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의 변화' 환상을 믿는 얼치기 지식인들
'北의 변화' 환상을 믿는 얼치기 지식인들
  • 서명구 박사
  • 승인 2018.06.0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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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작심하고 추진하는 대북정책 드라이브가 한반도와 세계를 달구고 있다. 특히 남북한, 한미, 북중간에 개최되었고 곧 미북 사이에 열릴 정상회담의 ‘리얼리티 쇼’는 찬란하지만 어지러운 홀로그램을 빚어내고 있다.

일반 국민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많은 정치인, 지식인들마저 북핵 해결이라는 과제가 갖고 있는 현실적 의미와 전략적 선택의 중요성은 망각한 채 눈앞에서 펼쳐지는 거대한 스펙터클에 정신을 잃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2018년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국제정치적 흥행의 밑바탕에는 북한이 변했다는 주장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의 소리(VOA)에 의하면,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 30명은 모두 북한의 비핵화 가능성을 제로라고 보고 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에 대해 절대적 확신을 표명하고 있다. 최근 송영무 국방장관도 한일 국방장관 회담에서 북핵문제는 “사람이 바뀌었기 때문에” 과거와는 다르다고 주장한 바 있다.

◇객관 증거, 이론토대도 없이 '北 변했다'는 文 정부

종래 대북 유화론자들은 북한이 변했기 때문이 아니라, 교류가 증대되면 저들의 행동이 변할 것이라는 가설을 토대로 햇볕정책을 추진했다. 물론 이러한 기능주의 이론이 적지 않은 문제점과 맹점을 안고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학문적 이론임에는 틀림없다. 반면에 이 정부는 아무런 객관적인 증거나 이론적 토대도 없이 무조건 북한이 변했다는 단정을 갖고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문 정부의 터무니없는 착각에서 비롯된 국제정치적 이벤트들이 많은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자아내는 거대한 환상이다. 한 논자는 신냉전 시대의 통념을 깨는 한반도 평화체제 건설이 장대한 의식(儀式)을 동반하여 스펙터클의 정치가 펼쳐지고 있다고 단정하면서 이는 장기 지속적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윤평중, 5월 18일자 조선일보).

또 다른 논자는 트럼프의 한반도에서 적극적이고 파격적인 관여의 승부수는 비핵화를 넘어서는 담대한 접근으로까지 나아갈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장훈, 5월 18일 중앙일보).

논자들은 한 걸음 나아가, 국민의 지지를 업고 역사를 바꾸는 이러한 스펙터클의 정치에 눈 닫고 귀 막는 것은 현실 부정의 몽매주의에 불과하다고 자못 엄숙하게 꾸짖기도 하였다. 특히 이른바 보수 진영과 야당을 향해, 60-70년대식 반공 테제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한반도 그레이트 게임의 기본구조에 대해 무지하다고 매도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냉전체제 해빙의 흐름은 부인하기 어려운 압도적 사실이라고 소리 높여 강변하고 있지만, 문제는 그들 역시 그 근거를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신냉전 시대’라는 용어가 무엇을 지칭하는지 불분명하다. 또한 문 대통령이 북한과 한반도 주변 국가들의 역동적 변화를 한 줄로 꿰는데 성공했다고 주장하는데, 문 대통령이 어떤 방향에서 꿰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디를 지향하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이들은 북한은 장마당을 되돌릴 수 없고, 북한 주민을 잘살게 하려면 개혁개방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북한은 그동안 북한주민을 잘살게 하려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北의 개혁개방, 일반 주민은 상관 없어

북한이 원하는 것은 저들 체제의 유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폭동이 나지 않을 정도서 경제가 굴러가는 것이고, 설사 개혁개방을 하더라도 이는 일반 북한주민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다.

기껏 내놓는 논리가 한국이 변했다는 것이다. 즉 한국은 더 이상 소국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글로벌 위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명한 평화연구가 이리에 아키라(IRIE Akira) 하바드대 명예교수가 지적한 대로, 경제적 번영이 평화를 보장한다는 것은 1920년대 국제정치사가 말해주는 것처럼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다. 경제가 국가 안위를 결정한다는 것은 경험적으로나 이론적으로 맞지 않는 것이다.

촛불 시대를 이끈 한국시민의 정치 효능감이 한반도 역사를 새로이 쓰려는 역사 효능감과 결합되었다는 주장 역시 마찬가지다. 월터 리프만(Walter Lippman)이 명저 <여론>에서 지적한 대로, 근대 시민들은 전쟁이나 평화문제에 대해서 실제로는 거의 예비지식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프로파간다와 편견에 쌓여 세상을 본다는 것이 상식에 가깝다.

시간은 자유와 인권의 편이라는 주장, 그리고 100년 단위 시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 역시 마찬가지다. 장기적 추세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아무런 객관성도 담보할 수 없는 역사철학 혹은 정치신학의 범주를 넘어설 수 없는 주장을 근거라고 내세우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자의적인 미래를 오늘에 끌어들여 목전의 현실을 못 보고 남에게도 이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들이야말로 사실에 토대를 둔 것이라기보다는, 권력이 만들어낸 신기루의 유사현실로부터 낙오될 수 있다는 초조함과 두려움이 만들어낸 적반하장 논리다. 한 논자는 “낡은 보수의 흘러간 노래, <방기의 두려움>”이라고 매도했지만, 수신처 불명의 이 말은 발신처로 환송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문 정부의 터무니없는 착각이 국민과 국가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착각은 민족, 평화라는 사회적 통념과 맞물려 거대한 환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쓸모있는 바보들’이 만들어낸 신기루, 그리고 행여 남에게 뒤질 세라 쫓아가며 나발을 부는 지식인들의 행렬, 실로 ‘바보들의 행진’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 이 시대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이다.

◇서명구 박사는?

-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 성신여대 박사

- 대통령 정책조사비서관, 국회의장 기획비서관 역임

- 現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강사

smg2018@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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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2018-06-04 11:31:13
김정은 체제에 살고 있는 북한 주민은 노예상태에 있습니다. 그래서 한반도문제는 이들을 해방하는 '21세기 노예해방전쟁'이라는데 포인트를 맞추어야 합니다. 이런 본질을 비켜나는 그 어떤 논리와 수사도 모두 요설입니다. 각성한 지식인들이라도 이를 직시하고 노예해방을 위해 뚜벅뚜벅 나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