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계와 학계를 중심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사면론이 힘을 얻고 있다. 한국 경제·산업의 버팀목인 삼성전자의 오너 리스크 해소 없이는 국가 경제의 ‘퍼팩트스톰’ 위기 극복이 어렵다는 것이다. /연합

문재인 정부가 내달 8일 석가탄신일을 맞아 마지막 특별사면을 저울질 중인 가운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사면론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재계와 주류 학계가 이 부회장의 사면을 거듭 촉구하고 있다.

미·중 갈등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이 불러온 국가 경제의 총체적 위기 상황인 ‘퍼팩트스톰’을 극복하려면 부정할 수 없는 한국 경제·산업의 버팀목인 삼성전자의 오너 리스크 해소가 절실하다는 이유에서다.

27일 자유일보의 분석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올해 들어 이날까지 회계부정·부당합병 의혹 등과 관련해 총 15회나 법정에 출석했다. 1월 3회, 2월 3회, 3월 5회, 4월 4회로 매주 한 번꼴이다. 28일에도 출석이 예정돼 있다. 이렇다 보니 정상적 경영 활동은 언감생심이다.

특히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가 지난해 8월 가석방됐다. 하지만 5년의 취업 제한 때문에 올 7월까지 공식적 최고경영자(CEO) 역할을 하지 못한다. 글로벌 현장 경영을 위한 해외 출장조차 법무부 승인이 필요한 실정이다. 문 정부 출범 직후 채워진 사법 리스크의 족쇄가 5년 내내 풀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의 오너 부재가 문 정권 내내 지속되면서 휴대폰, 자동차 전장 등 삼성전자의 주요 사업 곳곳에서 위기의 징후가 표출되고 있다. 특히 국가 경제와도 직결된 반도체 사업의 경고음이 심각하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를 적극 육성해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에 오르겠다는 야심찬 목표와 달리 업계 1위인 대만 TSMC가 올해 420억달러의 공격적 설비투자에 나선 반면 삼성전자는 1분기가 지나도록 투자액조차 확정하지 못한 것이 단적인 예다. 오너의 결단이 필요한 장기적 안목의 대규모 투자에서 경쟁사에게 밀리고 있는 것이다.

결과는 시장지배력 약화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최근 대만의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올해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와 삼성전자의 점유율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TSMC의 점유율은 전년 53%에서 56%로 오르고 삼성전자는 18%에서 16%로 2%포인트(p) 낮아진다는 분석이다. 우리나라 수출액 중 반도체의 비중이 20%에 이른다는 점에서 K-반도체를 이끄는 삼성전자의 위축은 가뜩이나 어려워진 경제에 추가 충격을 줄 수 있다.

지난 25일 대한상공회의소·한국무역협회·중소기업중앙회·한국경영자총협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5단체가 청와대와 법무부에 이 부회장의 사면·복권을 청원하고 나선 배경도 여기에 있다. 청원 대상에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도 포함됐다.

이들 단체는 청원서에서 국가 경제가 초유의 위기 상황에 처한 만큼 역량 있는 기업인들을 사면·복권해 위기 탈출과 미래 경쟁력 확보에 헌신토록 할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이 부회장을 비롯한 기업인들의 사면 당위성에는 주류 학계도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기업 경쟁력의 하락은 국가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사면을 통해 경영에 전념할 수 있도록 현 정부에서 결자해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도 "기업 경영은 정답이 아니어도 적시 의사결정이 더 중요하다"며 "기업들이 과감한 투자와 신속한 인수합병(M&A)으로 시계 제로 상태의 경영환경을 극복할 수 있도록 전향적 결단이 요구되는 시기"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5일 청와대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사면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고 해도 대통령의 특권일 수는 없다"며 "사면이 사법 정의를 보완할 수 있을지, 부딪힐지의 판단은 전적으로 국민의 몫"이라고 언급했다. 국민적 공감대, 즉 여론 동향을 살펴 사면 여부를 최종 판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선뜻 수용하기도, 계속 거부하기도 어려워 고심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해 이 부회장의 광복절 가석방 결정을 앞두고 진행된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이 부회장의 사면에 긍정적이라는 답변이 70%선에 달했었다"며 "경제위기 극복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맞닥뜨려야 할 새 정부의 부담을 덜어줄 결정이 내려지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청년희망 온(ON) 참여기업 대표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청년희망 온(ON) 참여기업 대표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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