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북수마트라주의 델리 세르당에서 26일 노동자들이 새로 수확한 팜 열매를 오토바이로 나르고 있다. 세계 최대 팜유 수출국인 인도네시아는 내수 식용유 가격이 작년 초 수준으로 떨어질 때까지 팜유 식용유와 RBD 팜올레인 수출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EPA=연합
인도네시아 북수마트라주의 델리 세르당에서 26일 노동자들이 새로 수확한 팜 열매를 오토바이로 나르고 있다. 세계 최대 팜유 수출국인 인도네시아는 내수 식용유 가격이 작년 초 수준으로 떨어질 때까지 팜유 식용유와 RBD 팜올레인 수출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EPA=연합

국제 농산물 가격 상승이 심상찮다. 당장은 국제유가에 가려 체감도가 덜하지만 몇달 내 식량안보에 심각한 위기 상황이 닥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농산물값 급등이 전반적인 물가 상승을 압박하는 애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전 세계의 곡창지대가 흉작에 시달리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흑토지대, 북미의 프레리, 아르헨티나의 팜파스 등 세계 3대 곡창지대를 비롯해 세계 최대 식량 산지인 중국이 모두 극도의 생산 부진을 겪고 있다.

원인은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우선 세계 밀 수출 1위인 러시아와 5위인 우크라이나는 전쟁으로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다.

‘세계의 빵 공장’으로 불리는 우크라이나는 전 국토의 70%인 42만2000㎢가 농경지다. 경작 가능한 면적이 유럽연합(EU) 전체의 30%에 달하는 데다 밀·옥수수·콩 농사에 가장 적합한 흙으로 이뤄져 있다.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8400만톤의 곡물을 생산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침공으로 올 봄 곡물 파종 면적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서방의 경제 제재에 맞서 밀 수출 중단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밀 수출의 30%를 담당하고 있다.

세계 2위의 밀 수출국인 미국은 가뭄이 심각하다. 최대 밀 생산지인 캔자스주에서는 지난해 10월부터 눈과 비가 오지 않아 흉작이 예상되고 있다. 또 다른 밀 생산지 오클라호마주에서는 밀밭의 4분의 3, 텍사스주는 3분의 2 이상이 심한 가뭄을 겪고 있다.

밀·옥수수·콩을 80여개 국가에 수출하고 있는 아르헨티나도 상황은 마찬가지. 지난해 최악의 가뭄으로 흉작 위기에 놓였다. 가뭄은 수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팜파스에서 수확한 곡물의 대부분을 수송하는 파라나강의 수위가 낮아진 데다 아르헨티나 농산물 수출의 80%를 소화하는 산타페주 로사리오 항구의 수심도 낮아져 운반량이 제한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코로나19 봉쇄로 파종 시기를 놓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 내 곡물 생산량의 20% 이상을 책임지고 있는 지린성, 랴오닝성, 헤이룽장성 등 동북 3성의 봉쇄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3~4월에 쌀·옥수수 등의 파종을 시작해야 하는데, 비료나 종자 등 농자재가 유통되지 않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곡물 자급률은 2021년 기준 19.3%다. 곡물 자급률 관련 국제 통계가 작성된 2000년만 해도 우리나라의 곡물 자급률은 30.9%였지만 20년 새 11.6%포인트나 떨어졌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곡물 중 80% 이상을 해외에서 수입할 정도로 대외 의존도가 커졌다는 것이다.

곡물만 비상이 들어온 것이 아니다. 전 세계 팜유 공급의 60%를 담당하는 인도네시아가 28일부터 수출을 금지하면서 여타 식용유 가격도 뛰고 있다.

기름야자 열매를 압착해 짜낸 팜유 원유를 정제·표백·탈취하면 RBD 팜유가 되고, 분획 공정을 거치면 액체 부분인 팜올레인과 고체 부분인 팜스테아린으로 분리된다. 팜올레인은 식용유에 사용되고, 팜스테아린은 비누 등을 만드는데 쓰인다.

인도네시아는 당초 팜올레인에 한해 수출을 중단하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팜유 원유와 RBD 팜유까지 모두 수출을 중단, 국제시장을 충격에 빠트리고 있다. 인도네시아 당국은 해군 함정과 병력을 수출항에 배치해 팜유 선적과 출항을 막고 있다.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물가 상승에 흔들리는 민심을 잡기 위해 팜유 수출 금지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볶거나 튀긴 음식을 선호하는 인도네시아에서 식용유 가격은 민심과 직결되는 품목이다.

우리나라는 인도네시아산 팜유 수입 의존도가 높아 식용유 등의 가격 인상 압박이 클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팜유 수입량 6만2192톤 가운데 인도네시아 수입량이 3만5283톤으로 전체의 56.7%에 달한다. 말레이시아 수입량은 2만6865톤으로 43.2%다.

개발도상국은 값비싼 콩기름이나 해바라기씨유, 카놀라유를 대신할 수 있는 팜유의 수입 의존도가 높다. 실제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는 수입산 팜유의 80%를 인도네시아에 의존한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나타나는 식량 보호주의에 더해 세계 곡창지대의 흉작과 인도네시아의 팜유 수출 금지가 식탁에 물가 공포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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