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 최악 경제난 유발한 '라자팍사家' 완전 퇴진 요구

9일(현지시간) 반정부 시위가 벌어진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의 마힌다 라자팍사 총리 관저 주변에서 정부 지지 시위대의 버스가 불타고 있다. 마힌다 총리의 지지자들은 이날 수십 대 버스를 동원해 콜롬보로 상경, 이들과 반정부 시위대 간에 유혈 충돌이 발생한 지 몇 시간 이후 마힌다 총리가 사임을 발표했다. /AFP=연합
9일(현지시간) 반정부 시위가 벌어진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의 마힌다 라자팍사 총리 관저 주변에서 정부 지지 시위대의 버스가 불타고 있다. 마힌다 총리의 지지자들은 이날 수십 대 버스를 동원해 콜롬보로 상경, 이들과 반정부 시위대 간에 유혈 충돌이 발생한 지 몇 시간 이후 마힌다 총리가 사임을 발표했다. /AFP=연합

스리랑카당국이 반정부 시위의 확산 속에 발포 명령을 내렸다. 최악의 경제난과 정치적 혼란에 빠진 스리랑카는 중국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의 중대한 패착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스리랑카에서 끝날 일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11일(현지시간) 뉴스퍼스트 등 스리랑카 언론 등에 따르면, 스리랑카 국방부는 전날 밤 보안군에 "공공재산을 약탈하거나 생명을 해치는 자들을 현장에서 사살하라"고 명령했다.

앞서 스리랑카 정부는 7일부터 국가비상사태를 발동했으며, 9일 오후부터 전국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수도 콜롬보 등지엔 군경 수천 명이 배치됐고,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은 이들 군경에 영장 없이 사람들을 심문·구금할 수 있는 ‘광범위한 질서유지 권한’을 부여했다.

2005년부터 장기 집권한 ‘라자팍사 가문’이 시위대의 타겟이다. 야권과 시위대는 고타바야 대통령-마힌다 총리 형제를 최근 경제난을 유발한 ‘장본인’으로 지목, 라자팍사 가문의 완전 퇴진을 요구해왔다. 마힌다 총리가 지난 9일 퇴진 압박에 사임했으나, 그 동생이자 권력의 핵심인 고타바야 대통령은 버티고 있다.

성난 시민들이 대통령·총리 집무실 인근에서 화염병을 던져 버스가 불탔고, 일부 시위대는 스리랑카 라자팍사 가문의 조상 집에 불을 붙였다. 일부 현역 의원의 집 등 50여 채도 시위대 공격으로 전소됐다. 충돌과 소요 과정에서 자살한 현역 의원을 포함해 최소 8명이 목숨을 잃었다(부상자 약 250명).

스리랑카는 주력 산업인 관광산업의 붕괴 속에 대외부채가 급증, 재정정책 실패까지 겹치면서 심각한 곤경에 직면하고 말았다. 결국 지난달 초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을 때까지 510억달러(약 65조원)에 달하는 대외부채 상환을 유예한다며 일시적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했다.

민생 파탄이 불가피하다. 연료·의약품·식품 등 거의 모든 것을 수입에 의존해 온 스리랑카가 ‘글로벌 부채 위기 도미노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MF와 세계은행(WB)은 스리랑카 사태를 ‘탄광 속에서 가장 먼저 위험을 경고하는 카나리아’ 같은 징후로 본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전했다. 스리랑카 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세계 중·저소득 국가는 △코로나19 팬데믹 △부채비용 증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연료·식량 가격 상승이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리카 25개국·아시아 25개국·중남미 19개국 등 69개국이 스리랑카와 같은 상황이다.

파키스탄·이집트·튀니지·페루·엘살바도르·가나·에티오피아·에콰도르·레바논·잠비아 등이 속한다.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도 스리랑카에 1억달러(약 1280억원)의 긴급자금 지원을 추진 중이다. AIIB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인프라시설 투자 지원을 목적으로 중국이 주도해 지난 2016년 창설됐다.

스리랑카의 대외부채가 사실상 중국 ‘일대일로의 덫’에 빠진 것임을 감안할 때 ‘면피성’이란 지적이다. 중국이 스리랑카 대외부채의 약 20%를 차지한다. 스리랑카의 IMF 구제금융 요청은 사실상 중국에 대한 채무상황을 미국이 나서서 유예·차감해달라는 뜻이다. 스리랑카 역시 ‘미-중 힘겨루기 場’의 또 다른 중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의 의사당 앞에서 5일(현지시간)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과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대 수천 명이 최루탄을 쏘는 경찰에 맞서고 있다. /EPA=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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