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 시인의 저서들.  맨 왼쪽은 2018년 출간된 김지하 산문집. ‘저항시인’을 넘어 ‘생명사상가’의 면모가 담겼다. 가운데는 김지하의 1989년 이후 작품을 모든 시집(2016년 재간). 1994년 출간 당시 절차적 민주주의 실현 이후의 학생운동에 비판적 태도를 보이며 지지자들의 거센 비난에 직면해 있던 시절이다. 오른쪽은 '마지막 시집'이라며 2018년 내놓은 시집 . 2016년 탄핵정국을 거치며 쓰여진 작품들(71편)을 담았다.
김지하 시인의 저서들.  맨 왼쪽은 2018년 출간된 김지하 산문집. ‘저항시인’을 넘어 ‘생명사상가’의 면모가 담겼다. 가운데는 김지하의 1989년 이후 작품을 모든 시집(2016년 재간). 1994년 출간 당시 절차적 민주주의 실현 이후의 학생운동에 비판적 태도를 보이며 지지자들의 거센 비난에 직면해 있던 시절이다. 오른쪽은 '마지막 시집'이라며 2018년 내놓은 시집 . 2016년 탄핵정국을 거치며 쓰여진 작품들(71편)을 담았다.

그제(8일) 김지하 시인이 1년 암투병 끝에 별세했다(1941~2022). ‘저항시인’ ‘반독재 투사’로서의 삶 못지 않게 그의 ‘생명사상가’ 면모가 주목된다. 명복을 비는 명사들의 논평 가운데, 당선인 신분의 윤석열 대통령 개인 페이스북이 눈길을 끈다.

"김지하 시인의 위대함은 체제에 저항하는 참여시인을 넘어 인류 보편적 가치인 자유와 생명의 가치를 위해 사상의 지평을 확대하고 직접 발언한 데 있다." 김 시인이 1991년 ‘연쇄 분신자살’ 정국에서 기고한 칼럼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를 의식한 언급으로 보인다.

"젊은 벗들! 나는 너스레를 좋아하지 않는다. 잘라 말하겠다. 지금 곧 죽음의 찬미를 중지하라"로 시작되는 김 시인의 칼럼(젊은 벗이여,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은 그가 몸담았던 진영에 큰 충격을 줬다. 그러나 그의 통렬한 지적과 그것이 근거한 사상의 울림이 현재·미래엔 더 크다.

그를 진영의 상징으로 여기던 사람들은 격렬히 반발했고 적대적 관계로 돌아섰다. "영육이 합일된 당신들 자신의 신명, 곧 생명을 공경하며 그 생명의 자연스러운 요구에 따라 끈질기고 슬기로운 창조적인 저항행동을 선택하라." 김 시인의 이런 메시지는 ‘변절’로 매도돼 왔다.

박정희 정권 하 고초를 겪은 김 시인이 2012년 대선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것은 지식인의 드문 용기이자 대인배의 풍모였다. 공동체의 미래를 고려한 판단, 이십대 때 이미 맹아를 보인 ‘생명사상’의 연장이었다. 김 시인의 진정한 면모는 근년의 저작에 녹아 있다고 볼 수 있다. 2018년 나온 산문집 ‘우주생명학’은 2014~2016년 원고 모음집이다. 독자적인 생명사상·동학을 기반으로 화엄불교와 기독교 등을 종합해 새 문명의 길을 제시했다. 시인의 철학·사상의 압축인 동시에 확장을 보여준다.

"이제 새로운 국가 목표가 제시되고, 근본적 요구인 ‘남녀·음양·빈부’ 등의 본질적 해방·평등이 성취되는… 우주와 생명의 큰 변화 속에 참다운 ‘선후천융합개벽’을 이뤄야 한다." 또 이런 "새로운 동학" 흐름 위에서 탄핵정국과 한반도 정세변화를 지켜보며 진보·보수, 좌·우익의 통일과 융합을 말했다.

시집 <중심의 괴로움>은 1989년부터 써 온 것을 1994에 출간한 것이다(2016년 재출간). 생명사상의 단초들이 드러나 있다. 저항시·풍자시, 정치사회적인 문제와 관련된 대표작들과 성격이 다른 시작(詩作)들이다. <애린>이 서정시집으로 불리며 김지하 시 세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면, <중심의 괴로움>은 간결함과 여백·틈의 시어로 생명을 노래했다. "중심을 벗어나 무수한 또 다른 중심을 이야기하며 그 자체 독특한 시 세계"라고 평가된다.

김지하의 문학과 삶에 대한 개괄적 총평으론 2018년 9월 손정순(시인)의 신간 리뷰가 돋보인다(쿨투라). "문학적 미학적인 다양한 층위들로 어우러진 그의 사상 또한 그를 단순히 시인으로만 평가할 수 없게 만든다. 지난한 시대사가 김지하의 문학성에 강요해온 결과, 혹은 환난으로 얼룩진 현대사의 상처가 우리시에 새긴 특이한 혈흔의 하나다."

손 시인은 지금까지 김지하의 시·사상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이유로 "그의 다양한 모습"을 들며, "깊은 시학적 심층을 바로 보지 못했던 학계 연구자와 독자 탓"을 지적했다. 다만 "그의 삶과 문학 텍스트가 모순·역설의 그물망으로 얽혀" 있어 수미일관한 체계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해석엔, 김지하를 전반 생애 중심으로 바라보는 관성이 엿보인다.

일찍부터 근대적 삶의 억압성·부정성을 포착하며, 근대화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이나 ‘낭만적인 부정’ 양자를 넘어서려 애쓴 것 또한 많은 연구가 기대된다. 김지하의 ‘시인 됨’ ‘생명사상가·사회운동가 됨’은 하나의 덩어리다. 흔히 부재를 통해 존재 의미를 깨닫듯, 그의 진가를 재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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