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초등학교 시절 노트 위에
내 책상 위에, 나무 위에
모래 위에 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내가 읽은 모든 책의 페이지 위에
흰 종이 위에
돌과 피, 종이와 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부(富)의 허상 위에
병사들의 총칼 위에
제왕들의 왕관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밀림 위에, 사막 위에
새둥우리 위에, 금작화 나무 위에
내 어린 시절 메아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밤의 경이로움 위에
낮에 먹는 흰 빵 위에
약혼 시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남빛 헌 누더기 옷 위에
태양이 지루하게 머무는 연못 위에
달빛이 환히 비추는 호수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

파괴된 내 방공호 위에
무너진 내 등대 위에
내 권태의 벽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소망 없는 부재 위에
벌거벗은 고독 위에
죽음의 계단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회복된 건강 위에
사라진 위험 위에
회상 없는 희망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그 한마디 말의 힘으로
나는 내 일생을 다시 시작하고,
너를 알기 위해서
너의 이름을 불러 주기 위해서 나는 태어났다

오, 자유여.

폴 엘뤼아르(Paul Eluard 1895~1952·프랑스)
 

/게티이미지

☞폴 엘뤼아르의 ‘자유’는 저항시의 백미다. 1차 세계대전에 종군했고, 2차 세계대전 때는 레지스탕스로 활약했다. 후기에는 다다이즘 운동에 참여하는 한편 초현실주의의 대표적 시인으로 활약했다.

며칠 전 저항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김지하 시인이 타계했다. 그의 대표작 ‘타는 목마름으로’가 엘뤼아르의 ‘자유’와 닮았다는 이유로 한때 표절시비가 붙어 반 매장되었다. ‘타는 목마름으로’가 ‘자유’에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표절까지 몰아붙일 일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죽음을 도구화하는 가짜 민주화세력에 대해 일침을 가한 김지하 시인의 기고문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에 대한 대중의 반감과 변절프레임이 작용했다. 중요한 건 자유민주주의를 꿈꾸었고, 그것을 방해하고 해치는 세력에 저항했다는 사실이다. 한 시인은 자유를 위해 저항했고, 또 한 시인은 가짜 민주주의 세력에 대해 정면으로 맞섰다.

신새벽 뒷골목에 /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 오직 한 가닥 있어 /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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