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근
박석근

사라진 줄 알았던 유령이 다시 떠돌고 있다. 예술을 순수와 대중으로 갈라놓으며 싸움을 부추겼던 몹쓸 유령이었다. 순수예술은 높은 이상적 가치와 혁신을 추구하는 반면 대중예술은 통속적이고 모방적이어서 예술의 범주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순수예술은 고급하고 대중예술은 저급하다는 생각이다.

지난 11월, 국회 국방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병역법 개정안 논의가 있었다. 개정안 요지는 방탄소년단 구성원들에게 병역특례를 허용하자는 것이다. 특례란 기초 군사훈련과 주어진 봉사활동 시간을 이수하는 것으로 병역의무를 마치는 것이다. 당국은 축구선수 손흥민에게 이 특례를 허용한 바 있다. 그런데 병역법에 의하면 방탄소년단은 이 특례가 적용되지 않는다. 그들은 순수예술가가 아니라 대중예술가이기 때문이다.

작금, 한류가 뜨겁다. 지난 9월 옥스퍼드대학교 출판부가 펴내는 사전에 한류(hallyu)가 올랐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올해의 인물 50인에 방탄소년단을 탄생시킨 방시혁 의장을 선정했다. 바야흐로 세계인이 한류를 모방하고 열광한다. 이제 한국은 문화 수입국이 아니라 수출국이다.

그동안 코로나로 멈췄던 방탄소년단의 해외 공연이 얼마 전에 재개되었다. 공연장으로 쓰인 로스앤젤레스 소파이스타디움은 5만 명을 넘게 수용하는 미식축구장인데 입장권은 순식간에 매진되었고, 구장측은 운동장 개장 이래 최다 판매 기록을 세웠다고 전한다.

대중음악뿐만 아니라 영화계도 뜨겁다. ‘오징어 게임’은 2021년 고섬 어워드(Gotham Awards) 상을 받았다. 고섬 어워드는 매년 뉴욕에서 열리는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 상 중 하나다. 현재 넷플릭스에서 송출되고 있는 인기 높은 드라마 10편 가운데 3편이 한국 드라마다.

1973년, 이분법의 유령이 떠돌던 시대의 만들어진 현 병역법은 피아노 발레 콩쿠르는 알지만 빌보드차트와 비보이, 스케이트보드와 스포츠클라이밍은 모른다.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사회를 반영하지 못하는 법과 제도는 죽었거나 악(惡)이다.

물론 병역의무는 신성하다. 대체복무를 위한 사회적 합의, 인구 감소 추세에 따른 병력 감소, 병역의무 이행의 공정성과 형평성 등을 고려했을 때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은 일리 있다. 하지만 대체복무 요원 선발이 병력감소로 이어진다는 건 논리의 모순이며, 소집면제가 아닌 대체복무가 공정성과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다. 총을 잡는 것만이 국가에 대한 봉사일 순 없다.

문화는 돈 이상의 가치를 만든다. 문화수준이 그 나라의 브랜드(brand)를 결정한다. 국가브랜드란 그 나라에 대한 인지도와 호감도 등 유무형의 가치들을 총합이다. 이것은 국가경쟁력의 중요한 요소로 국가의 위상, 국민신뢰, 상품과 기업 평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현재 방탄소년단 일부 구성원은 입영 연기 중에 있다. 예정대로라면 이들은 내년에 활동을 중단한 채 입대해야한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에 앞서 그로 인해 입게 될 국가적 손해와 대체복무 시 가져올 이익, 즉 이익형량(利益衡量) 따져보아야 한다. 방탄소년단의 군 입대는 국가브랜드지수를 높일 기회를 실기(失期)하는 것이다.

하루빨리 병역법을 개정하여 국가손실을 막아야 한다. 여야국회의원들은 발언에 따른 유불리를 따지며 여론눈치만 살핀다. 부작위(不作爲)에 의한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을 갈라치기 하는 유령에 감염된 좀비들이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특히 국내 문화산업 시장은 비좁고 경쟁은 치열하다. 문화산업의 세계시장 진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화는 돈 이상의 가치를 창출할 뿐만 아니라 브랜드를 결정한다. 자유무역시대에 국가란 하나의 브랜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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