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철
이인철

대선 후 한 달이 지난 4월 12일 민주당은 속칭 ‘검수완박’ 법안과 함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안을 당론으로 정해 4월말까지 입법을 시도하고 있다. 법 체계를 바꾸는 국가적 과제는 깊은 논의가 필요한데, 신 정부 출범까지 한 달 남짓한 기간에 속전속결로 입법하고자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특정 정당의 당파적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입법권 남용이다.

이 법안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지만, 실은 공영방송 이사진을 어떻게 구성하고 사장을 어떻게 선출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그동안 공영방송 이사진과 사장 선출을 둘러싼 방송법 개정을 살펴보자.

2016년 야당이던 민주당은 공영방송 이사의 여야 추천 비율에서 야당 추천 몫을 늘이는 내용의 방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리고 이를 방송장악금지법이라고 선전하면서 입법에 총력을 기울였다. 부칙은 법안 통과 후 3개월 내 시행하고 3개월 후 공영방송 이사진과 사장을 선임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법을 바꾸어 이사진과 사장을 교체하고자 했던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방송장악법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언론노조가 공영방송 이사진에 사퇴 압력을 가하고 정부가 이를 부추기는 상황이 됐다. 압력에 못 견딘 공영방송 이사들이 사임하거나 해임됐고, 바뀐 이사진에 의해서 KBS, MBC 사장이 해임됐다. 이어 언론노조 출신으로 공영방송 경영진이 구성됐다. 공정을 외치던 집권여당에 의해 공영방송의 공정성이 무너졌고, 이후 오늘까지 정권의 방송이 되었다.

민주당이 여당이 된 후 공영방송 제도개선 논의는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2020년 5월 여소야대의 21대 국회 개원 이후, 여당은 공영방송 제도 개선 논의를 진전시키지 않았다. 2021년 언론중재법 입법 파동이 일자 국회는 언론미디어제도 개선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위원회에서는 공영방송 개정 법안도 언론중재법 등 다른 미디어법 개정 논의에 포함시켜 2022년 5월 29일까지 함께 논의하기로 했다.

그런데 4월 12일 민주당은 독일식 방송평의원회제도를 도입, 25명으로 구성된 공영방송운영위원회에서 사장을 선임하는 제도 개선안을 제안하고 바로 당론으로 채택했다. 개선특별위원회 논의를 거치지도 않고 당론으로 확정해 버림으로써, 당내는 물론 국회에서의 논의 여지도 일축하고 입법을 밀어붙이는 상황이 됐다,

원래 만들어진 민주당 법안은 공영방송 이사진의 여야 추천 구성 비율을 7 : 6으로 하는 것이었다. 이를 변경해 국회에서 6명을 추천하는 외에는 정부, 지자체, 학회, 직능단체를 포함 총 25명을 구성원으로 하는 공영방송운영위원회를 구성하는 안으로 바꿨다. 극단적 대립으로 갈려있는 정치적 양극화 상황에서, 이런 방식으로 위원 수를 늘인다고 진영화된 정치의 영향력을 막을 수도 정파적 구성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 이사 선임 절차 및 사장 선출에 있어서 정치적 충돌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몇년 동안 공영방송 개정 논의는 이렇게 필요할 때만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장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겨질 때는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제도 개선을 위한 논의가 아니라 정치적 대결 구도를 만들기 위한 논의였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논의는 항상 누가 방송을 운영하는가에만 초점을 맞춰져 이사 및 사장 선출 방식에만 집중되어 왔다. 틀렸다. 누가 운영의 주체가 되는가가 아니라 어떤 방송이 공영방송인가, 공영의 이유가 되는 공적인 콘텐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논의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공영의 이유가 되는 공적인 콘텐츠가 무엇인가라는 논의가 있어야 공영방송의 의미를 찾고 개선을 시도할 수 있다. 정파적으로 분열된 사회에서 누가 선출되느냐는 논의는 공영방송을 정쟁으로 이용하는 도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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