-그러다가 트루스포럼은 처음에 어떻게 만들게 되신 건가요. 하나님의 인도함이 있었나요.

동성애자 학생회장이 생기는 걸 보면서 이제는 학교에서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내면적인 확신이 들었어요. 후배들 몇 명을 데리고 처음에 ‘세이노(Say No)’라는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2016년 10월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사태가 터졌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우선은 A4 10장짜리 탄핵사태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그걸 다시 2장으로 줄여서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대자보를 먼저 붙였습니다. 이후 많은 분들이 저와 함께 염려하시고 글을 보고 연락을 많이 주셨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탄핵반대 서울대인 연대’로 시작을 했습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통과가 될 거라고 생각을 안 했는데, 헌재에서 결국 정치적 판결을 했고, 진실을 알리는 창구가 있어야 되겠다 싶어 2017년 4월에 드디어 ‘트루스포럼’을 처음으로 만들게 된 거에요.”

-트루스포럼이 표방하는 ‘기독교 보수주의’란 뭔가요.

“동성애자·탄핵 등의 이슈에 목소리 냈던 게 신앙적인 사명감이 있었기 때문인데, 탄핵사태를 계기로 만들어진 트루스포럼에는 정말 다양한 분들이 갑자기 모였습니다. 그래서 모임의 기본적인 가치 5가지를 정리했어요. 1.대한민국 건국과 산업화의 가치 인정 2.북한의 해방 3.굳건한 한미동맹 4.탄핵사태의 문제점 인식 5.유대·기독교 세계관에 바탕을 둔 기독교 보수주의 이렇게요. 

시작할때 트루스포럼을 ‘기독교적 가치관’을 존중해 운영할 것이라고 선포했는데, 시간이 지나다보니 이게 결국 ‘기독교 보수주의’더라구요. 미국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가지신 분들이 보수주의를 표방하시는 것을 보면서 보수주의가 결국 하나님의 말씀, 인간에게 부여한 천부인권을 지켜내려는 ‘몸부림’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2018년 6월경부터 트루스포럼이 기독교 보수주의를 공식적으로 표명하게 됐습니다. 

/트루스포럼 홈페이지
/트루스포럼 홈페이지

결국 보수주의의 근원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몸부림입니다. 무신론적 자유주의에 기반한 프랑스혁명에 대한 반성적 고찰에서 시작된 보수주의는 하나님의 말씀과 천부인권을 수호하기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기독교 세계관을 제외하고 보수주의를 말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프랑스혁명에 대한 성찰'이라는 글을 통해 정치적 보수주의의 기초를 다진 에드먼드 버크도 프랑스혁명을 지지하는 프라이스 목사의 설교가 성경의 보편적인 사랑의 정신에 위배됨을 지적하며 논의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결국 기독교 보수주의는 성경적 세계관을 반영하려는 몸부림입니다. 본질은 하나님 말씀을 지키려는 몸부림입니다.” 

◇“대한민국의 출발도 결국 하나님의 말씀 붙잡고 몸부림 친 사람들을 통해 시작된 ‘은혜’”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의 ‘기독입국론’과도 연계가 되는 건가요.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구상하면서 성경 말씀에 기반한 나라를 세우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고. 대한민국 건국 정신을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으로 삼았습니다. 실제로 초대 국회가 목사 국회의원의 기도로 시작됐습니다. 대한민국의 출발도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몸부림 친 사람들을 통해 시작된 ‘은혜’인거죠. 대한민국의 축복이고 또 사명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세력과 축복하는 세력의 전쟁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친일파와 미국이 세운 나라라는 거짓말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속아 왔어요. 대한민국이 하나님의 축복인 걸 모르면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각 나라에 하나님의 복이 되는 것이 대한민국의 사명입니다.”

-트루스포럼이 기독교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만큼 크리스천 회원들이 다수일 것 같습니다. 포럼 내 기도모임도 있을거 같구요.

“코로나 기간 중에 매주 토요모임을 최우선적으로 진행했었는데요. 매월 첫째주 토요일은 기도모임으로 진행하고, 소모임에서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중 크리스천이 아닌 분들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기쁠때는 안 믿는 분들이 저희 모임에 와서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고 이야기하실 때에요. 정말 감사하고 보람이 있습니다. 

반면 적응이 안 되서 떨어져 나가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결국 트루스포럼은 정치단체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있어야 할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인 모임’이라 할 수 있어요. 정치는 문화의 영향을 받고, 문화는 가치관에, 가치관은 세계관에 영향을 받는데 결국 그것을 결정하는 것이 종교입니다. 트루스포럼은 이런 지적토대를 바꿔내는 방향의 운동을 적극적으로 진행해 온 것이죠. 지적인 토대를 바꾸는 활동이다 보니 함께 공부하고 포럼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트루스포럼 홈페이지
/트루스포럼 홈페이지

현재 회원은 30개 대학에 1200명이 공식회원으로 가입돼 있습니다. 이 가운데는 졸업생도 포함 돼 있구요. 하지만 전체 네트워크는 5만명 정도 됩니다. 대표자를 뽑지 않은 모든 출신대학을 정리하면 130개 정도 되구요.”

-현재 트루스포럼이 가장 주력하고 있는 활동은 어떤 건가요.

“조직을 탄탄하게 갖춰나가야 할 시점이 된 것 같아요. 그간 서울대 중심 활동과 부산지역 중심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 돼 왔는데요. 아무래도 캠퍼스에서 출발한 단체이다 보니 캠퍼스를 변화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역 중 하나입니다. 코로나 이후 캠퍼스에 기반을 둔 전국적 조직을 탄탄하게 정비하는 것이 최대 숙제입니다. 

현재 20대 대학생·청년들 중심의 모임을 따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관심있는 주제로 강연도 하고, 교제도 하구요, 재학생들을 중심으로 함께 대자보도 만들어 붙이고 있습니다.”

◇“좌익사상·자유주의 신학은 한 뿌리...대한민국 청년세대 싸움은 건강한 신앙이 기반 돼야”

-지금 이 시대 대한민국 대학생들에게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은 어떤 거라고 보시나요.

“저는 세계 속의 ‘복’이 되는 것이 대한민국의 부르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진실과 거짓의 전쟁에서 먼저 이겨야 합니다. 저는 이게 지금의 청년세대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싸움의 근본은 건강한 신앙을 기반으로 해야 합니다. 

지난 5년의 문재인 정권 기간이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의 거짓말을 일부러 모두 다 보여주신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드러내신 이유는 다가오는 통일에 합당한 대한민국을 준비시키기 위해서라고 생각해요. 이 싸움은 통일을 통해 북한의 주민들을 해방하는 것뿐이 아니라, 뿌리를 타고 들어가면 왜곡된 신앙을 바로잡는 것이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은 부정한 나라다’라는 좌익 사상을 타고 들어가면 자유주의, 해방신학, 김일성 신학으로 들어갑니다. 결국 자유주의 신학과의 싸움입니다. 결국 영적전쟁입니다. 이 전쟁에서 이전에 유럽교회는 무너졌고, 현재 미국도 열세입니다. 한국교회가 깨어나야 합니다. 잘못된 신학이 신학교 안에 퍼졌고, 교회들을 공격하고 있는데 그간 너무 소극적으로 대응해 왔어요. 한국교회가 앞으로 이 싸움을 싸워내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정말 위태로울 것입니다.”

-트루스포럼을 지금까지 이끌고 오면서 하나님의 도움도 많이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기억에 남는 간증이 있으시다면.

“제일 기억에 남은 건 트루스포럼을 처음 시작할 때, 크리스천이 아닌 서울대 친구가 조용히 찾아와서 저를 응원한다고 했을 때에요. 자기는 크리스천이 아니지만 나라가 어려울 때 마다 크리스천들이 일어나는 걸 보니까 하나님이 진짜 계신 것 같다고 이야기 하더라구요. 그 친구 이야기가 많은 힘이 됐습니다. 

김 대표는 "트루스포럼을 처음 시작할 때 크리스천이 아닌 서울대 친구가 조용히 찾아와서 응원한다고 했을 때 많은 힘이 됐다"고 말했다. /곽성규 기자
김 대표는 "트루스포럼을 처음 시작할 때 크리스천이 아닌 서울대 친구가 조용히 찾아와서 응원한다고 했을 때 많은 힘이 됐다"고 말했다. /곽성규 기자

트루스포럼이 벌써 햇수는 6년인데, 사실 그간 어려운 일들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재정적인 어려움도 많았는데 후원은 적극적으로 모집 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어려운 때가 되면 어떤 형태로든 길이 열리고 재정이 채워지고 하는 것들을 경험하면서 하나님께서 함께 일하신다는 개인적인 확신이 들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트루스포럼을 ‘대학 기반의 행동하는 싱크탱크’로 성장시키고 싶어...거대한 영적전쟁이죠”

-96학번이시면 대학생 기반 청년단체 대표라고 하기에 적은 나이는 아니신 것 같습니다. 차기 회장이나 다음세대 리더십에 대한 승계 작업도 진행 중이신지요.

“사실 제 나이가 좌파에서 저를 공격할 때 뜨끔한 부분이긴 합니다. 제가 박사과정 학생이긴 하지만 나이는 홍진경씨와 동갑입니다.(웃음) 그런데 서울대교회를 대학시절부터 20년이 넘게 다니면서 그간 우리나라 대학의 흐름을 봐 올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일부러 보여주신 것 같아요. 

트루스포럼을 처음 시작할때도 그간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과 서울대학교회를 중심으로 쌓았던 대학생 동문 네트워크가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그리고 겁도 없이 대학 운동권 조직을 대항하는 게 쉽진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나이가 있으니까 겁내지 않고 과감하게 대항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트루스포럼에도 이제 청년 스피커들이 세워지고 더 성장해 나가야 합니다. 대학의 리더들을 잘 세워내는 것이 트루스포럼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입니다. 다만 조직의 구조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 중입니다. 장기적으로 트루스포럼을 ‘대학에 기반을 둔 행동하는 싱크탱크’로 성장시켜 나가고 싶어요. 

대한민국을 근본적으로 회복하고, 북한의 해방을 준비하고, 변화될 중국을 대비하고, 왜곡된 복음을 바로잡고, 대한민국이 하나님의 기적이며 세상의 복이 되게 하는 것이 저한테는 인생의 사명입니다. 이것이 트루스포럼과도 하나로 연결돼 있습니다. 거대한 영적전쟁과 연결 돼 있는 주제들 입니다.” 

지난 2019년 3월 트루스포럼이 자유한국당 정종섭 의원과 공동주최한 ‘국회의원님들께 탄핵에 대한 의견을 문의합니다! 트루스포럼 탄핵질의서 간담회’에서 발언 중인 김은구 대표. /연합
지난 2019년 3월 트루스포럼이 자유한국당 정종섭 의원과 공동주최한 ‘국회의원님들께 탄핵에 대한 의견을 문의합니다! 트루스포럼 탄핵질의서 간담회’에서 발언 중인 김은구 대표. /연합

-트루스포럼 이후 인생의 다음 활동 계획도 있으신가요. 예를 들면 직접 현실 정치에 뛰어 드신다거나 혹은 (학생이 아닌) 시민단체 활동을 하신다거나요.

“일단 저는 트루스포럼을 대학에 기반을 두긴 했지만 싱크탱크를 지향하는 ‘사회단체’로 이해하고 있어요. 미국의 헤리티지 재단(미국의 보수주의 성향의 싱크탱크)처럼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 안에서 제 역할을 계속 감당해 나가려고 합니다.

만약 정치권에 진입하는 게 개인적인 목적이었다면 야당의 비례대표가 될 수 있는 기회는 몇 번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라는 한 사람이 정치권에 들어가는 것 보다도 사회·문화적인 전체 토대를 바꿔내는게 더 중요하고, 정치권에 쉽게 연루되면 저희모임 자체가 지속되기 어렵겠다는 생각에 고사를 했어요. 

30대 후반에 박사과정을 마무리하려고 다시 학교로 돌아와 사명감으로 지금까지 달려왔는데, 벌써 5년이 훅 지났습니다. 현재는 펀딩을 좀 여유있게 받아서 조직을 키워나가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펀딩보다는 트루스포럼의 주요 가치인 5대 인식을 위주로 힘을 써왔습니다. 그 인식에 동의하는 친구들이 모이는 것이 당장 큰 펀딩을 받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봤거든요.

이제는 원칙이나 가치, 이런 부분에 대해 트루스포럼이 명확하게 정리가 된 단계이기 때문에 청년들이 지속적으로 활동하기 위한 펀딩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자기 생활을 꾸려나가면서도 이런일을 지속적으로 해 나가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재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풀어낼지 계속 고민중입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기도부탁을 하신다면.

“트루스포럼처럼 여러사람들이 모인 조직을 운영한다는 게 항상 어려운 상황들이 있고, 속상한 일들도 많이 있고 한데, 부족한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선한 열매를 만들어 내시는 것이 결국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안에 있는 그분의 섭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앞으로도 하나님을 잘 붙들고 나갈 수 있는 저와 트루스포럼이 되도록 기도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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