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운정의 길 따라...] 12월의 경주 여행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 최부잣집.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 최부잣집.

연일 쌀쌀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와 차디찬 겨울바람에 마음마저 얼어붙은 요즘이다. 그래도 거리에 울려 퍼지는 자선냄비의 종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마음 한 쪽이 군불 지핀 듯 따스하게 데워지는 듯한 느낌이다. 이번 여행은 경주로 떠난다. 떠들썩하지 않고 번잡하지 않은 곳이 좋겠다는 분들이면 가볼 만하다. 첫 목적지는 최부잣집으로 불리는 교동 최씨고택이다.

최씨고택을 이야기하기 전, 먼저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말하자. 프랑스에서 비롯된 이 말은 높은 신분에 뒤따르는 사회적 책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에서 비롯된 말인데, 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한국에서 가장 잘 실천한 가문이 바로 경주 최부잣집이다.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만나다

경주를 찾은 이들이 가장 많이 가는 곳은 바로 대릉원과 첨성대. 이곳에서 발길을 안압지로 돌리지 않고 계림 숲속 뒤편으로 가면 교동이다. 신라 때 학교시설인 국학이 있었던 마을이다. 돌담길과 그 너머로 설핏설핏 보이는 기와지붕이 복잡한 생각을 잊게 해준다.

최부잣집은 이 마을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흔히 ‘9대 진사, 12대 만석꾼’으로 회자되는 집. 부자는 3대를 넘기기 힘들다고 하지만 최부잣집은 3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부를 유지했고, 마지막에는 기부와 독립군 자금으로 모든 재산을 기부함으로써 영원한 부자로 남았다.

최부잣집의 토대는 최국선(1631~1681)으로 거슬러 오른다. 그 역시 처음에는 여느 부자와 마찬가지였다. 당시의 관행대로 8할의 소작료를 받았고, 보릿고개에 양식을 빌려주며 많은 이자를 붙였다. 최국선을 바꾼 건 어느 날 당한 도적떼의 침입이다. 최국선은 이때 많은 충격을 받았다. 도적떼에 소작농과 그 아들들이 끼어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들은 양식 대신, 장리를 빌려 간 증표인 채권 서류들만 가져갔다. 도적이 돌아간 후 주변 사람들은 처벌을 주장했지만, 최국선은 외려 80% 이상 받던 소작료를 50%로 전격 인하한다. 당시로서는 파격적 조치였다. 이후 최부잣집의 나눔과 상생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시작된다.

최부잣집은 왕궁터 월성을 끼고 흐르는 문천 옆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고 있다. 1700년쯤에 지어졌는데, 원래는 아흔아홉 칸이었으나 마지막 최부자인 최준(1884∼1970) 선생이 돌아가시던 해에 사랑채와 별당이 화재로 소실돼 지금은 70여 칸으로 줄었다.

동궁과 월지 야경.
동궁과 월지 야경.

방문객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건 솟을대문이다. 여느 대갓집과는 달리 소박하다. 크게 높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다. 최부잣집은 주변 집들과의 조화를 고려해 솟을대문을 일부러 낮게 지었다고 한다. 집 역시 왼쪽에 자리한 계림 향교보다 2계단 낮게 터를 깎아 내고 지었다.

솟을대문을 지나 발을 들이면 큰 사랑채가 버티고 있다. 지난 2006년 복원한 것이지만 최부잣집의 역사와 연륜을 느끼기에 모자람이 없다. 이 집에서 면암 최익현, 구한말 의병장 신돌석, 의친왕 이강 공 등이 묵었다. 스웨덴의 구스타프 국왕도 인연이 있다. 일제시대 당시 스웨덴의 황태자였던 구스타프 6세는 신혼여행 차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 조선의 명가인 최부잣집에서 묵으며 융숭한 대접을 받고 최준 선생의 인품에 반했다고 한다. 후에 국왕이 된 구스타프는 여성 전용공간이라 둘러보지 못했던 안채의 모습이 궁금해 한국전쟁에 파견한 간호장교들에게 사진을 찍어 오라는 밀명을 내렸다고 한다.

사랑채에서 안채로 가다보면 드넓은 공간에 떡하니 서 있는 목재 곳간을 볼 수 있다. 정면 5칸 측면 2칸 크기로 지어졌는데, 현존하는 목재 곳간 가운데 가장 크다. 쌀 800석을 보관할 수 있다고 한다. 이 곳간은 최부잣집이 실천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다. 최부자는 흉년 때 이 곳간을 열어 쌀을 나눠줌으로써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해 부자로서 사기 쉬운 원성을 듣지 않았다.

최부잣집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배경에는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육훈’이 자리잡고 있다.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을 하지 말라,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말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주변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시집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으라 등 가훈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가르침이다. 실제로 최부잣집의 1년 쌀 생산량이 대략 3천 석쯤이었다는데, 1천 석은 집안에서 쓰고 1천 석은 과객에게 베풀었으며 나머지 1천 석으로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 줘 농민들이 굶주리지 않도록 했다고 전해진다.

그윽한 풍경으로 가득한 겨울 경주

첨성대와 대릉원 주변은 저물 무렵 찾는 게 좋을 듯하다. 경주에서 야경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기 때문이다. 첨성대를 비롯해 대릉원과 여러 고분군, 계림 등이 모여 있다.

오후 6시 무렵이면 조명이 들어오고 사람들은 삼삼오오 첨성대로 향한다. 조명을 받은 첨성대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만큼 화려하다. 첨성대 건너편은 계림.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의 탄생설화가 얽힌 곳이다. 그가 태어날 때 흰 닭이 그 사실을 알렸다 해서 계림이라 불린다.

첨성대에서 계림 방면으로 길을 걷다 서쪽을 바라보면 둥그스름한 곡선의 능이 몇 기 있다. 해 질 무렵 부드러운 고분의 곡선이 뒤편 산의 능선과 어울려 절묘한 풍경을 빚어낸다. 한 걸음을 가면 두 개의 능이 겹치고 두 걸음을 가면 세 개의 능이 포개진다. 가까운 능은 진한 곡선을, 먼 산은 옅은 곡선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곡선 위로, 신라의 땅 위로 장엄하게 번지는 노을... 옛 신라는 아마 이보다 더 황홀한 왕국이었을 것이다.

안압지의 밤 풍경도 분위기 있다. 안압지는 신라의 궁궐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연못. 좁은 연못을 넓은 바다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어느 곳에서도 연못 전체를 조망할 수 없도록 만들어졌다.

그윽한 겨울 운치를 즐기기에는 독락당과 옥산서원이 좋다. 조선시대의 큰 학자인 회재 이언적(晦齋 李彦迪)은 여러 정치공학적인 이유로 벼슬길에서 잠시 벗어나 5년간 머문 집으로 알려져 있다. 깊은 산속도 아닌 그냥 개울 옆인데 마치 심산유곡의 집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겨울의 적요와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독락당은 집 자체가 보물 제413호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독락당에서 가까운 옥산서원은 수백 년 된 굴참나무와 느티나무가 가득한 곳이다. 한석봉과 추사 김정희, 퇴계 이황의 현판이 볼 만하다.

바닷길 따라 즐기는 낭만 드라이브

경주를 하루 이틀로 여행하긴 불가능하다. 남산만 제대로 보려고 해도 족히 일주일은 걸린다. 보문단지에서 문무대왕릉과 감포항을 잇는 코스는 경주 답사 여행 코스로도 손색이 없고, 문무대왕릉에서 감포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따라 바다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어 가족여행 코스로도 괜찮다.

노서동 고분군의 노을.
노서동 고분군의 노을.

추령재를 지나 동해 쪽으로 가다 보면 감은사지다. 완벽한 조형미로 인해 신라탑의 전형으로 불렸던 감은사탑이 있는 곳이다. 감은사탑의 높이는 13.4m. 지금까지 남아 있는 신라탑뿐 아니라 삼층석탑 중에서 가장 크다. 더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는 감은사탑의 완벽한 조형미는 보는 이를 감탄하게 만든다.

감은사지에서 5분을 가면 문무대왕 수중릉이다. 삼국통일을 완수한 문무왕은 자신의 시신을 불 태워 동해바다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재위 시절, 동해에 왜구의 침입이 빈번하자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둘레 약 200m의 대왕바위에 정확히 동서-남북 십자 수로를 내고 중앙에 파인 4평 가량을 해중릉으로 조성했다고 전해진다.

문무대왕릉의 아침 일출은 장관 그 자체다. 거센 파도를 뚫고 문무대왕릉 위로 불쑥 솟아오르는 커다란 햇덩이는 보는 이에게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준다. 해마다 이맘때면 일출을 촬영하기 위해 전국에서 사진작가들이 몰려든다.

이곳에서 감포항을 지나 구룡포에 닿는 31번 국도는 바다의 낭만을 물씬 느낄 수 있는 멋진 드라이브 코스다. 대본, 나정, 전촌 등 크고 작은 해변을 지난다. 이 길은 바다를 따라 포항 구룡포까지 이어지는데 겨울바다의 낭만을 물씬 느낄 수 있다.

◆경주 맛집

먹을거리로는 쌈밥이 유명하다. 쌈밥집은 대능원 동편 골목 후문 쪽에 많다. 구로쌈밥(054-749-0060), 삼포쌈밥(054-749-5776)이 유명하다. 상추 배추 호박 등과 다양한 양념장이 나온다. 감포항 은정횟집(054-744-8600)은 40년 전통을 자랑한다. 근해에서 잡히는 참복을 주로 쓴다.

경주 향토음식 브랜드 별채반 교통쌈밥(054-773-3322)은 경주의 명물이다. 놋그릇에 담아 1인상으로 제공하므로 나홀로 여행자에게도 안성맞춤이다. 교동최씨고택 옆골목의 교리김밥(054-772-5130)은 달걀지단을 듬뿍 넣는다. 명동쫄면(054-743-5310)은 유부를 가득넣은 유부쫄면이 별미다. 황리단길의 ‘진가네 대구갈비’(054-772-1384)의 돼지갈비찜은 매콤한 맛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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