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열
정창열

김정은은 지난 4월 25일 열린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에서 "우리는 격변하는 정치·군사 정세와 앞으로의 위기에 대비해 자위적이며 현대적인 무력 건설의 길로 더 빨리, 더 줄기차게 나갈 것"이라며 핵 무력의 급속한 발전 조치를 언급했다. 이어"우리 핵 무력 기본 사명은 전쟁을 억제함에 있지만, 이 땅에서 우리가 결코 바라지 않는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에까지 우리의 핵이 전쟁 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돼 있을 수는 없다"라고 하면서 "어떤 세력이든 우리 국가의 근본 이익을 침탈하려 든다면 우리 핵 무력은 의외의 자기의 둘째가는 사명을 결단코 결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앞선 김여정과 박정천 등의 핵 위협 담화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지만, 김정은이 직접 핵 무력의 선제 사용 가능성을 공식 표명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 김정은이 2018년 신년사에서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있다는 것은 결코 위협이 아닌 현실임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라고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신경전을 벌인 일이 있지만, 그동안 북한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한반도 침공에 대비한다’라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핵무기 개발과 보유의 정당성을 주장해왔다. 그런데 이번 김정은의 연설에서 1) 핵 무력의 불포기와 함께 2) 군사적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에 따라 핵을 사용할 수도 있음을 밝힌 것이다. 하나씩 짚어본다.

첫째, 김정은은 핵 능력을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다. 북한이 NPT를 탈퇴(1993.3)하자,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는 지난 30년 가까이 북한 경수로 사업 추진 지원·6자회담 진행 등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 왔다. 하지만 이는 북한이 핵 능력을 강화하는 시간만 벌어주었을 뿐, 결국 도로(徒勞)가 되었다. 유엔안보리의 제재도 김정은에게는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한 채, 주민들만 고통을 겪고 있다. 이는 김씨 일가가 핵을 보유하려는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핵 개발이라는 현상에만 접근한 결과이다. 새삼 강조하거니와, 북핵은 북한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려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백두혈통’의 영구집권을 위한 사적 용도이다. 김정은이 핵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본질적 이유이기도 하다.

둘째, ‘근본 이익 침탈’이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국제사회의 제재 등으로 경제 상황이 더욱 악화하여 대규모 주민 소요 및 봉기로 인해 김정은 정권에 위기가 발생할 경우, ‘함께 죽자’라며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까지도 시사하고 있다. 이는 소련과 동구권 국가들이 사회주의를 포기할 때, 김일성이 북한군 간부와 항일혁명투사들을 모아놓고 "남조선과 미국이 조선을 공격해 오면 우리의 힘으로 싸워 이길 수 있겠는가"라고 물어보자, 김정일이 "전쟁에서 지면 이 지구를 깨버리겠다"라고 말해 김일성이 만족했다는 일화와 거의 일치한다. 이른바 동귀어진(同歸於盡) 정책인데, 북한이 핵을 보유하려는 진의가 드러난 것이다.

그동안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완벽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가능성을 전제로 하여 대북정책을 추진해왔고, 여전히 이런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희망사항일 뿐이지 김정은은 비핵화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여기에 김정은의 자의적 결심에 따라 핵을 사용할 위험성까지 전면으로 등장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여, 제로 베이스(Zero Base)에서 이제까지의 북핵 대응 전략을 전면 재검토해서 새로운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역사에 ‘만약(If)’은 없다고 하지만, 김정은이 최근 노골적으로 핵 위협을 고조시키는 상황에서 ‘미국이 북핵 위기 초기에 북폭을 감행했다면 한반도 상황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하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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