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운정의 길 따라...] '느리게 느리게' 담양 여행

354개 마을 가운데 350곳에 대숲 있는 진짜 ‘대나무골’
햇빛마저 흩어지는 빽빽한 대숲 죽녹원·죽향 체험마을
거목 늘어선 관방제림 돌아 17km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성산별곡’·‘면앙정가’ 태어난 한국 정원의 걸작 소쇄원

메타쉐쿼이아 숲길.
메타쉐쿼이아 숲길.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 숲은 몸을 뒤채인다. 바람이 그치면 다시 잠잠해진다. 고요한 대나무숲 위로 휘황한 봄햇빛이 찬란하고 눈부시다. 담양 대나무 숲의 신록은 물이 오를 대로 올랐다. 5월, 담양으로 떠나는 초록빛 힐링 여행.

대숲이 주는 초록빛 위로

전남 담양은 대나무골이라 불린다. 담양에는 354개의 마을이 있는데, 이 가운데 350개 마을에 대숲이 있으니, 대나무 숲 사이마다 마을이 들어앉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담양의 수많은 대숲 가운데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죽녹원이다. 영산강이 시작하는 양천을 낀 향교를 지나면 왼편에 대숲이 보이는데, 이곳이 죽녹원이다.

죽녹원에 들어서는 순간 몸은 다른 공간으로 훌쩍 이동한다. 햇빛은 짙고 빽빽한 대숲으로 침범하지 못한다. 심호흡을 하면 상큼한 대나무 향이 폐 속 깊이 스며든다. 산책로도 잘 정비돼 있는데 운수대통길, 선비의 길, 추억의 샛길, 철학자의 길 등 모두 여덟 개의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다.

대숲은 산소 발생률이 다른 나무보다 더 높다. 음이온도 많이 내뿜는다. 대나무숲을 걷는 것만으로도 머리와 피가 맑아지고 심신이 안정되면서 저항력이 높아진다고 한다. 죽녹원에서 안쪽으로 끝까지 들어가면 죽향체험마을이 나온다. 이곳 역시 온통 대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이 마을은 가사문학의 산실인 담양의 정자문화를 대표하는 면앙정, 송강정 등 정자와 소리전수관인 우송당, 한옥체험장 등을 꾸며 담양의 역사와 문화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죽녹원을 나오면 또 다른 숲을 만난다. 담양천 남쪽 둑의 관방제림이다. 담양 관방제는 담양 시내를 흐르는 담양천의 저지대 범람을 막기 위해 조선 인조 때(1648년) 만들어진 제방이다. 관방제 주변에 나무를 심은 것은 철종 때인 1854년이다. 제방의 길이는 모두 6km. 추정수령 200~300년의 거목 185그루로 이루어져 있다. 주요 수종은 푸조나무 111그루, 팽나무 18그루, 개서어나무 1그루 등이다.

죽녹원의 울창한 대나무숲길.
죽녹원의 울창한 대나무숲길.

관방제림이 끝나면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로 이어진다. 메타세쿼이아는 미국 서부 해안가에서 자생하는 ‘세쿼이아’ 이후(meta)에 등장한 나무란 뜻이다. 은행나무와 함께 고대 지구에서부터 존재해 온 화석나무 중 하나다. 일반적인 건물 10층 높이(30m)보다 높은 35m까지 자란다.

가로수길은 17km에 걸쳐 이어진다. 커다란 나무가 사열하듯 양옆으로 도열한 풍경은 마치 우리나라가 아닌 듯한 풍경을 선사한다. 이 길에는 우여곡절이 있다. 담양군이 메타세쿼이아를 가로수로 심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72년. 당시 3, 4년생짜리 어린 나무를 국도변에 심었다. 빠르게 자라는 메타세쿼이아는 담양 지역의 토양과 기후에 잘 적응했고 30년이 지나는 동안 나무는 키가 20m에 이를 만큼 자랐다. 그러다 지난 2000년 광주~순창 간 국도 확장공사가 이뤄지면서 길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도로 확장을 위해 나무를 베어내게 되자 주민들과 지역 사회단체들이 극력 반발하면서 막아섰고, 천신만고 끝에 가로수길을 그대로 놔두고 우회해 확장도로를 건설하는 쪽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그리고 지금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 됐다.

한국 정원의 아름다움

담양 하면 소쇄원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 옛 정원 중에서도 걸작으로 꼽히는 곳. 조선 중기 양산보(1503~1557)가 세운 별서정원이다. 양산보는 개혁정치를 펼치던 조광조의 제자였으나 스승이 기묘사화 때 화순 능주로 유배돼 사약을 받고 죽자 덧없는 세상에 환멸을 느끼고 낙향해 담양에 소쇄원을 지었다. 소쇄(瀟灑)는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뜻. 별서정원이란 ‘집 근처 경치 좋은 곳에 지어진, 문화생활과 전원생활을 겸할 수 있는 조용한 공간’을 이르는 말이다.

소쇄원에 들어서면 대숲 오솔길부터 펼쳐진다. 이어 버드나무가 하늘거리며 반겨주고, 장원봉에서 흘러온 계곡물이 졸졸 흐른다. 모퉁이를 돌면 계곡을 끼고 얌전하게 들어선 정자 세 채 그리고 외나무다리가 나타난다.

소쇄원은 크게 네 구역으로 구분된다. 정원의 입구 격인 대나무 숲길을 따라 들어서면 짚으로 지은 정자 ‘대봉대’를 시작으로 소쇄원의 중추를 이루는 ‘광풍각’, 집주인 양산보가 사색과 독서를 위해 즐겨 찾았다는 ‘제월당’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소쇄원 주 건물인 제월당은 집주인의 개인 공간이다. 햇빛과 달빛이 잘 드는 야트막한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제월당 아래 계곡 근처에 세워진 광풍각은 소쇄원의 사랑채 구실을 했던 곳이다. 정철의 ‘성산별곡’, 송순의 ‘면앙정가’ 같은 시가 문학의 대표작이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소쇄원을 둘러싼 울타리에도 깊은 뜻이 숨어 있다. 소쇄원의 담장은 고작 50여 미터에 이르는 흙돌담이 전부다. 이 담장은 ‘애양단’이라 부르는데, 애양단에서 외나무 다리를 건너면 사계절을 의미하는 매대가 나타나고 가장 윗부분에는 측백나무가 심겨 있다. 측백나무는 ‘학문’을 의미한다. 집주인은 가장 전망이 좋은 곳에 측백나무를 심어 이 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학자가 사는 곳임을 알리려 했다. 소쇄원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문이 없다. 이는 누구라도 주인 눈치를 보지 않고 쉽게 찾아올 수 있게 한 것이다.

양산보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소쇄원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면서 "어리석은 자손에게는 물려주지도 말고, 이곳을 절대 남에게 팔지 말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고 한다. 그 후 세월이 450여 년이나 흘렀지만 양산보 후손들은 15대를 이어 내려오는 동안 그의 유언을 받들어 소쇄원을 가문의 자랑으로 여기며 지금까지 잘 보존해 오고 있다.

한국정원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소쇄원.
한국정원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소쇄원.

소쇄원 못지않게 운치 있는 곳이 명옥헌이다. 조선 중기의 문인 명곡(明谷) 오희도(1583~1623)가 닭 벼슬만도 못한 관직을 훌훌 털어버리고 자연을 벗 삼아 지냈던 곳이다. 오희도는 인조(1595~1649)가 왕이 되기 전인 능양군 시절 세 번이나 찾아가 시국을 논했던 인물. 명옥헌 마루에 오늘날까지 ‘삼고’(三顧)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삼고’는 삼국지에서 ‘유비가 제갈공명을 세 번 찾았다’는 ‘삼고초려’의 그것이다.

명옥헌은 그 곁을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마치 구슬이 부딪치는 소리 같다고 하여 지은 이름이다. 정자 현판 글씨는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쓴 것으로 알려졌다. 명옥헌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규모다. 가운데 방을 두고 ㅁ자 마루를 놓았고 팔작지붕을 이고 있다. 전형적인 호남지방 정자의 모습으로 고졸하면서도 멋들어지다. 꾸밈이 없으면서도 품격이 있다.

오랜 시간 속을 걷다

창평면의 삼지내마을은 500년 역사의 창평 고씨 집성촌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의병장을 지냈던 고경명 장군의 후손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다. 고정주 고택을 비롯해 고재선 가옥, 고재환 가옥 등 1900년대 초 건축된 한옥 20여 채가 모여있다. 창평면은 한때 천석꾼이 600여 호에 이를 정도로 부촌이었지만 지금은 여느 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삼지내마을은 2007년 슬로시티에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삼지내 마을 돌담이 "화강석 둥근 돌을 사용하고, 돌과 흙을 번갈아 쌓아 줄눈이 생긴 담장과 막쌓기 형식의 담장이 혼재된 전통 토석담 구조로 가치가 높다"고 해서 2006년 등록문화재로 지정했다.

[여행정보]

담양의 별미 떡갈비.
담양의 별미 떡갈비.

죽녹원은 담양읍내에 자리한다. 이정표가 잘 되어 있어 찾기 쉽다. 담양읍사무소 옆에 있는 덕인관(061-381-3991)은 2대에 걸쳐 떡갈비를 선보인 곳. 남도음식축제에서 여러 차례 수상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죽녹원 가까운 곳에 국수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일곱 곳의 국숫집이 모여 있는데 그 가운데 50년 전통을 자랑하는 진우네집국수(061-381-5344)가 가장 유명하다. 시원하고 구수한 멸치국수와 매콤달콤한 비빔국수를 내는데 둘 다 중면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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