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필 한국은행 경제통계국장(왼쪽 두 번째)이 10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2022년 3월 국제수지(잠정)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
황상필 한국은행 경제통계국장(왼쪽 두 번째)이 10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2022년 3월 국제수지(잠정)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

기축통화는 국제 간의 결제나 금융거래의 기본이 되는 통화로 대부분의 국가는 이를 외환보유액으로 쌓아놓고 있다.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면 외국인 투자자의 신뢰도가 높아지고, 외환시장에서의 과도한 투기 행위도 억제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외환보유액은 외환시장의 ‘안전판’인 셈이다.

우리나라는 외환보유액에 대한 ‘트라우마’까지 있다. 지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외환보유액이 39억4000만 달러까지 줄어든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1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전월보다 85억1000만 달러 줄어든 4493억 달러로 집계됐다. 2개월 연속 감소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을 앞두고 달러가 초강세를 보이면서 유로화, 파운드화, 엔화 등 기타통화 자산의 달러 환산액이 줄어든 탓이다. 특히 달러 강세 국면에서 원·달러 환율이 1300원에 근접하자 외환당국이 환율 안정을 위해 달러를 매도한 것도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꼽힌다.

우리나라 외환보유액 규모는 국제통화기금이나 국제결제은행(BIS) 등에서 권고하는 적정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국제통화기금은 연간 수출액의 5%, 시중 통화량(M2)의 5%, 유동 외채의 30%, 외국인 증권 및 기타 투자금 잔액의 15% 등을 합한 규모의 100~150% 수준을 적정 외환보유액으로 본다. 이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적정 외환보유액은 6810억 달러다. 국제통화기금보다 기준이 엄격한 국제결제은행이 제시한 우리나라 적정 외환보유액은 지금의 2배에 달하는 9300억 달러다.

이처럼 ‘외화 실탄’, 즉 외환보유액이 많으면 외부의 경제적 충격에는 강하지만 막대한 보유 비용이 수반된다. 외환보유액을 확충하는 과정에서 통화안정증권 발행 등의 비용이 들어가고, 외환보유액 대부분을 안전자산 위주로 운용함으로써 수익성도 떨어진다.

이 같은 점을 감안하면 통화스와프는 매우 효율적이다. 많은 외화를 외환보유액으로 묶어두지 않고도 유사시 불을 끌 정도의 외화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화스와프는 서로 다른 통화를 미리 약정된 환율에 따라 일정한 시점에 상호 교환하는 외환거래다. 한미 간 통화스와프 계약이 체결되면 우리나라에 달러가 부족할 경우 원화를 맡기고 달러를 빌려 외화 유동성 위기를 넘길 수 있다. 원·달러 환율의 안정도 꾀할 수 있다. 일종의 ‘외화 마이너스 통장’ 개념이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치솟자 한미 통화스와프를 부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의 한국은행은 지난해 12월 31일 미 연준과 체결했던 6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종료했다. 당시 한국은행은 금융·경제 상황이 위기에서 벗어나 안정을 유지하고 있는 점이 계약 종료의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한국은행의 판단은 5개월도 지나지 않아 신중하지 못했던 것으로 판명된다.

최근 미국과 다시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정치권에서 본격화되고 있다. 오는 21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통화스와프 문제를 의제로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의장은 지난 6일 "윤석열 정부가 민생안정이라는 최우선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외환·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한미 통화스와프의 필요성은 재론할 필요도 없다. 문제는 현실화 가능성이다.

미국은 전 세계의 달러 유동성이 메말라 세계 경제는 물론 자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때만 통화스와프의 문을 열어왔다. 지난 2020년 3월 한국을 비롯한 9개국과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한 것도 각국이 달러 확보를 위해 미국 국채를 한 번에 내다 팔아 미국 금융시장으로 불안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 컸다. 하지만 최근의 국내 외환시장 불안은 미 연준의 통화정책 정상화에 기인한 것이다. 미국에 통화스와프 계약 체결의 필요성을 설득할 논리가 마땅치 않은 것이다.

통화스와프 카드를 좀 더 신중히 써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했음에도 환율 변동성이 이어질 경우 시장 불안을 더욱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외환당국이 아닌 대통령이 직접 통화스와프를 정상회담 의제로 내놓는 것은 한국경제에 큰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도 있다. 득보다 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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