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후보 시절인 지난 1월 10일 중소기업 경영·근로환경 개선 방안 모색을 위해 인천 남동구 경우정밀을 방문해 박진수 경우정밀 대표이사(왼쪽)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후보 시절인 지난 1월 10일 중소기업 경영·근로환경 개선 방안 모색을 위해 인천 남동구 경우정밀을 방문해 박진수 경우정밀 대표이사(왼쪽)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

이달 10일 정권교체와 함께 노동정책의 대수술이 예고된 가운데, 새 정부가 주52시간 근로제의 유연화로 대변되는 노동 개혁안을 실제 도입·시행하기까지는 험난한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보완·개선 입법에 대한 사회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여소야대 정국 하에서 법 개정이 야당의 반대에 막힐 가능성이 큰 탓이다. 이에 집권 초기 무리한 추진으로 힘을 빼기보다 중장기적 과제로 도모하는 속도 조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2일 윤석열 정부 1기 내각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시작됐다. 내주까지 국무총리를 비롯한 18개 부처 장관 후보자의 인사 검증이 이어진다. 특히 산업계와 노동계는 오는 4일 예정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 주목하고 있다. 이 후보자의 생각을 통해 새 정부 노동정책의 큰 줄기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경직된 근로환경에 유연성을 더하는 방향으로 노동정책을 대거 손질하겠다고 거듭 강조한 바 있다. 20세기 공장법과 같은 획일적 주52시간제와 임금체계로는 디지털 대전환 시대의 급변하는 산업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윤 당선인이 내놓은 해법은 주52시간제의 유연화다. 노사합의를 전제로 현행 근로기준법상 1~3개월인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을 1년 이내로 확대함으로써 기업상황에 맞춰 다양한 근로 형태를 자율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계획이다. 또한 초과 근로시간을 모아 장기휴가로 사용하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전일제와 시간제를 자유롭게 전환하는 ‘근로전환 신청제’, 연장근로 특례업종 및 특별연장근로제 대상 확대 등도 공약에 포함됐다.

이 정책들은 주52시간제의 부작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산업현장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예컨데 특정 기간에 일감이 몰리는 조선·건설·정보기술(IT)·소프트웨어 등의 업종에선 주52시간제에 발이 묶여 성수기 대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법을 지키면 납기 준수가 어렵고, 납기를 맞추려면 추가 채용으로 인건비가 급증하는 딜레마에 처한 실정이다.

노동자들의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근로시간 감소로 임금이 줄거나 52시간 이상 일해도 기록이 남지 않는 게 그것이다. 지난해 10월 조선업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중소기업중앙회의 조사에서는 주52시간제로 월평균 65만8000원의 임금이 감소했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새 정부의 노동 개혁안을 통해 근로시간 유연화가 이뤄지면 이 같은 부작용들이 개선돼 기업 경영과 노동시장에 활력을 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신규 고용 창출에도 긍정적 효과가 예견된다.

문제는 이들 개혁안의 실현에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국회의석 과반수인 172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의 도움은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가 주52시간제 시행을 주요 치적의 하나로 여기기 때문이다.

지난 1일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절을 맞아 SNS에 올린 글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제 시행으로 노동 분배를 크게 개선했고 일과 생활의 균형에 진전을 이뤘다"며 자화자찬을 이어갔다. 앞서 이낙연 전 국무총리도 지난달 29일 세계한인무역협회가 주최한 ‘세계대표자대회 및 수출상담회’의 기조 강연에서 주52시간제 유연화, 탈원전 폐기 등 윤 당선인의 주요 정책에 우려 섞인 목소리를 냈다.

이 같은 현실을 감안해 새 정부도 집권 초기부터 큰 틀의 변화를 추진하는 대신 점진적 보완으로 노동정책의 방향을 전환하는 모양새다. 실제 인수위원회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괜한 논란을 만들지 않기 위해 주52시간제 개편 계획보다는 유연화 이후에도 노동자 피해가 없도록 제도를 완비하겠다는 메시지를 지속 내보내고 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 후보자 역시 지난 15일 획일적 주52시간제로 인한 일자리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여소야대 상황에서 법 개정이 쉽지 않은 만큼 우선 중요한 것은 (주52시간제) 안착"이라는 원론적 입장만을 밝혔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새 정부는 노동정책 혁신을 위해 일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 전략을 수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연장근로 특례업종 확대처럼 법 개정 없이 대통령 시행령만으로 가능한 제도부터 하나씩 보완해 나가면서 근로시간 유연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우호적 여론 형성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지난 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의 올해 첫 전원회의가 열렸다. 사용자위원인 한국경영자총협회 류기정 전무(왼쪽)와 근로자위원인 이동호 한국노총 사무총장이 대화하고 있다. /연합
지난 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의 올해 첫 전원회의가 열렸다. 사용자위원인 한국경영자총협회 류기정 전무(왼쪽)와 근로자위원인 이동호 한국노총 사무총장이 대화하고 있다. /연합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