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한시적 배제가 시행 중인 11일 서울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매물 안내문이 붙어 있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수도권 아파트 매물이 늘어나고 있지만 거래절벽도 이어지는 추세다. /연합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한시적 배제가 시행 중인 11일 서울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매물 안내문이 붙어 있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수도권 아파트 매물이 늘어나고 있지만 거래절벽도 이어지는 추세다. /연합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징벌적 성격이 농후하다. 재건축 사업을 집값 상승의 진원지로 보고 온갖 규제를 가한 것이 대표적이다. 재건축 사업의 첫 관문인 안전진단 기준을 강화하고, 분양가 상한제와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시행을 강행했다. 다주택자를 투기세력으로 몰아 양도소득세를 중과하고, 보유세도 가파르게 올리는 등 부동산 투자이익에 회초리를 들었다.

이 같은 부동산 정책은 재건축 사업의 발목을 잡아 도심 주택공급을 감소시켰다. 또한 거래절벽과 매물잠김 현상을 유발해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도화선이 됐다. 윤석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잘못된 처방으로 망가진 부동산시장을 정상화하고, 이를 통해 국민의 주거안정을 도모한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상황이 녹록치 않다. 정책 실패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투기를 잡겠다고 규제를 강화했는데 오히려 집값이 급등한 것처럼 시장 기능 회복을 위한 윤석열 정부의 규제 완화가 자칫 집값 불안을 초래할 ‘불쏘시개’가 될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집값이 불안해지면 규제 완화를 제대로 추진하기 힘들어진다. 시장 기능을 회복시키려는 것도 결국은 주거안정을 위한 것인데, 집값이 뛰면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12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호흡을 맞춰 속도조절을 하기로 했으며, 당분간 공급보다 신중에 무게를 두겠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한국부동산원의 주간 아파트값 동향에 따르면 5월 첫째 주 서울 아파트값은 0.01% 올랐다. 지난 1월 17일 0.01%를 기록한 이후 15주 만에 상승세로 돌아선 것이다. 규제 완화 기대감이 있는 재건축 단지가 상승세를 견인했다. 분당과 일산 등 1기 신도시 재건축 공약으로 경기도의 아파트값 역시 14주 만에 하락세에서 보합세로 전환됐다.

불안한 것은 아파트 전셋값도 마찬가지. 서울은 지난 1월 마지막 주 하락 이후 5월 첫째 주 보합세로 전환됐다. 신규 아파트 입주 단지를 빼고는 전세 물건도 뜸하다. 특히 8월 이후에는 전셋값이 뜀박질할 수 있다. 2년 전 계약갱신을 청구해 이뤄진 계약이 만료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전세 물건은 주변 전셋값에 맞춰 보증금을 한꺼번에 올릴 공산이 크다. 전셋값 상승은 매매가를 밀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공급 확대, 부동산 세제 개편, 대출 규제 완화 등 부동산 정책의 모든 분야에 빨간불이 들어올 수 있다. 윤석열 정부가 고전(苦戰)을 면치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건축 활성화를 위한 안전진단 기준 완화가 내년으로 미뤄지는 등 벌써부터 차질이 빚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국정과제 이행계획서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는 ‘주택 재건축 판정을 위한 안전진단 기준’을 내년 상반기 개정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안전진단 기준 완화는 법 개정 없이 국토교통부 시행 규칙 개정만으로 가능해 이르면 올해 상반기 추진될 것으로 전망됐었다.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 상한제 등의 내용이 포함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도 내년 이후로 연기된다. 인수위원회는 "임대차 제도 개편을 위해서는 임대차법 개정이 필요하다"면서도 "입법 여건상 단기간 내 개정이 어렵고, 개편 발표 후 개정 전까지 단기적으로 시장 불안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연기 배경을 설명했다. 재건축 사업의 수익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은 올 하반기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지만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통과는 미지수인 상태다.

종합부동산세, 양도세, 취득세 등 부동산 세제 개편도 상황은 비슷하다. 윤석열 정부는 세 부담을 문재인 정부 출범 때 수준으로 되돌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큰 틀을 바꾸려면 법 개정이 필요해 추진 속도가 더뎌질 전망이다. 다만 시행령 개정 사항인 공시가격 현실화 재조정은 오는 11월, 공정시장가액비율 인하는 상반기에 추진한다는 정도다.

대출 규제 완화의 경우 생애최초주택구입가구의 내 집 마련을 위해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최대 80%까지 완화키로 했다. 하지만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완화 여부를 놓고는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가계부채가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부상한 만큼 규제 완화가 능사는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집값 불안과 여소야대, 그리고 금융시장의 상황이 윤석열 정부의 ‘딜레마’를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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