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문재인 정부가 MSCI 선진국지수 편입, 글로벌채권지수(WGBI) 편입,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동반자협정(CPTTP) 가입 등을 잇따라 추진하면서 생색만 낸 채 숙제를 차기 정부로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8일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연합
임기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문재인 정부가 MSCI 선진국지수 편입, 글로벌채권지수(WGBI) 편입,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동반자협정(CPTTP) 가입 등을 잇따라 추진하면서 생색만 낸 채 숙제를 차기 정부로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8일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연합

MSCI지수는 미국의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사가 작성해 발표하는 세계적인 주가지수로 글로벌 펀드의 투자 기준이 되는 벤치마크 지표다. 현재 MSCI지수를 추종하는 글로벌 펀드 규모만 해도 12조5000억 달러에 달하며, 미국계 펀드의 95%가 MSCI지수를 기준 삼아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MSCI지수는 선진국지수, 신흥시장지수, 프런티어시장지수로 구분된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신흥시장지수에 포함돼 있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지수에 편입되면 국내 증시에 18조원에서 61조원 사이의 ‘패시브 자금’이 유입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펀드매니저가 종목, 테마, 마켓 타이밍을 선정해 투자하는 펀드의 ‘액티브 자금’과 달리 시장 흐름에 맡기는 펀드에 투자하는 것이 바로 패시브 자금이다. 이 같은 규모의 패시브 자금이 국내 증시에 유입되면 코스피 4000시대를 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2일 미국 뉴욕에서 MSCI 측을 만나 선진국지수 편입을 타진했다. 지난 2008년 첫 도전 이후 4번째다. 하지만 ‘공짜점심’은 없는 법이다. MSCI 측은 외환시장 자유화, 공매도 전면 재개, 외국인투자등록제 폐지 등을 요구하고 있다.

홍 부총리는 선진국지수 편입을 위한 제도 개선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새 정부의 경제팀은 신중한 입장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외환시장 선진화에 대한 화두는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국내 외환시장이 그것을 감당해낼 수 있느냐의 우려 때문에 완급조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원화가치가 급락하는 상황에서 MSCI 선진국지수 편입을 위한 제도 개선을 거론한 것은 엇박자이자 위기 의식의 결여로 비칠 수 있다. 공매도 전면 재개는 개미투자자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특히 MSCI 측의 과도한 요구로 오래 중단됐던 협의 재개를 성과인 양 포장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글로벌국채지수(WGBI) 편입 추진도 마찬가지. 홍 부총리는 "한국은 경제 규모상 세계 10대 강국으로서 WGBI에 가입할 여건이 충분히 조성됐다"며 "채권시장 발전이나 외화자금 유출입 상황을 고려할 때 WGBI 편입이 굉장히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WGBI는 파이낸셜타임스 스톡익스체인지(FTSE) 러셀그룹이 관리하는 지수다. 전 세계 금융기관이 국채를 사들일 때 지표로 삼는 지수다. 추종 자금은 지난달 말 기준 2조4283억 달러에 달한다. 미국, 일본,영국, 독일 등 23개국의 국채를 아우른다. 중국도 2020년 편입됐다.

지난해 기준으로 세계 국내총생산(GDP) 10위권 국가 가운데 WGBI에 들어가지 않은 나라는 10위인 한국과 6위인 인도 뿐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9년 편입을 추진했다가 불발에 그친 전례가 있다. 이번이 재도전이다.

우리나라가 WGBI에 가입하는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세금 제도다. 이전 WGBI 편입에 실패한 것도 세제 때문이었다. 당시 러셀그룹은 외국인 투자자의 국채 투자에 대한 세금 경감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WGBI 가입을 위해 세제 개편을 추진했다가 외국인 투자자와 국내 투자자 간 과세 형평성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 역풍을 맞을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타이밍도 문제다. 치솟는 물가와 이에 따른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의 긴축 속도전으로 국내 채권시장은 살얼음판을 걷는 중이다.

한마디로 WGBI 편입은 외국인 투자자의 국채 투자를 늘릴 유인이지만 지금과 같은 시기에는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다.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이 급격히 들어오고 빠져나가면서 시장 변동성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동반자협정(CPTTP) 가입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문재인 정부가 공을 다음 정부에 넘긴 대표적 사례다. 모든 자유무역협정(FTA)이 그렇듯 CPTPP 역시 내수 중심의 산업에는 피해가 불가피하다. 그중에서도 농수축산업에 대한 악영향이 크다. CPTPP의 평균 관세 철폐율이 기존 FTA 평균인 73.1%를 크게 웃도는 96.3%에 달하는 데다 호주·칠레·페루 등 회원국 다수가 농수축산 강국인 탓이다. 향후 중국의 가입이 확정되면 피해액은 연간 조단위로 치솟을 가능성도 있다. 문 정부가 생색만 내고 새 정부에 숙제를 떠넘겼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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