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학교


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해마다 어김없이 늘어가는 나이
너무 쉬운 더하기는 그만두고
나무처럼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늘 푸른 나무 사이를 걷다가
문득 가지 하나가 어깨를 건드릴 때
가을이 슬쩍 노란 손을 얹어 놓을 때
사랑한다! 는 그의 목소리가 심장에 꽂힐 때
오래된 사원 뒤뜰에서
웃어요! 하며 숲을 배경으로 순간을 새기고 있을 때
나무는 나이를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도 어른이며
아직 어려도 그대로 푸르른 희망
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그냥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무엇보다 내년에 더욱 울창해지기로 했다

문정희(1947~ )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나무의 나이테는 인류와 자연사를 기록하는 지구의 사관이다. 나이테의 넓거나 좁은 간격과 패턴은 모스부호와 같다. 넓은 나이테는 나무가 행복했을 때의 기록이다. 반면에 한파나 가뭄 등 이상기후로 성장이 방해받으면 나이테는 좁아진다. 불행이 극심하면 나무는 나이테를 아예 만들지 않는다. 나무의 나이테는 인류의 흥망사를 기록한다. 좋은 날씨와 함께 꽃길을 걷던 시기, 한파와 가뭄이 닥치고 역병이 돌았던 시기 등 인류의 연대기를 나이테는 정확히 증명한다.

모든 나무는 각자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우리는 나무의 나이테를 헤아려보면서 그 말을 잘 들어야 한다. 밀밀하거나 조밀하거나 느슨한 나이테의 이야기에 인류의 운명과 미래가 있다. 나무는 모든 걸 다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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