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어린이날' 100주년... 그 의미를 되새기다

소파 방정환 선생, 일본유학 시절 현지 어린이문화에 감명
어린 세대들에게 광복의 희망 일깨우는 문화운동 전개
아이들을 '젊은이' '늙은이'와 나란히 존엄한 인격체로 인식

우리나라 ‘어린이날’ 창시자 소파 방정환. 그의 생가 터에 비석이 세워져 있다(현 자유일보가 입주한 서울 광화문 로얄빌딩 옆).
우리나라 ‘어린이날’ 창시자 소파 방정환. 그의 생가 터에 비석이 세워져 있다(현 자유일보가 입주한 서울 광화문 로얄빌딩 옆).

금년은 소파 방정환(方定煥 1899~1931)이 창시한 ‘어린이날’ 100주년이다. 원래 5월 1일이었으나, 노동절이기도 해서 당국의 압박을 받자 1928년 5월 첫째 주 일요일로 변경, 1946년부터 5월 5일이 됐다. 방정환은 만 32년 생애를 통해 대체 불가능한 족적을 남겼다.

그가 주도한 1922년 ‘어린이날 선전문’은 세계 최초의 아동인권선언에 해당한다. 1923년 창간된 방정환의 순수 아동잡지 ‘어린이’, 아동문화운동단체 ‘색동회’ 모두 우리 역사 최초다.

일본 유학 시절 방정환은 현지의 어린이문화에 깊은 감명을 받으며 조선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일본에 유입된 서유럽 동화들이 그의 번안을 통해 동화집 ‘사랑의 선물’(개벽사 1922)로 출간된다. 우리나라 아동문학의 출발이었다. 방정환의 서문으로도 유명한 책이다.

"학대받고 짓밟히고, 차고 어두운 속에서 우리처럼 또 자라는 불쌍한 어린 영혼들을 위하여, 그윽히 동정하고 아끼는 사랑의 첫선물로 나는 이 책을 짰습니다." 방정환이 자신의 호(小波)를 존경하던 일본의 아동문학가 이와야 사자나미(巖谷小波 1870~1933) 이름에서 땄다는 설이 있다.

그의 천도교 이력에 근거해, 최제우 <동경대전> 구절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천도교소년회 창립(1921) 등 각종 활동도 놀랍지만, 그가 처음 만들어 쓴 용어 ‘어린이’의 탄생이 더욱 특기할 만하다.

아이들을 ‘젊은이’ ‘늙은이’ 등과 나란히 존엄한 인격체로 보는 인식이다. 당시로선 획기적인 일이었다. 일본어 ‘코도모’(子供)가 ‘동물의 새끼를 뜻하는 명사+복수형 어미’라면, ‘어린이’는 어감이 좋고 여림 사랑스러움 싱싱함 등을 연상시킨다.

방정환에겐 ‘小波’ 외 수많은 필명이 있다(잔물·잔물결·물망초·몽견초·몽중인·삼산인·북극성·쌍S·목성·은파리·CWP·길동무·운정(雲庭)·파영(波影)·깔깔박사·SP생 등 ). 소수의 필자들이 잡지 지면을 채워야 하는 현실, 검열 회피의 목적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 고등계 경찰관(미와 와사부로)의 인상적인 평가가 전해진다(신동아 1967년 5월호 ‘윤극영의 글’).

"방정환, 흉측한 놈이지만 밉지 않은 데가 있어… 일본사람이었더라면 나 같은 경부 나부랭이한테 불려다닐 위인이 아냐… 일본이라면 든든히 한 자리 잡을 만한 놈인데… 아깝네, 아까워."

1923년 방정환의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봐 주시오. △어린이를 늘 가까이 하사 자주 이야기를 해 주시오.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보드랍게 해주시오. △이발·목욕·의복 같은 것을 때맞춰 하도록 해주시오. △잠자는 것 운동하는 것을 충분히 하게 해주시오. △산보·원족 같은 것을 가끔 가끔 시켜주시오. △어린이를 책망하실 때엔 쉽게 성만 내지 마시고 자세히 타일러 주시오. △어린이들이 서로 모여 즐겁게 놀만한 놀이터와 기관 같은 것을 지어 주시오. △대우주 뇌신경의 말초가 늙은이에게도 젊은이에게도 있지 아니하고 오직 어린이 그들에게만 있는 것을 늘 생각해 주시오.

‘어린이의 발견’은 인류 근대사의 중대한 사건이다. 서구에서 가족이 부부와 직계 가족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어린이’가 새롭게 발견됐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영향도 중요하다.

성경에 따르면, 아이들을 데리고 기도를 요청하러 몰려 온 사람들을 제자들이 나무라자 예수가 말했다.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막지 말라. 하늘나라는 그들의 것이다(마태복음 19:13-14)", "누구든 내이름으로 이런 어린이들 중 하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것이다(마가복음 9:37)".

어린 세대에게 광복의 희망을 일깨우려는 민족·문화 운동으로 출발한 아동문학, 그 시작과 중심에 방정환이 있다. 그리고 약 100년, 세계시장에서 주목받는 그림책 작가들을 배출하게 됐다(백희나·이수지 등). 1990년대 중후반까지 주로 수입했으나 2000년대 들어 사정이 달라졌다. 아동 도서는 국내 도서 가운데 최고의 수출경쟁력을 자랑한다.

K콘텐츠의 세계적 확산 속에 출판 한류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3대 아동문학상의 하나 ‘볼로냐 라가치’상에서 2004년 이래 꾸준히 수상자를 배출해 왔다. 2020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문학상,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수상자도 나온다. 짧은 역사의 놀라운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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