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된 유격대들, 평양發 연락 닿는데 1년 걸리고
고립된 유격대들, 평양發 연락 닿는데 1년 걸리고
  • 유진
  • 승인 2018.0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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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빨치산을 영화화한 정지영 감독의 1990년작 '남부군'. 주인공 이태(안성기 분)는 1948년 서울신문-합동통신 기자였다가 서울이 북한군에 점령당하자 조선중앙통신에 흡수된다. 전라도 지역의 종군기자로 특파됐다가 퍠퇴하는 유격대를 따라 산으로 들어간 '어쩌다 빨치산'이었다. 주인공 이태의 실존 소설을 그화한 이 영화는 빨치산의 막장을 리얼하게 그려낸 것으로 평가됐다.
지리산빨치산을 영화화한 정지영 감독의 1990년작 '남부군'. 주인공 이태(안성기 분)는 1948년 서울신문-합동통신 기자였다가 서울이 북한군에 점령당하자 조선중앙통신에 흡수된다. 전라도 지역의 종군기자로 특파됐다가 퍠퇴하는 유격대를 따라 산으로 들어간 '어쩌다 빨치산'이었다. 주인공 이태의 실존 소설을 그화한 이 영화는 빨치산의 막장을 리얼하게 그려낸 것으로 평가됐다.
<24> 김일성의 오판··· 전쟁 나면 南에서 호응?

◇성과 못 낸 지하당 위주 조직 개편

이러한 가운데 김일성은 1951년 8월 31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를 열고 정치위원회 결정서 제94호 "미(未)해방 지구에 있어서의 우리당 사업과 조직에 대하여"를 채택했다. 이어 결정서 집행차원에서 당 활동과 유격대활동을 분리시켜 각 도당 체계를 5개의 지구당 체계로 개편하였다.

영화 남부군 포스터
영화 남부군 포스터

당시 채택된 결정서에는 6.25전쟁 전에는 당 조직이 투쟁을 잘 했으나 전쟁이 터진 이후 북한지도부는 대중을 동원한 폭동이나 빨치산 투쟁을 통해 인민군의 작전을 지원할 것으로 믿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 지적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김일성과 북한지도부는 전쟁을 일으키면 남쪽에서 수십만이 폭동을 일으킬 것이라는 남로당 박헌영의 말을 믿고 전쟁을 일으켰는데 막상 전쟁을 일으키고 보니 남쪽에서는 거기에 호응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김일성과 북한지도부는 옳았는데 남한 내 당 조직들이 잘못해서 전쟁에서 밀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지하당 사업을 일층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종전의 행정구역에 따른 조직체계를 일단 보류하고 잠정적으로 남한 전역을 5개 지구로 나누었다.

새로 편성된 제1지구당에는 서울, 경기지역을 포함시키고 제2지구당에는 울진(당시에는 울진이 강원도였음)을 제외한 남강원도 전 지역, 제3지구당에는 논산을 제외한 충청남북도 전 지역을 포함시켰다. 그리고 경상북도와 강원도 울진, 낙동강 동쪽 경남 밀양, 창녕, 양산과 울산, 동래, 부산지역을 포괄하는 제4지구당을 조직하고 제5지구당은 낙동강 서쪽의 경남지역과 전남북 전 지역 및 제주도와 충남 논산 지역을 관할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조직된 각 지구당 조직위원회가 해당 지역의 간부인사는 물론 지하당 조직들을 수습 재건하고 유격지대를 지도하는 등 지구당 관할 지역의 모든 당 활동을 지도하도록 하였다.

영화 남부군의 한 장면
영화 남부군의 한 장면

◇연락 수단 없어 중앙당 결정 전달되는데 1년 걸려

그러나 노동당 정치위원회 결정은 효과적인 연락수단이 없어 남한의 각 지역 산악지대에 산재되어 있던 유격부대들에 제때에 전달되지 못해 1952년 중반에 가서야 실제적인 조치들이 취해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노동당과 유격대를 지대 단위로 일원화했던 지휘 및 지도체계가 1952년 중반에 이르러 지구당 지도체제로 개편되었다.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중산관광단지 내에 있는 빨치산토벌전시관 내부의 모형 동굴.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중산관광단지 내에 있는 빨치산토벌전시관 내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위원회 결정은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이 많았기 때문에 그것을 집행하는 과정에 여러 가지 변화가 불가피하였다. 서울과 경기지역을 포괄하는 제1지구당 조직위원회는 김점권을 위원장으로, 한창근과 박원회를 부위원장으로 북한지역인 황해도 봉산에 조직되었다가 1951년 10월 말 개성으로 이동하였다.

1지구당에서는 서울지역에 공작원을 침투시켜 지하당조직을 재건하려 했으나 많은 인적·물적 피해만 내고 성과를 내지 못하자 업무를 중앙당 연락부에 넘겨주고 1952년 4월 경 해체되고 말았다.

빨치산토벌전시관의 모형동굴.
빨치산토벌전시관의 모형동굴.

강원도를 담당하는 제2지구당 조직위원회 역시 북한지역인 강원도 회양군에 창설되었다가 남한지역인 강원도 삼척으로 이동하려 하였으나 실패한 후, 제1지구당과 마찬가지로 1952년 5월에 지구당의 업무를 연락부에 넘겨주고 해체되었다.

좌익에 의한 전주형무소 학살 관련 사진. 출처=진실화해위원회 2009년 상반기 조사보고서

◇각 지구당, 성과내지 못하고 거의 해체

충남북 지역을 담당하는 제3지구당 조직위원회는 연락이 늦어 1952년 5월에 이르러서야 구성되었다. 당시 북한은 6.25 당시 충북 청주시당 위원장이었던 신장식을 제3지구당 조직위원회 성원으로 임명한 다음 속리산에서 활동하고 있던 충남북도당 간부들에게 파견해 정치위원회 결정을 전달하도록 해 제3지구당으로 조직을 개편할 수 있었다.

이강천 감독의 1955년 작 영화 ‘피아골’. 이 영화도 지리산 빨치산을 다뤘다.
이강천 감독의 1955년 작 영화 ‘피아골’. 이 영화도 지리산 빨치산을 다뤘다.

경상북도와 강원도 울진, 낙동강 동쪽의 경남 및 부산지역을 포괄하는 제4지구당 조직위원회는 중앙당에서 조직위원장으로 임명해 파견한 이구형이 1952년 6월 만들었다. 제5지구당 조직위원회 역시 1952년 10월 지리산에서 조직개편 회의를 갖고 이현상을 조직위원장으로, 박영발(전남도당 위원장)을 부위원장으로 하여 뒤늦게 출범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노동당 지도부에서 기대했던 것과 달리 이미 남한 내 유격대들이 전멸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지구당으로 개편하더라도 별 효과가 없었다. <계속>

yj@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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