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부른 장성택의 '경제 개혁' 오판
죽음을 부른 장성택의 '경제 개혁' 오판
  • 마이클 리
  • 승인 2018.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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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0월 29일 서울 삼성동 한국무역협회를 방문한 북한 경제시찰단. 의자 가장 왼쪽에 박봉주가 앉아 있고, 사진 중앙에는 장성택이 앉아 있다.

인간을 억압하는 북한의 경제번영은 전체주의 체제를 바꾸지 않고서는(regime change)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현재 북한의 비핵화 협상과정에서 한국과 미국 등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규모 원조를 제공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북한의 김정은 체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진행되는 이런 원조는 잔인한 탄압 체제를 더욱 강화시킬 뿐이다.

체제를 바꾸지 않고서는 아무리 경제원조가 들어가도 밑빠진 물붓기로 돈만 먹지 북한은 번영할 수 없다. 대한민국이 60년대와 70년대에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중시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아래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외부자금이 혈관처럼 창의력과 도전정신을 가진 경제주체들에게 골고루 스며들어갔고 여기서 성과가 나고 다시 재투자되는 방식으로 세계신기록으로 경제기적을 이뤄낼 수 있었다.

북한은 이게 불가능한 나라다. 체제 때문이다. 실제로 2차대전 이후 외국 자금이 투입된 신생국 가운데 대한민국만이 유일하게 성공한 케이스다. 김정은 3대 세습독재체제로는 외부자금이 들어가도 절대로 경제번영을 이룰 수 없다. 김정은 3대 세습독재 체제 때문에 북한은 인권을 탄압하고 핵무기를 개발한다. 그래서 핵만 포기하면 체제를 보장해서 경제번영을 이뤄주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은 실현되기 어려운 발언이다.

북한 내부는 오히려 고강도 제재 때문에 시장경제의 싹이 트고 있다. 국제제재로 고통 받는 이들은 북한 주민이 아니라 김정은 본인과 주변의 소수 지배계층뿐이다.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는 북한의 전체주의적 탄압 체제에 힘을 빼고 있다. 그냥 두면 이 탄압체제는 더욱 더 힘이 빠진다. 이미 2000년과 2007년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에서 경험했지만 북한의 독재체제를 교체하지 않고 대규모 경제 원조가 들어가면 극악한 독재체제는 더욱 힘을 얻고 강화될 뿐이다.

북한에 외부원조가 들어가면 어떻게 악용되는지는 이를 관장하는 ‘북한 노동당 39호실’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시점에(물론 문재인정부는 그 전이라도 원조하고 싶어 안달이지만) 대규모 원조가 거론되는 지금 마이클 리(전 CIA 대북담당관)의 ‘노동당 39호실’ 비밀 파일을 5회로 나누어 전격 공개한다. 이번이 마지막 5회째다. <편집자 주>

2011년 12월 20일 공개된 북한 핵심간부들의 김정일 위원장 참배 장면. 라이벌 관계로 알려진 장성택(뒷줄 맨 왼쪽부터)과 오극렬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 있는 모습도 처음으로 포착됐다.
2011년 12월 20일 공개된 북한 핵심간부들의 김정일 위원장 참배 장면. 라이벌 관계로 알려진 장성택(뒷줄 맨 왼쪽부터)과 오극렬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 있는 모습도 처음으로 포착됐다.

◇수령제 있는 한 北경제개혁 불가능

스위스 은행에 예치되어 있는 39호실 비자금은 베른에 있는 북한대사 이철(본명 이수용)이 1987년부터 2010년 까지 장장 23년간 관리해왔다. 2008년 7월에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아들 김정은에게 권력이양을 서두르고 있을 때, 이철이 2010년에 평양에 돌아와서 스위스 은행의 39호실 비자금을 후계자 김정은에게 인계하는 과정에서, 분산된 비자금관리의 방만성을 수습하는데 상당한 마찰이 있었다.

39호실 비자금 가운데 전에 노동당 작전부를 지휘한 오극렬 계열이 맡은 부분에서는 회수가 되었지만, 중앙당의 장성택 계열이 장악한 부분은 완전 회수가 불가능했다. 자금관리의 전문성뿐만 아니라 김경희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무서운 김정일 시대는 가고 철없는 김정은 통치가 출범하면서 ‘돈 냄새’를 더 맡고 싶어 하는 군부와 노동당 일부에서 장성택의 영향력과 비자금관리 기득권을 시기질투 하면서 칼을 갈고 있었다.

2002년 10월 26일부터 11월 3일까지 8박9일간 18명의 북한 경제시찰단이 남한을 다녀갔다. 그때 시찰단은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 박남기가 단장이었고 개혁성향의 장성택과 화학공업상 박봉주가 끼어있었다.

◇장성택, 수령경제를 민생경제로 이전 추진

남한의 놀라운 경제발전상을 목격한 그들은 개방경제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으나 살기위해 몸을 사리고 있다가 김정일 시대가 가고 나이 어린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하자 서서히 자기들의 꿈을 실현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장성택 처형 후 공개석상에서 장성택을 비판하는 박봉주.
장성택 처형 후 공개석상에서 장성택을 비판하는 박봉주.

그러던 중 장성택이 순진하게 자기의 영향력만 믿고 ‘수령경제’의 비중을 내각중심의 ‘민생경제’로 이전할 것을 염두에 두고, 박봉주를 내각총리에 앉히면서 가시적으로 체제에 도전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소위 ‘연식개혁’을 진행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장성택은 결정적으로 한 가지를 오판했다. 북한에서는 ‘수령 절대주의’와 그를 옹위하는 세력이 존재하는 한 어떠한 형태의 경제개혁도 불가능하며, 경제개혁 그 자체가 체제에 대한 도전인 것을 계산하지 못했던 것이다.

경제개혁은 필연적으로 39호실과 38호실의 비자금으로 조성되는 ‘수령경제’를 잠식하기 때문이다. 내각중심의 경제활동과 외화벌이는 더 활발해지고 39호실과 38호실의 외화벌이는 축소되어야 한다. 장성택이 더 현명하였다면 경제개혁 이전에 체제의 목을 치는 칼을 먼저 뽑았어야 했다. 우리는 그가 북한의 ‘고르바초프’가 되어주기를 기대도 해 보았다. <끝>

 

mlee-cia@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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