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냉전··· 열전··· 통곡의 20세기, 결산은 한반도에서
[시론] 냉전··· 열전··· 통곡의 20세기, 결산은 한반도에서
  • 최성재
  • 승인 2018.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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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최성재 교육 문화 평론가     

[북한의 김일성수령체제, 곧 봉건왕조(이씨조선체제)와 극우전체주의(천황군국주의)와 극좌전체주의(스탈린공산체제)의 해괴망측 결합인 수령체제가 해체되어야, 21세기는 비로소 시작될 것이다.]

◇토인비의 시대구분

20세기는 언제 시작되어 언제 끝났을까? 1900년 또는 1901년에서 시작되어 1999년 또는 2000년에 끝났다고 보는 것은 기계적·물리적·피상적 사고방식이다. 연대기적 구분이다.

구석기시대나 신석기시대는 수십만 년 또는 수만 년 지속되었지만, 그것을 100년 단위로 구별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우주의 역사는 그보다 더 긴 시간의 단위를 필요로 한다. 거기선 기본 단위가 수억 년 또는 수십억 년이다. 그런 한편으로 빅뱅 직후 1초는 그 후 1억 년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물리학자는 그것을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인간사회든 자연계든 중요한 것은 변화다.

아놀드 토인비 저 '역사의 연구'.
아놀드 토인비 저 '역사의 연구'.

아놀드 토인비 Arnold Toynbee(1889-1975)는 ≪역사의 연구 A Study of History≫ 서문에서 시대구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학자로서 20세기의 시작을 1875년경으로 보았다.

These two institutions[Industrialism and Democracy], the one economic and the other political, attained a general supremacy in the Western World at the close of the age preceding our own. For the Western World as a whole the close of this preceding age may be equated approximately with the end of the third quarter of the 19th century of our era.

(이 두 제도[산업화와 민주주의]는, 전자는 경제적인 것이고 후자는 정치적인 것이거니와, 서양에서 우리 시대에 바로 연결된 시대가 끝나던 시점에 대세로 자리 잡았다. 서양에서는 대체로 이 이전 시대의 마감은 얼추, 우리 시대인 19세기 3/4분기의 끝에 해당한다. 번역: 최성재)

토인비는 1850년에서 1875년을 19세기와 20세기가 겹치는 격동의 시기로 봤는데, 1875년경에는 19세기의 흔적이 희미해졌으므로 이미 그때부터 20세기의 푸른 소나무가 독야청청해졌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 시대구분도 그는 겸손하게 서양의 입장이란 것을 분명히 했다.

그 기준은 산업화와 민주화다.

60만 명의 피를 먹고 흡족해진 미국의 민주주의 나무가 바야흐로 유럽처럼 노예제도의 독초가 삭초제근(削草除根)된 비옥한 대지에서 힘차게 가지를 뻗기 시작함으로써, 비로소 유럽뿐만 아니라 북미에도 20세기의 태양이 아폴로의 수레를 타고 힘차게 100년간의 긴 여행길에 나섰다고 본 것이다.

◇최성재의 시대구분

세계 기준으로 보면 어떨까. 산업화와 민주화의 범위를 조금 더 넓히면 어떨까. 나는 토인비와 달리 심층적 차원에서 20세기의 시작을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이후라고 본다. 나의 시대구분에서 기준은 3가지다.

첫째는 산업화가 아시아로 넓혀졌다는 것이다. 일본은 명치유신 이후 이전까지의 산업화 기록을 모조리 갈아치우면서, 1914년 유럽 이외 지역에서 미국과 더불어 세계대전에 뛰어들었다.

둘째는 유럽 왕조의 몰락이다. 제1차세계대전의 한 축이었던 독일과 오스트리아와 터키와 러시아의 왕조가 일제히 몰락한 것이다. 오스만터키의 왕조는 1922년에 623년의 수명을 다했지만, 1918년에 이미 식물왕조 상태였으므로 1918년을 기준으로 산업화와 민주화에 걸맞지 않은 유럽의 왕조가 역사의 뒤꼍으로 사라졌다고 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러시아 차르 니콜라이 2세와 가족. 1차 대전 참전은 왕조의 몰락을 재촉했다.

셋째는 여성의 참정권(women’s suffrage)이다. 1차 대전은 이전 전쟁과는 전혀 다른 총력전(Total War)이었다. 다시 말해서 후방과 전방이 따로 없었다. 후방의 공장과 농장에서 무기와 군수품과 군량을 제공하지 않으면, 전방은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후방이 가장 든든했던 미국이 이때부터 세계 패권을 차지하게 된 것은 도도한 역사의 흐름이었다.

그런데 이 후방을 주로 담당한 사람들이 인류의 절반을 차지한 여성들이었다. 자연히 민주 국가에서는 더 이상 여성 참정권을 거부할 명분(cause)이 없어졌다.

1918년 독일과 오스트리아와 소련에서 여성도 삼삼오오 투표권을 행사했다. 캐나다와 헝가리와 폴란드도 이 대열에 끼어들었다. 1919년 뉴질랜드, 1920년 미국, 1928년 영국 등으로 여성 참정권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대의명분으로 자리 잡았다. 산업강대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에서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야, 정치인들이 여성에게도 깊게 고개를 숙이게 된 것은 만시지탄(晩時之歎)! 이런 거대한 시대적 조류는 2차 대전 후 탄생한 무수한 신생독립국가에도 걷잡을 수 없이 덮쳤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토인비와 달리 1875년부터 1917년까지를 19세기 후반이라고 본다.

◇1918년부터 의미가 달라진 산업화와 민주화

산업화와 민주화가 20세기의 두 명분이었지만, 그것은 1917년 러시아혁명을 계기로 분열되었다. 자유와 평등에 기초를 둔 현대 종교 곧 민주교(民主敎)에 대한 양보할 수 없는 해석 때문이었다. 교리 때문이었다. 유럽이 기독교화를 거의 달성하는 순간부터 삼위일체설을 두고 아리우스파와 아타나시우스파로 갈라져서 이전의 이교도와 싸우던 것보다 더 치열하게 내전을 벌였던 것과 비슷했다. 이슬람이 수니파와 시아파로 갈라진 것과도, 불교가 대승불교와 소승불교로 갈라진 것과도 비슷했다.

민주화= 자유 + 평등(19세기)

민주화=자유 > 평등: 자유진영, 민주화=평등 > 자유: 공산진영(20세기)

산업화에 대한 견해도 그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상대적으로 자유를 중시하면 시장경제에 손을 들어 주었고, 평등을 중시하면 계획경제에 인민의 손발을 묶어 버렸다.

스탈린이 전략적 차원에서는 전 세계의 공산화를 꿈꾸었지만, 전술적 차원에서 통일전선을 구축하여 처음에는 독일과 일본 후에는 미영불(美英佛) 3국과 손을 잡은 것은 필연적으로 파탄 날 수밖에 없었다. 2차대전 후 냉전은 필연적이었다. 그걸 누구보다 앞서서 훤히 꿰뚫어 보았던 정치가가 처칠이었다. 그는 히틀러의 극우도 스탈린의 극좌도 꿰뚫어 본 ‘큰 바위 얼굴’이었다.

산업화(19세기)

산업화=시장경제: 자유진영, 산업화=계획경제: 공산진영(20세기)

헤비급 미국과 소련은 직접 링에 오르기에는 서로가 부담스러워서 자기한테 유리한 곳에 기습적으로 사각의 링을 설치하여 라이트급 선수를 대신 올렸다. 사각의 링은 세 군데였다. 한반도(1950~1953), 인도지나반도(1954~1975), 아프가니스탄(1979~1989)! 결과는 차례로 무승부, 소련 1승, 미국 1승이었다.

걸프전(1990)은 제 앞가림도 못하게 된 소련과 중국의 강 건너 불구경으로 미국의 일방적 난타전으로 끝났다. 무제한급 미국한테 라이트급 이라크가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던 것이다. 뒷골목 싸움에 아무도 안 끼어들 줄 알고 라이트급 이라크가 플라이급 쿠웨이트를 기절시킨 다음 재산을 몽땅 가로챘다가, 무제한급 미국한테 들켜 가벼운 잽 한 번 못 내밀고 1회 1초 만에 TKO된 것이다.

1990년 걸프전을 끝으로 미국이 유일초강대국이 되었다. 그러면 그때부터 21세기가 시작되었는가? 아니다! 공산진영과 자유진영이 냉전(Cold War)이 아닌 열전(Hot War)을 벌였지만, 무승부로 끝난 한반도가 그대로 남아 있었으니까.

20세기가 끝나지 않은 한반도

똑같은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한쪽은 밤도 낮처럼 밝은 지상낙원으로 탈바꿈했고, 한쪽은 낮도 밤처럼 어두운 생지옥으로 전락했다. 식민지시대나 봉건왕조시대가 못내 그리운 생지옥으로 전락했다.

젖과 꿀이 흐르는 ‘파라다이스’ 한국에는 시민의 자유와 주인의 평등이 법률에 의해 5천만 누구에게나 보장되지만, 분뇨와 오물이 흘러넘치고 자연의 냄새가, 악취가 진동하는(*)‘헬조선’ 북한에는 죄수의 자유와 노예의 평등이 2300만 누구에게나 수령님의 교시(敎示)에 따른 리바이어던 감시감독 체제에 의해 물샐틈없이 강제된다.

(*북한에서는 화학비료 부족을 메꾸기 위해 자연친화적인 퇴비생산 전투가 도시에서도 치열하게 벌어진다.)

1990년대 말 300만을 굶겨 죽인 김정일 정권은 인구의 10분의 1이 사라지고 있는데도 핵 개발에 열을 올렸다.
1990년대 말 300만을 굶겨 죽인 김정일 정권은 인구의 10분의 1이 사라지고 있는데도 핵 개발에 열을 올렸다.

거기선 사람이자 주인은 딱 한 명뿐인데, 그 아래 죄수와 노예 중 90년대에 국군이든 미군이든 북쪽으로 실탄은커녕 공포 한 방 쏜 적 없지만, 인구의 10분의 1이 넘는 300만이 죽었다. 굶어 죽었다. 나는 북한 인구가 2500만이란 걸 믿지 않는다. 그래서 늘 2300만이라고 한다.

전쟁보다 저주스러운 ‘평화’였다. 왜?

김정일이 위태위태하던 정권을 공고히 하려고 김일성의 피라미드에 쏟아 부은 달러를 국제곡물 시장에 싸들고 갔으면 한 명도 안 죽었을 생때같은 목숨이었으니까.

누가 봐도 싸움은 끝났다. 그건 어디까지나 대세이고 눈앞의 현실은 일촉즉발이다.

헬조선의 드라큘라 또는 생지옥의 마왕은 핵단추를 만지작거리며, 2300만 노예로부터 그 노동 생산 중 90%를 착취하며, 해외 노동자의 임금도 90% 착취하며(*), 히틀러의 아우슈비츠보다 스탈린의 굴라그보다 비정하고 악랄하고 잔인한 강제수용소의 열쇠를 딸그락거리며, 최후의 뒤집기를 노리고 있다. 만면에 웃음을 띠고 호시탐탐 적화통일을 노리고 있다.

(*UN의 결의에 따라, 북한에서 파견된 해외의 노예 노동자는 2019년까지 전원 귀국시켜야 한다.)

어떻게? 왜? 무슨 배짱으로? 크게 믿는 구석이 두 군데나 되기 때문이다. 뒷문에는 외환보유고 세계 1위 중국이 있고, 앞문에는 문화권력과 사회권력에 이어 정치권력까지 틀어쥔 386운동권의 한국이 있다. 산유국을 제외하면, 중국과 독일에 이어 무역흑자국 세계 3위인 기적의 나라 한국이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의 동시에 달성했노라고 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닌 한국이 있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러나, 한국은 넓게는 1990년대부터 좁게는 1998년 ≪한겨레≫가 KBS를 접수한 때부터, 386운동권이 누르는 ‘언론노조’ 리모컨에 따라, 스스로 무얼 보고 듣는지도 모르고, 그게 모두 자유의사에 따른 선택인 줄 철석같이 믿고,

평화 뉴스도 보고 듣고

민족 드라마도 보고 듣고

휴먼(사람 먼저) 다큐멘터리도 보고 듣고

평등 오락프로도 보고 듣고

적폐 중계방송도 보고 듣는다.

미국과 중국의 21세기 패권 다툼, 그 전초전

최소 3천만 명을 굶겨 죽이거나 때려죽이고 나서야, 1978년부터 중국이 문화혁명과 중화주의의 악몽과 미몽에서 깨어나면서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에 선별적으로 시장경제를 받아들여, 산업화의 신기록을 대량생산하기 시작했다. 산업화의 신기록은 독일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한국으로, 한국에서 중국으로 건너가기 시작했다.

1차대전이 끝나기 전 유럽의 강대국 중에 절대군주들이 산업화를 크게 일으킨 것을 앞서 말했거니와, 현재 중국이 그와 비슷하다. 습근평(習近平 시진핑)이 그런 절대군주의 자리를 굳혀 가고 있다. 그는 1차대전 당시 독일·오스트리아·러시아·터키의 절대군주와 비슷한 위치에 있다. 중국특색 사회주의는 좋게 말해서 유럽의 계몽주의에 비견할 만하다.

습근평이 트럼프와 당당하게 함께 링에 오르기에는 한참 시기상조! 마침, 줄도 모르고 까부는 북한이 있다. 황소개구리가 자신이 황소인 줄 맹신하는 것과 매한가지인 북한이 있다. 우습게도 이 황소개구리를 태평양 건너에서 어슬렁거리던 버펄로가 덜컥 만나 주겠다고 하자, 6년간 대문은커녕 동네 입구에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할 때는 언제고, 스스로 황룡이라고 착각하는 이무기가 허겁지겁 두 번이나 황소개구리를 만나 주었다.

출처=[레이더P] 차명진 카툰
출처=[레이더P] 차명진 카툰

우상변 끝내기만 남은 20세기 총결산 바둑판, 첫 착수는 싱가포르에서

바둑으로 말하면 이제 우상변의 끝내기만 남았다. 습김문(習金文)은 승부를 뒤집을 비장의 팻감이 있다고 보고, 한국의 말 없는 다수와 미국의 트럼프는 계산서가 나왔다고 본다. 레닌과 스탈린과 마르크스의 동상이 거꾸러지면서 김일성 동상도 그들과 길동무가 되어 주었으면, 독일처럼 한국의 자유통일도 그 무렵 이뤄졌을 것이고 21세기는 그와 동시에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흡수통일 결사반대는 그러한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온 계산된, 기획된, 냉정한 절규였다. 팻감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불계패할 상황에서, 끝내기 자체를 방해한 것이다. 대대적으로 대국민 세뇌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조깅으로 다리 근육만 고도로 발달했을 뿐 뇌세포가 급속히 쪼그라들었던 ‘서울대의 수치’ 김영삼이 차기 대통령 영순위 김대중에게 ‘쓸데없는 소리!’라고 일갈했으면 한국의 헬무트 콜이 될 수 있었지만, 머리 좋은 김대중 선생님의 손을 꼭 잡고 유치원 어린이처럼 입을 있는 대로 짝짝(실은 씰룩씰룩) 벌려,

‘흡수통일 절대 반대! 전쟁 결사반대! 무조건 평화!’를 외치며

20세기를 총결산하는 바둑의 끝내기를 방해함으로써, 아예 바둑 자체를 못 두게 함으로써, 이틀거리 바둑에서 첫째 날 마지막 수를 봉수(封手)하는 것처럼 끝내기를 대통령 직권으로 무기한 연기해 버림으로써, 마침내 오늘에 이르렀다. 핵을 머리에 이고 살기에 이르렀다. 급기야 ‘민족의 핵무기’에 평화를 구걸하기에 이르렀다.

그사이 김정일과 김정은은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 한국의 달러로 룰루랄라 핵무기와 대륙간탄도탄을 개발 완료했고, 이제 김정은은 핵보유국의 ‘최고존엄’으로서 바라고 바라던 대로 아낌없이 천자(天子)의 훈수를 받고 우레 같이 달님의 박수를 받으며, 핵보유국의 ‘4년짜리 우두머리’ 트럼프와 마주앉아 끝내기 바둑을 두기 직전이다.

공화당의 멍청한 부시나 민주당의 너그러운 오바마, 전 세계의 독재자들에게 유난히 너그러운 오바마와 달리 이번에는 습김문(習金文) 모두 임자를 제대로 만난 듯하다. 싱가포르 회담을 취소한다는 공개편지에 그들은 화들짝 놀랐다. 급히 최대한 성의를 보이자, 하루 만에 트럼프는 회담 재개 의사를 밝혔다. 이처럼 트럼프도 한국의 애국우파가 믿고 맡기고 응원하기에는 미심쩍은 점이 있다.

하여간 현재로서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에 체제 보장이란 G(Guarantee)를 추가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접점을 찾은 듯하다.

미안하지만, 이건 둘 다 이룰 수 없는 일이다. 교환이 불가능하다. 수령체제는 보장해 주려고 해도, 중국과 미국이 설령 힘을 합쳐도, 곧 다가올 21세기의 거대한 홍수와 지진과 쓰나미에서 지켜 줄 수가 없다. 더군다나 CVID는 수령체제가 존재하는 한 불가능하다.

다음달 12일 '풋내기' 김정은을 상대하는 '장사꾼' 트럼프 대통령은 어떻게든 미국의 이익이 증대되는 쪽으로 결론을 낼 것이다. 그 결과는 한국에게 희망적일 수도 참혹할 수도 있다.
다음달 12일 '풋내기' 김정은을 상대하는 '장사꾼' 트럼프 대통령은 어떻게든 미국의 이익이 증대되는 쪽으로 결론을 낼 것이다. 그 결과는 한국에게 희망적일 수도 참혹할 수도 있다.

싱가포르 회담이 열리든 안 열리든, 회담을 길게 하든 짧게 하든 20분 안에 중단하든, 그것은 서로가 서로를 속이는 회담이 될 것이다. 트럼프는 즉흥적인 듯해도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의 언행을 자세히 분석해 보고 신중하게 종합해 보면, 즉흥적인 말도 계산된 경우가 많다. 설령 그것이 실수라 해도 뒤에 바로잡을 수 있는 협상의 달인이다.

무엇보다 그는 중심이 있고 일관성이 있다. 그것은 미국 우선(America First), 이것이 1980년대 이래 만성적으로 지속된 무역적자에 심기가 상할 대로 상한 세계최대 부국이자 군사초강대국에게 가장 매력적인 말이다. 그것이 좌파가 주도하는 미국의 언론 보도와는 달리, 그가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는 소이(所以)다.

한국은 외환보유고가 바닥날 정도로 덤터기 쓸 가능성이 높다. 한 시도 변한 적이 없는 수령체제의 무력적화통일 강철 노선에 따라, ‘꿈에도 소원’ 평화 대신, 기습남침에 의한 제2의 6·25 가능성도 없지 않다.

중국은 무지개 잡으러 가던 소년처럼 체면 구길 가능성이 높다. 이미 몇 개 선보인 것처럼 무지막지한 무역보복이나 1985년의 플라자 합의 같은 우아한 환율 정책으로 중국의 경제를 10년 20년 침체시킬 수 있는 초강력 광선 무기와, 언론의 총공격에도 트위터 하나로 맞설 용기가 트럼프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은 위선적 사치(hypocritical luxury)다.

트럼프는 입이 있을 뿐 아니라 귀도 있어서 북한의 치명적 약점인 인권 문제에 항상 귀를 열어 놓고 있다. 2017년 한국의 국회에서 북한인권 상황을, 링컨이 노예해방 선언하던 것처럼 엄숙하게, 비장하게, 당당하게 세계만방에 폭로하고 경고한 전례가 있다. 습김문(習金文)이 철천지원수로 아는 볼턴이 바로 지난 20년간 줄곧 그랬듯이, 트럼프의 귀에도 북한인권 문제의 심각성을 속삭여 줄 사람 중 최고위직 인물이다.

한반도를 등용문(登龍門) 삼아 이무기에서 황룡으로 화려하게 등극하려는 습근평도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다. 탈북민을, 대한민국 헌법상 대한민국의 국민을 강제로 제일 많이 송환시키는 나라가 중국이기 때문이다.

어떤 형식으로든 한반도에서 20세기를 총결산하는 건곤일척 바둑판의 끝내기 수순에 들어갔다. 수년 내로 한반도에 격변 상황이 도둑같이 찾아올 것 같다. 그날에 반인륜적 독재의 골이 깊었던 만큼 독사와 전갈과 독거미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올 것이다. (2018. 5. 31.) 

 

csj@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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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루 2018-06-03 20:11:15
세계 근현대사를 매의 눈으로 날카롭게 꿰뚫어 보시는 통찰력이 빛나는 선생님의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처럼 수년 내로 한반도에 격변 상황이 도둑처럼 찾아오리라는 것을 저도 확신합니다. 비록 그 피해는 어느 정도 있겠으나 그 피해를 감수하고도 남을 만한 긍정적인 격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현 정권은 피하고 싶은 일대 사건을 통해 한민족의 오랜 숙원이 풀어질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뼈저린 댓가가 따르지 않는다면 감히 이루어내기 힘든 과업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