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는 5·16을 낳고, 5·18은 6·15를 낳고(下)
6·25는 5·16을 낳고, 5·18은 6·15를 낳고(下)
  • 최성재
  • 승인 2018.06.0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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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빈국의 경이로운 반전

6·25의 피해가 가장 컸던 한국이 제일 놀라웠다. 일제는 북한 지역을 공업지대로 만들고 남한 지역을 농업지대로 만들었지만, 6·25동란이 끝난 후 30년 만에 완전히 역전되어 한국이 공업국가로 거듭나고 북한은 농업과 군수산업밖에 없는 저주의 땅으로 변했다.

다시 20년이 지나자, 미국의 잉여 농산물로 주린 배를 채우고 아령으로 근육을 키우던 한국이 떨치고 일어나 인구 3천만 이상의 국가 중 세계10대 선진부국으로 탈바꿈했지만, 북한은 아프리카의 최빈국보다 가난하고 스탈린 치하의 소련 인민보다 자유와 인권을 모르는 생지옥으로 변했다.

결정적 계기가 역설적으로 6·25였다. 대역전극의 감독과 주연은 6·25의 피 흘림을 통해 국가의 중추로 거듭난 군인들이었다. 그들은 1개 대대만 풀어도 전국을 장악할 수 있는 막강한 물리력을 가졌을 뿐 아니라 문맹이 70%인 나라에서 전원(全員)이 글을 읽을 수 있었고 애국심이 넘쳤고 장교는 외교부보다 미국 유학을 더 많이 다녀와서 서양의 합리주의와 민주적 의사결정을 체득했지만, 가난이 몸서리쳐졌다.

문중의 족보가 이어주는 혈연의 조직밖에 모르던 나라에서 분대, 소대, 중대, 대대, 연대, 여단, 사단, 군단, 군으로 이어지는 60만의 조직을 알았다. 조직 생활과 조직운영을 통하여 3천만을 하나로 묶을 줄 알았다. 그들은 이승만으로부터 민주주의를 배운 4·19세대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을 뿐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알았다.

더군다나 4·19에는 두 세력 자유민주와 인민민주가 기묘하게 뒤섞여 있었는데, 대한민국의 최대 권력집단은 민주당의 무능력과 파벌 싸움 탓에 바야흐로 공산주의에게 접수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은인자중하던 군인들이 1961년 5월 16일 한강을 건넜다. 무혈 군사혁명이었다. 저항세력은 없었다. 몇 명이 총상을 입었을 뿐, 한 명도 안 죽었다. 한국판 명예혁명(a Korean Glorious Revolution)이었다.

“올 것이 왔구나!”

박정희는 한때 공산당에 가담한 전력 때문에 생명만 간신히 건졌다. 6·25 당시에는 군인이 아니라 육군 정보국 정보작전실의 문관이었다. 때마침 어머니 제사 때문에 고향에 내려갔다가 군인도 아니면서 총알이 쏟아지는 곳으로 서울로 올라왔다. 덕분에 그는 다시 군인이 될 수 있었다.

6·25가 아니었으면, 박정희는 다시는 군복을 입을 수 없었을 것이다. 군사혁명 후 박정희는 사상이 통일되고 미군이 주둔하는 한 전쟁이 없다고 보고, 과감하게 경제개발로 방향을 틀었다. 경제가 발전하면 군사력은 단독으로도 얼마든지 북한을 이길 수 있다고 보았다. 실지로 그는 수출입국으로 경제를 눈부시게 발전시킨 후에는 중화학공업을 일으켜 경제자립과 군사자주의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노렸다.

그가 죽을 당시에는 이미 경제력은 북한을 압도했고 군사력도 북한에 1:1로도 밀리지 않았다. 미사일도 세계 7번째로 개발하고 핵무기 개발에도 뛰어들었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도 박차를 가했다.

박정희의 최대 정적 김일성은 권력과 가문의 영광에만 집착하느라 경제보다 항상 군사를 우선시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스탈린과 모택동이 걸었던 대실패의 길을 똑같이 걸었다. 거짓과 공포와 폭력으로 2천만 한민족을 생존본능 외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는 인간 앵무새와 인간 벌레와 인간 톱니바퀴로 개조했다.

◇박정희가 가장 우려하던 일

박정희가 가장 우려하던 일이 그의 사후에 발생했다. 현존하는 악의 배꼽 북한 공산당의 남침을 잊지 않고 제2 남침을 막으려면 군사력과 경제력만으로는 안 된다.

월남 패망이 좋은 반면교사이다. 반공정신이 투철해야 한다. 여기에는 여야가 따로 없어야 한다. 공산주의에 대한 환상을 품으면, 공산독재를 제대로 보지 못하면, 북한을 압도하는 경제력도 주한미군과, 월남에서 미군보다 잘 싸웠던 국군을 합한 군사력도 맥없이 무너진다.

1980년 5월 18일 광주사태는 반미와 반독재와 친북의 분수령이 되었다. 그 이전에는 반독재는 있었지만, 반미와 친북은 없었다. 반공을 국시로 삼는 박정희의 혁명공약 제1조는 철저히 지켜졌다.

김대중도 빨갱이로 지목되는 걸 가장 두려워했다. 여야가 아무리 싸우더라도 안보문제에서는 하나로 뭉쳤다.

그것이 광주사태로 급격히 와해되었다. 박정희 시대에 지하에 숨어 있던 이들이 일제히 민주와 민족과 평화와 생명의 깃발을 들고 광장으로 나왔다. 대학은 해방구가 되었다. ‘광주민주화 운동’을 내세우는 대학생과 넥타이 부대에게 전두환은 최루탄만 쏘았을 뿐 사상적으로 전혀 대응하지 못했다. 그는 광주사태의 원흉으로 지목받았다. 미국은 방조 세력으로 매도되었다.

◇6·25의 기억을 지워 버린 5·18의 절대권력

바야흐로 반공은 독재의 가면으로, 분단의 최대 걸림돌로 받아들여졌다.

광주는 신성불가침의 민주성지가 되었다. 누구든 그 앞에서는 머리를 조아리고 가슴을 쥐어뜯고 재를 들어 스스로 머리에 뿌려야 한다.

학생과 민간인이 어떻게 38개의 무기고를 순식간에 접수하여 중무장할 수 있었는지, 왜 군인의 총인 M16보다 예비군 총인 카빈에 희생된 사람이 더 많은지, 등등에 대해서 의문을 품는 순간, 사방에서 날아오는 돌에 맞아 개죽음을 당한다. 너무도 우습게도, 가장 악랄한 독재체제의 북한 고위층도 광주에 가면 옷깃을 여미고 전두환을 성토한다.

탈북자단체 자유북한군인연합(대표 임천용)은 북한이 광주에 개입했다고 주장한다. 예비역 대령 지만원은 <<솔로몬 앞에 선 5·18>>에서 그들의 주장만이 아니라 2005년에 공개된 수십만 페이지의 5·18수사록을 샅샅이 연구하고 북한의 영화와 책을 뒤져서 북한이 5·18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추론한다. 어떤 비판도 허용하지 않는 성역에 작은 돌을 던졌다.

북한군 개입과 무관하게 5·18 세력은 만장일치로 6·15세력이 됨으로써, 6·15의 후순위 당사자와 그 일방적 물주로 전락함으로써 자의든 타의든 김정일이 주창하는 선군정치의 트로이 목마 역할을 담당하게 이르렀다.

이제는 너무 깊숙이 들어와 발을 뺄 수가 없다. 김영환이나 강길모처럼 386운동권의 ‘김일성 만세’ 과거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순간, 구제불능 미치광이로, 민족 반역자로 매도된다. 북한과 한국의 친북좌파로부터 동시에 공격 받거나 메아리 없고 그림자 없는 존재가 된다.

두 악마적 외세를 등에 업은 6·25 남침으로 300만을 학살한 북한 김일성의 원죄는 가물가물 어릴 적 화상인 양 아련하게 잊히고, 거의 동시에 중무장한 민간인과 군인의 싸움에서 군경과 민간인 합쳐서 200여명 희생된 5·18 광주사태는 바로 어제 잘린 팔다리에서 지금도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듯 생생하니, 전두환(최초 발포 명령자가 누구인지는 아직도 미궁), 나아가 대한민국의 원죄로 자리매김했다.

누구든 광주의 피 묻은 깃발을 흔들면 학계도, 문화계도, 정치계도 일제히 숙연해져서 대신 참회하고 대한민국 50년 현대사를 성토하는 붉은 양탄자를 깔았다. ‘광주민주화 운동’에 대해서는 털끝만한 의심도, 지극히 당연한 사실관계 확인도 신성모독으로 여겨졌다.

그것을 객관화하려는 어떤 시도도 바로 냉전적 수구적 사대주의적 반민족적 독재향수적 구제불능으로 매도되었다. 전두환과 광주사태 진압 공수단에게는 오직 저주와 분노와 증오와 적대감과 전쟁이 있을 뿐이었다. 북한 주민이 김일성 동상과 김일성 초상에 바치는 절대적인 충성과 흡사했다.

6·25의 핏속에서 5·16이 탄생했듯이 5·18의 붉은 양탄자 위에서 6·15 남북공동선언이 등극했다. 그 후 남북관계의 주도권은 경제력과 민주화와 군사력과 국제위상과 상관없이 북한으로 넘어갔다.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이나 민노당(현 정의당)과 바른미래당은 100%,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도 90% 6·15를 유일한 현실적 대안으로 긍정한다.

악을 선과 같은 위상으로 끌어올려, 6·15를 긍정한다. 결과적으로 막무가내 악(惡)이 다소곳 선(善)의 주인 행세를 하도록 멍석을 깔아 준 6·15를 긍정한다. 6·25는 주범(主犯)도 종범(從犯)도 빠진, 하루 빨리 잊어야 할 아픈 상처, 그냥 민족의 비극, 5·16은 군사 독재, 5·18은 민주, 6·15는 민족화해, 이런 공식이 황소의 코뚜레와 고삐처럼 20세기 후반 세계적 경이(驚異) 대한민국의 코를 꿰고 몸을 옭아매고 있다.

자연히 나치의 유태인 학살보다 극악한 북한인권에 대해서는 6·15 정신에 입각하여 한국인은 그저 먼 산을 쳐다보거나 북한인권운동에 노골적으로 반대한다. 이제 판문점선언에 따라 대북 확성기도 철수되었고, 대북 전단도 표현의 자유의 범위를 벗어난 행위로, 민족화해를 시기하고 질투하고 저주하는 반민족적 행위로 금지되었다.

반면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이후에야 드러난 물자 포함 5억 달러로, 김대중이 김정일에게 갖다 바친 5억 달러(드러난 것만)로 북한과 한국의 햇볕파가 길길이 뛰며 부정하던 핵무기를 개발해도 천하태평이다. 전용되었다는 증거가 없단다. 민족의 핵이라며 엷은 장지문 뒤에서 히죽히죽 자랑스러워한다.

◇김일성 공산왕조에게 면죄부를 준 6·15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은 이제 수확하는 일만 남았다. 대한민국은 스스로 사상적으로 무너졌다. 독재를 미워한다며 독재의 독재를 찬양하거나 방조함으로써 스스로 노예의 길을 걷고 있다.

김정은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유훈을 내세워, 한반도의 비핵화를 내세워, 미군의 전술핵무기에 사라진 마당(1992)에 미국의 핵우산(주일駐日미군의 전술핵)에 대응하는 북한의 핵개발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하는 지렛대로 사용하는 것으로써, 1994년 이래 중국과 러시아의 ‘못된 시누이 싸움을 말리는 척하는 음흉한 두 시어미’ 역할로, 중국과 러시아의 보디체크(body check) 방조로, 허둥지둥 갈팡질팡 어수룩한 세 바보 한국과 미국과 일본을 낄낄낄 농락하면서, 사실상(de facto) 북한 핵무기의 힘으로써, 트럼프와 당당히 싱가포르에서 핵보유국의 정상끼리 회담장에 마주앉기에 이르렀다.

김정은으로선 잃을 게 하나도 없고 얻을 것만 곳곳에서 북한의 미녀 응원단처럼 방글방글 웃는 꽃놀이패를 만지작거리기에 이르렀다.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을 접수하기 서너 보 직전이다. 어쩌면 일보 직전인지도 모른다.

트럼프: 한국처럼 잘살게 해 줄 수 있다. (대대적인 투자로, 단, 한국의 돈으로!)

적이 오기 전에 이미 스스로 무너진 당시 세계 최고 부국이자 세계 최대 인구 대국이었던 송나라와 명나라가 만리장성 저 너머에서 몽골과 만주의 말발굽 소리만 듣고도 천자(天子)의 금성철벽 성문을 활짝 열고 옥새를 갖다 바쳤듯이,

이제는 반공이라면 콧방귀도 안 뀌는 나라에서 6·25 때에 비교해서 뒷걸음뿐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세계유일 세습 공산주의에게 수십억 불을 갖다 바치고도 이산가족의 자유왕래는커녕 편지 한 통, 전화 한 통, 전자우편 한 통 자유로운 왕래를 요구하지 못하고 하루 속히 멀리서 진군나팔이 울리기만 기다린다.

◇평화적 적화통일의 악몽

평화통일이, 아마 평화적 적화통일이겠지만, 남북통일이 어느 날 도둑처럼 올 것이라고 대북 전단 한 장 못 날리던 대통령이 앞장서서 북을 둥둥 울렸다. 통일의 북채를 잡았던 중도실용 아침이슬 뻐꾸기는 아마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렇게 나름대로 좌고우면(左顧右眄)했건만, 그는 지금 대한민국의 노숙자도 누리는 자유를 잃고 중국이나 북한의 판검사 못지않게 매우, 아주, 정말, 귀신 곡할 정도로, 창의적인 대한민국 검사와 판사의 처분을 분기탱천 부들부들 떨며 기다리고 있다. 스스로 무얼 잘못했는지도 여태 모르고!

김정은과 문재인에게 눈엣가시, 박근혜는 헌법에 의거하여 대북 전단도 의당히 표현의 자유로 보고 존중했지만, 노예해방 선언의 작은 예비선언으로 보고 존중했지만, 이제 3차 남북선언으로 2300만 북한 동포노예에게 유일한 희망의 끈이었던 그것마저, 대한민국의 헌법을 판문점선언의 하위법으로 끌어내리고, 민족화해와 평화와 자주와 통일의 이름으로 일체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일본군국주의가 패망하기 직전 한민족은 솜이불 속에서 미국의 단파 방송을 들었건만, 북한의 주민은 지금 비날론 이불 속에서 지금 무엇을 들을까. KBS도 평양방송과 비슷해졌는데!

(2011. 6. 30.) (2018. 6. 5.)

csj@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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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루 2018-06-13 22:14:26
정말 큰 일입니다. 선생님처럼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하는 사람들이 지금 이 땅에 얼마나 더 있을까요? 뻔한 결과에 투표하는 것마저 포기해 버린 40여 % 남짓의 국민들이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그게 전혀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더욱 암담하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