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의 대남공작 70년사... 공작원 침투 경로
北의 대남공작 70년사... 공작원 침투 경로
  • 유진 북한문제 전문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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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를 활보하는 北빨치산

『남한 국군, 경찰에도 수많은 공작원 침투』

【유진 북한문제 전문 칼럼니스트】

6.25전쟁 시기 북한은 인민군 퇴각이후 남한 내 유격대 활동을 지원하는 공작뿐만 아니라 파괴된 지하당을 재건하고 각종 대남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공작을 전개하였다. 북한은 산악지대에 은둔해 군경 토벌에 의해 소멸되고 있던 각 지구당 조직들을 수습하는 동시에 이들의 활동을 활성화하려고 공작원을 양성하고 파견했다. 또 경찰, 국군 등 한국의 특수기관에 공작원을 잠입시키는 공작도 벌였다.

지하당 재건 및 한국 군경 잠입을 위한 공작은 북한군이 재남침할 때까지로 기간을 정하고 2~5명으로 구성된 공작조와 가짜 부부로 구성된 공작조 또는 개별공작원을 침투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기존의 지구당을 지하당으로 재건하는 공작은 2~5명으로 구성된 공작조를 기본으로 하여 개별적인 공작원들을 침투시켜 전개했다. 이와 같은 공작은 당시 노동당 중앙위원회 연락부와 제1지구당 및 제2지구당 지도부가 담당했다.

중앙당 연락부에서는 충청남북도 지역을 포괄하는 제3지구당, 전라남북도 지역에 조직된 제4지구당, 그리고 경상남북도 지역을 담당하는 제5지구당에 대한 공작을 담당했다. 서울시와 경기도 지역은 개성에 있던 제1지구당 지도부에서, 강원도 지역은 회양군에 있던 제2지구당 지도부에서 직접 담당하였다. 그러다가 제1,2지구당 지도부가 해체된 1952년 6월 경 부터는 중앙당 연락부에서 모든 지하당 재건 공작을 맡았다.

◇태백산맥과 백두대간 타고 전라·경상 지역 침투

지구당 지도부 보강 및 지하당 개편 공작을 위해 남파되는 집체 공작조는 1951년 말~1952년 말까지 설악산과 소백산 등 동부지역의 산악루트를 통해 은밀히 침투한 다음 백두대간을 타고 충청도와 전라도, 경상도 지역으로 이동하거나 경기도 지역으로 침투하는 전술을 구사했다.

이들은 많은 경우 침투과정에 아군 토벌대와 조우하여 교전 끝에 사살되었으나 일부 인원은 공작지역까지 침투하는데 성공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당시 제5지구당(경상도)에 파견된 선동규, 이승제 외 3명의 공작조와 조선기, 윤기홍 외 3명의 공작조가 공작지역인 경상도 지역까지 침투에 성공한 바 있다.

또한 제4지구당(전라도)에 파견된 정치범, 조용제 외 3명의 공작조와 김기만, 강영호 외 수명의 공작조도 침투에 성공했다. 제3지구당(충청도)에 파견된 신창식, 유기찬 외 수명의 공작조도 공작지역까지 침투하는데 성공했다.

한편, 지하당 조직을 수습하거나 특수공작 및 기존 조직 보강을 위해 남파되는 개별공작원 및 부부공작조의 경우에는 주로 황해도, 개성 등 서부지역으로 침투해 서울과 경기, 충청지역으로 침투하는 전술을 썼다. 부부공작조의 경우에는 표면적으로 부부행세를 하는 가짜부부 공작조였다.

일부 개별공작원과 부부공작조의 경우에는 우익분자로 위장시킨 다음 합법적으로 침투시키는 전술을 쓰기도 했다. 이 방법을 쓰기 위해 우선 남파공작원들을 우익반동분자로 위장시킨 다음 북한 내무성과 사전 결탁하여 이들을 우익반동분자들이 많이 감금되어 있는 내무서 유치장과 감옥에 구금한다.

이렇게 구금된 공작원은 형식적인 '고문'도 받고 그 과정에 그곳에 이미 갇혀 있는 우익분자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친분을 맺었다. 이렇게 그들의 환심을 산 다음 내무기관이 관대히 처리하는 방식으로 석방시키면 그들과 같이 월남을 모의하여 선박을 훔쳐 타고 월남하거나 이미 월남한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는 황해도 지역의 선을 찾아 월남하는 방법으로 침투하기도 했다.

또한 공작원들을 유엔군이 북한지역에 들어왔을 때 유엔군과 한국군을 협조했던 '치안대'와 같은 단체의 가담자로서 미처 남쪽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인물로 위장시킨 후 이미 월남한 사람들이 첩보공작, 유격대활동 등 대북공작을 위해 많이 이용하고 있던 황해도 연선(沿線) 지역에 들여보내 월남자 가족들과 비밀리에 접촉하거나 공작라인을 이용해 월남하는 전술을 구사하기도 했다.

간첩 유양필
간첩 유양필

◇가짜부부 유양필·신대복 공작조

이 시기 남파된 공작원들은 대부분 남한출신이었다. 이들은 6.25전쟁 때 월북하여 금강정치학원에서 함께 공작원 훈련을 받은 남로당 간부들이라는 점과, 이들이 모두 자기 출신지역에 침투했다는 특징이 있다.

이렇게 같은 지방 출신들이 동일한 훈련기관인 금강정치학원에서 집체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상호 얼굴을 알고 있었다. 이로 인해 한 명이 체포되면 같은 지방출신의 공작원들이 연이어 체포됨으로써 공작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ㆍ경기 지방으로 침투하는 공작원들의 경우에는 동일한 침투루트를 사용했기 때문에 서울로 들어오는 미아리고개나 무악재에서 검문검색으로 거의 다 체포되다시피 했다. 아울러 공작원들의 침투 시기가 주로 달이 없는 무월광(無月光) 시기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경계 및 검문검색을 강화해 대부분 체포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남침투에 성공한 공작조 및 공작원들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침투에 성공한 가짜부부 공작조가 바로 경북 안동출신의 유양필과 경북 문경출신의 신대복 공작조였다. 이들은 1952년 5월 서울과 대구 지역의 지하당조직 재건 임무를 받고 침투에 성공한 후 서울에 정착하여 생활하다가 신대복은 1961년 3월에 월북하고 유양필은 계속 공작활동을 벌이다가 1962년 초에 체포 처형되었다.

또한 6.25전쟁 전 대한민국 내무부 치안국 경무과장으로 활동하면서 북한의 공작임무를 수행하다 검거되었던 김정제도 당시 대남침투에 성공했던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김정제는 8.15광복이후 북한 남로당 중앙 특수부 소속 비밀당원으로 남한의 내무부 치안국 경무과장으로 재직하면서 임무를 수행하던 중 정체가 노출되어 6.25전쟁 직전에 검거되었다.

김정제 간첩 사건 공판 장면
김정제 간첩 사건 공판 장면

◇내무부 치안국 경무과장 김정제도 간첩

그러나 북한군의 서울점령으로 탈옥에 성공한 후 월북했다가 1951년 6월 공작원으로 선발되어 밀봉교육을 받고 남한에 침투하였다. 대남침투에 성공한 김정제는 자신의 월북사실과 신분을 숨기고 전쟁초기부터 시골에 피신해 있다가 나타난 것으로 위장해 정부 고위층에 침투하여 공작기반을 구축하였다. 이후 북한 공작지도부의 지령에 따라 정부와 자유당의 고위층과 많은 접촉을 하면서 고급정보를 수집 보고하는 등 공작임무를 수행하다 1957년 8월에 적발되었다.

이와 함께 대구에서 공작활동을 하다가 체포된 손대수의 경우에도 대남침투에 성공했던 사례이다. 손대수는 광복직후부터 경북지방 남로당 간부로 활동하면서 1946년 10월 항쟁에 적극 가담하였으며 북한군 남침 때는 남로당 간부로 합법적으로 활약하다가 인민군 패주 시 인민군대에 자원입대해 평양방어전투에서 큰 공을 세워 국기훈장 제1급까지 수여받은 바 있다.

그러다가 손대수는 1951년 10월 인민군대에서 제대한 후 금강정치학원에 들어가 남파공작에 필요한 교육과 훈련을 받은 후 1952년 8월 경상도 지역을 담당한 제4지구당 간부로 임명되어 침투에 성공하였다.

그는 백두대간을 타고 대구지역에 침투한 후 제4지구당 지도부와 접선에 성공했다. 이후 제4지구당 북부지구 소지구당 위원장으로 임명되어 팔공산에 근거지를 두고 대구 시내를 중심으로 공작활동을 벌였다.

경북지역의 제4지구당 지도부가 완전 소멸된 이후에는 지구당 지도부 및 대구시내 지하당조직 재건을 위해 대학 강사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을 포섭하여 활동하다가 1959년 7월 말에 적발 검거되어 처형되었다.

<계속>

yj@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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