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4대 의혹’Ⅴ』 한국의 부동항을 탐낸 스탈린
『‘6·25전쟁 4대 의혹’Ⅴ』 한국의 부동항을 탐낸 스탈린
  • 최성재 평론가
  • 승인 2018.06.2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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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다섯번째 이야기다.

6.25전쟁 68주년이 지났다. 6.25전쟁에서는 남북한 군보다 미국과 중공과 소련이 거의 전적으로 전쟁을 주도했다. 그 중에서도 모택동의 역할이 알려진 것보다 훨씬 컸다. 그것은 지금의 북핵 정국에서 시진핑의 중국이 막대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때문에 6.25전쟁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전쟁의 당사자였던 중국측이 작성한 자료를 바탕으로 해서 6.25전쟁을 분석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The 자유일보는 그런 측면에서 중국측 자료를 통해 △김일성이 서울에서 3일간 머뭇거린 이유 △김일성이 모택동의 인천항과 군산항 요새화 제안을 거부한 이유 △스탈린이 휴전을 계속 미룬 이유 △미국이 당시 스탈린 점령지 만주를 모택동에게 선물한 이유 등 6.25전쟁 4대 의혹을 전격 연재공개한다.

『‘6·25전쟁 4대 의혹’Ⅴ』 한국의 부동항을 탐낸 스탈린

김일성과 스탈린이 뭔가를 나눠먹고 있다.
김일성과 스탈린이 뭔가를 나눠먹고 있다.

【최성재 평론가】

스탈린은 1949년 개발한 핵무기를 믿었다. 그것만 있으면 미군은 만주로 진격할 리 없고 그것만 있으면 통일 중국과 세계최강 미국이 이전투구로 국력이 쇠잔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전략적 차원에서 소련이 가장 원한 것은 한반도의 부동항(不凍港)이었다. 미국의 원폭투하 후 전광석화처럼 170만 극동군으로 얼이 빠져 다리와 눈이 함께 풀린 80만 관동군을 무장해제 시켰지만, 소련이 얻은 것은 러일전쟁으로 일본에게 빼앗긴 여순과 대련 두 항구 및 만주의 중장(中長)철도 그리고 외몽골뿐이었다.

1945년 장개석과 맺은 중소우호동맹조약에 따른 것이었다. 여순과 대련은 30년간 조차하는 조건이었지만, 1949년 중공에 의해 중원이 통일되면서 그것은 두 공산국끼리 심각한 주권 문제로 대두되었다. 때마침 국제 압력이 가해졌다. 영국과 인도 등이 중공을 합법적 정부로 승인하려고 하고 미국도 우호적 신호를 보냈던 것이다. 신3국 간섭이었다. 결국 스탈린은 외몽골 외에는 중국에 모두 돌려주기로 했다.

대신 스탈린은 이미 소련군 대위 김일성을 내세워 동구와 몽골처럼 소련의 위성국으로 만든 북한을 이용하여 절대 손해 볼 리 없는 게임 곧 6ㆍ25 불바다를 주도면밀하게 연출하여 김일성이 엉덩이에 뿔난 송아지처럼 날뛰게 만든다.

미국이 38선을 제의하자 동해 쪽으로 그 선을 연장하여 일본의 북해도까지 소련의 지배하에 두자고 제의했다가 일언지하에 거절당한 적이 있었던 스탈린은 완벽한 준비를 갖춘 다음 지정학적으로 절대 유리한 점을 이용하여 소련군을 먼저 철수시키고 미국이 아무 준비 없이 덜컥 미군을 철수하게 만든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북한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중국과 소련은 철군해도 사실상 북한에 군대를 주둔한 것과 마찬가지인 점을 교묘히 이용한 것이다.

◆ 이승만, 토지개혁으로 민심을 얻다

스탈린과 김일성의 철권통치로 북한에는 우익이 처음부터 씨가 말랐지만, 트루먼과 이승만의 봄바람 통치로 한국에는 좌익이 서울과 대구와 여수, 태백산맥과 지리산과 한라산만이 아니라 군대에까지 들끓었던 것도 김일성이 적화통일에 대한 야심을 부채질했다.

이승만은 폭동과 반란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군에 대한 통치권을 확보하고 인류 역사상 가장 빛나는 토지개혁으로 민심을 얻었다.

소련과 중공과 북한, 동구, 후일의 공산베트남은 국가 노예제 형태의 토지개혁으로 민심을 완전히 잃고 노동자와 농민을 길게는 70년 짧게는 10년 기아에 허덕이게 만들었지만, 한국의 선무당들은 지금도 ‘무상몰수 무상분배’라는 허구적 논리(*)에 입각하여 이를 정반대로 알고 신파조로 선전하고 있다.

(*‘무상몰수 무상분배’가 아니라 ‘유혈강탈 앵벌이분배’였다.)

막상 김일성이 남침하자 공산 봉기는 전혀 없었다. 도리어 한국의 청년들은 우리 토지와 우리 자유를 지키기 위해 맨주먹으로 악랄한 공산군과 싸웠다. 후일 월남과는 판이한 양상이었다. 그러나 6ㆍ25 당시 10대 의혹에서 드러나듯 공산당을 색출한 숙군(肅軍) 운동도 군부에 뿌리박은 남로당을 완전히 제거하는 데는 실패했다.   (계속)

csj@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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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루 2018-07-08 20:30:26
이승만이 시행했던 토지개혁의 역사적의 의의와 성과에 대해서도 하루빨리 제대로 된 평가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